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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닮은 꼴 부녀. 일요일 한낮 낮잠을 즐기다.
ⓒ 김은숙
2006년 한 해를 되돌아 보고 곱씹어 봐도 도무지 우리 사회의 10대 사건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2006년 내게는 아주 큰일이 그것도 두 개나 있다.

2006년 내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내가 '엄마'가 된 일이다.

2006년 8월 23일, 10시간이 넘게 진통을 했지만 자궁 문은 열리지 않고 양수는 이미 터져서 시간을 더 보낼 수가 없게 되어서 수술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BRI@지금도 아기를 자연분만하지 못한 것이 아기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숨 쉬고 먹고 자면서 엄마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런 아기는 의사가 엄마 배에 칼을 대는 그때에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차가운 칼로 자기의 보호막이 갈라질 때 아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능하면 자연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한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하물며 가장 숭고한 출산의 순간을 자연적으로 하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또 안타까운 것은 모유를 많이 먹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엄마도, 언니도 모유가 부족했다고 하니 모유가 부족한 것은 집안 내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모유 수유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니 내가 뭘 잘못해서 젖이 안 돌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이미 모유 수유를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포기 상태이지만 모유 수유를 오래 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 아기에게 미안할 것이다.

2006년 두 번째로 큰 사건은 우리 가족이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기를 서울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늘 '탈 서울'을 꿈꾸기는 했지만 아기가 태어난 것이 탈 서울을 더 앞당겼다. 서울에서는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서다.

내가 광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는 것에 아쉬움은 없다. 광주로 가면 서울에서 살 때보다 더 넓은 집에서 우리 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마포라는 지역에서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을 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을 소중히 생각해 주고, 성격 안 좋다고 말하는 이 미도리를 많이도 아껴 주었던 마포 사람들이다. 아무리 온라인 강국이라고 해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2006년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엄마가 되었고 삶의 터전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2007년에는 더 기쁜 일이 생기길 바라는 욕심은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 건강한 아이를 낳았고, 무리 없이 직장을 구했고, 서울에서보다 더 쾌적한 공간에서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가족 건강하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그저 2006년에 계획했던 일들이 200년에는 무리 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2006년 한 해를 돌아보니 내게는 참 행복한 시간들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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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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