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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지난 25일 발표된 영국 의회 보고서는 정부의 아동 비만 대책이 너무나 지지부진하다며 더욱 강력한 정책 실행을 요구했다. 3년 전 정부가 내놓은 아동 비만 증가 억제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아동 비만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서들을 총괄지도할 수 있는 담당자를 임명해야 하고, 비만 아동 부모들에게는 자녀 비만에 대처할 지침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식품업계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비난하고 식품업계에 대한 압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흡연 문제와 함께 영국 정부가 가장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국민 비만'이다. 전체 성인의 3분의 1, 전체 아동의 20%가 의학적으로 비만 인구에 속하며, 이는 2년 전보다 5%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비만 인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영국 정부의 고민 '국민 비만'

@BRI@지난해 12월 영국 보건당국은 성인은 물론 12세 이하의 아동에게조차 비만이 심한 경우 약물치료는 물론 위 수술 등을 적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 논란이 많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달리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결론 하에 내린 처방이다.

영국의 각종 연구들은 비만의 주요 원인이 지나친 당분과 지방의 섭취라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당분과 지방 섭취를 줄이고 대신 과일이나 곡류 섭취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섭취하는 당분과 지방의 양을 보면 이런 권고가 무색해 보인다. 특히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당분과 지방을 섭취하게 된다. 싼 음식일수록 당분과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다른 많은 서구 국가들처럼 당분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단맛의 군것질거리가 넘쳐나고 모든 대형마트에는 초콜릿과 사탕을 진열해 놓은 코너가 따로 있다. 이른바 살찐 사람들과 아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코너의 가장 인기 품목인 초콜릿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카카오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비싸고 설탕 범벅인 초콜릿은 상대적으로 싸다. 물론 사람들이 단맛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맛이 더한 것을 찾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밀크초콜릿 하나에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약 20%, 설탕이 50% 이상, 그리고 지방이 30% 정도 들어있다. 다크초콜릿에는 보통 45% 정도의 카카오가 들어 있다. 어찌 보면 보통의 밀크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라 '초콜릿맛 설탕'인 셈이다.

그러나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원 파운드 숍'에서 팔리는 각종 희한한 초콜릿에는 그 안에 설탕 범벅이나 설탕의 시럽 형태인 저질 캐러멜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은 한국 사람의 입맛으로는 혀가 말릴 정도의 단맛이 있기도 하다. 싼 가격에 초콜릿을 맛볼 수 있게 하려는 초콜릿 생산업체의 '배려'인 셈이다.

영국인들이 차와 함께 항상 즐기는, 그리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는 비스킷이다. 어떤 경우에는 간단히 공복을 메우기 위해 먹기도 한다. 사실 모든 비스킷은 열량이 높은 편이다. 대부분 밀가루 외에 설탕 20∼30%와 지방 20% 정도가 들어 있다.

초콜릿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비스킷 중 하나인 다이제스티브 하나는 80칼로리에 달한다. 밥 4분의 1공기에 해당하는 열량이다. 집게손가락 길이만 한 전통적인 쇼트 케이크는 지방이 3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열량이 거의 100칼로리에 육박한다. 그리고 작은 비스킷들도 보통은 하나에 50∼60칼로리의 열량을 자랑한다.

'원 파운드 숍'에서 팔리는 비스킷들은 양은 많은데 이른바 샌드비스킷 형태로 가운데 각종 설탕 범벅으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질 낮은 밀가루, 당분, 지방 덩어리인 셈이다. 보통 한 개의 열량이 70∼80칼로리에 육박한다.

식품의 계급화는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식인 빵인 경우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밀가루로만 만든 질 낮은 빵에 설탕이 60∼70%인 잼을 발라 먹는다. 그러나 좀 더 건강과 영양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값은 비싸지만 각종 곡물과 견과류가 섞인 빵과 설탕이 적게 들어간 잼을 찾는다. 영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소시지나 파이도 마찬가지다. 싼 소시지나 고기파이라면 당연히 지방의 비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제 먹을거리의 계급화는 세계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일반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서구 국가들에서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 주식인 쌀과 채소는 질과 맛의 차이는 있지만 영양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비만은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고기와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의 경우는 설탕과 지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싼 음식을 먹어서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저지방, 저당분 상품은 일반 상품보다 더 비싸고 가난한 사람들은 당연히 지방과 당분, 그리고 칼로리가 더 많은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식품업계는 상품의 겉모습은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다만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는 것처럼 교묘한 방법으로 먹을거리의 계급화를 조장한다. 소비자들이 대부분 작은 글씨로 쓰인 성분이나 칼로리 표시를 읽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 식품업계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영국 의회 보고서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태그:#영국비만정책, #먹거리 계급화, #트랜스 지방, #비만,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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