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16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은퇴 콘서트 기자회견장에 그는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 오마이TV 김호중
45년 음악생활을 정리하는 '은퇴 투어'를 벌이고 있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지난 16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은퇴 콘서트 기자회견장에 그는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가는 귀가 먹어 잘 안 들리니 좀 크게 질문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인사를 시작했다.

예순 중반을 넘긴 사람이니 가는 귀가 먹었다는 말이 유별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은퇴를 앞둔 노년의 거장 음악가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의 삶이 온전히 실려 있는 말처럼 들렸다.

거장의 은퇴공연 기자회견으로는 조촐한 분위기였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어조도 별다른 감정의 기복없이 차분했다.

그날 신중현은 '리얼 뮤직', '진정한 뮤지션'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며, 지금의 음악 시장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선배 뮤지션으로서 자신이 은퇴 공연을 펼치는 이유를 설명했다.

"뚜렷한 선을 긋고 떠나고 싶다"

ⓒ 오마이TV 김호중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이 들면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름 인생을 정리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덧붙여 은퇴 콘서트에 대해서는 "원래는 조용히 그냥 사라지려고 했다… 그러나 은퇴 콘서트를 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 진짜 음악이 뭔지 뚜렷이 선을 그어 보여주고 싶다, 요즘은 음악 할 수 있는 친구가 음악을 할 수 없고 진정한 뮤지션이 설 자리가 없다, 은퇴공연으로 진정한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목표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뚜렷한 선'을 긋고 싶다는 말은 자신의 음악이 위대하니 '내 음악 주변에 불가침의 영역을 표시할 선'을 그어 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 '뚜렷한 선'에 대해 신중현은 이렇게 덧붙인다. "상업성을 고려하고 립싱크를 하는 음악도 있지만 리얼 뮤직, 진정한 음악이 갈 길이 있어야 한다. 이 사회에는 진정한 음악인이 설 자리가 없다. 선이 구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 음악 할 친구들도 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선을 말한다."

그가 기자회견 중에 전혀 적극적으로 발언한 바 없지만 그의 심중에는 TV에서 폭격해대는 '그런' 음악 말고 '다른' 음악(신중현이 말하는 리얼 뮤직)도 그 만큼 설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리라.

그래서 음악에도 경계가 필요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 그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리얼 뮤직이 우스운 음악이 되어 버린, 주객이 전도된 상황, 거기다가 설 자리까지 없어져 버린 때가 아닌가. 어떤 음악이든 좋지만 둘 다 공존할 수 있도록 섞이지 않게 선을 그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자회견에서 신중현은 '리얼 뮤직'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다. 특별한 음악용어는 아니며 글자 그대로 '진짜 음악'이다. 그리고 이 표현은 그가 선을 긋고 떠나고 싶다는 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는 "소리를 내면 다 음악하는 줄 안다"며 차분한 어조로 따끔한 한 마디를 토해냈다. 그렇다고 신중현이 말하는 리얼 뮤직이란 게 뭔가 특별한 음악은 아니다.

목전의 상업적 이윤과 대중 기만의 최전선에 있는 헐벗은 붕어들의 '아크로바틱 버라이어티 곡예쇼' 말고, 팬이 많든 적든 '리얼하게'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이 곧 리얼 뮤직인 셈이다.

록 음악, 넓게 말하면 밴드 음악을 해온 사람으로 신중현의 리얼 뮤직은 뮤지션 스스로의 창작, 연주가 기본이 되며 음악인 스스로의 표현과 감정을 담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다.

라이브로 즐겼을 때 참 맛을 알 수 있는 음악이고 음반을 곁에 두고 몇 년이 지나서도 언젠가 한 번쯤 꺼내어 들어 볼 수 있는 음악이다.

"박정희 정권 생각하면 가슴 찢어져... 그래도 난 행운아"

ⓒ 오마이TV 김호중
기자회견 내내 신중현의 표정이나 어조는 담담하고 평온하며 차분했다. 지나치게 두루뭉수리하게 말한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거나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분했던 그가 감정이 고조되고 순간 격앙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지난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음악활동을 강제로 금지 '당했던', 극심한 폭력에 시달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였다.

음악인에게 음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사형 선고인 셈이었다. 신중현 개인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음악인들이 음악활동을 전면 금지 '당하고' 말았다. 신중현의 홈페이지에는 당시를 '자연과 함께 소일했다'고 짤막하게 기록했다.

당시 심정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70년대 우리 음악은 손색이 없었다. 당시 정권에 의해 맥이 끊기고…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한국 음악성이 끊기고 없어진 것이다,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며 기자회견 중에 가장 감정이 고조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의 개인적 심정을 덧붙이며 "음악을 그만두고 장사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었다"며 착잡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기자회견장에는 일정 정도의 정적이 흘렀고, 그의 70년대 당시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으로 공식적인 기자회견 질문은 마무리되었다.

감정이 고양된 억양으로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던 그는 이내 다시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포토라인 앞으로 나와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역사에 가정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만약 당시 정권이 아주 조금이라도 아량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신중현은 역사의 가정이 아닌 개인사에 있어 다른 가정을 제시했다. 자신이 그런 막대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서 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음악을 끌어낼 수 있었고 몰랐던 음악성도 키워낼 수 있었다"며 "그래도 명예는 남은 것 같다"고 평했다.

이런 발언은 떠나는 자리에서 음악계와 팬들을 배려한 폭넓은 아량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원한 소년의 '라스트 콘서트'

현재 전국을 돌며 은퇴 투어 중인 신중현은 다음달 1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리게 될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라스트 콘서트'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콘서트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단독 콘서트를 혼자 2시간 동안 끌고 가는 저력이 나의 주무기가 될 것"이라며 "화려한 쇼적인 면보다는 연주하고 노래하고 곡 설명하고 전체를 지휘도 하며… 순전히 나의 음악성만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마지막 공연을 설명하는 작은 체구의 거장 음악인의 표정은 끝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시작, 그치지 않는 현재진행형을 말하는 듯했다. 내 삶에서 어떻게 음악을 지울 수 있겠느냐며 빙긋 웃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연습실 '우드스탁'에 붙여 놓은 '예순 소년 신중현'이라는 휘호처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신중현의 얼굴에는 주름살 너머로 아이의 웃음을 떠올릴 만한 순수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이제부터 나의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으며, 여전히 '평화와 음악의 나날'을 꿈꾸는 그는 자신이 말하듯 '소년'이다. 기자회견장은 조촐했지만, 그의 공연장 그리고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마음 속은 예순 소년의 기타와 목소리로 터져나가기를 바란다.

'록의 대부'를 넘어선 '한국 대중음악의 개척자'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

1955년 17세 나이로 미8군 무대에 처음 오른 그는 한국 최초의 록 그룹 '애드 포(Add4)'로 1964년 '빗속의 여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박정희 정권 때 정권 찬양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수많은 록 밴드를 결성하며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그는 그룹의 리더로서 뿐만 아니라 펄시스터즈, 김추자, 박인수, 장현, 김정미 등을 톱 싱어로 키우는 등 음악에 관한 한 연주활동, 작곡, 스타 제조기 등 모든 면에서 출중한 면을 보였다.

록 음악의 황금기였던 60-70년대를 거치며 영미권의 전형적인 록 음악을 그대로 수입하기 보다는 국내 대중 가요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노력한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록 뿐만 아니라 펑크(Funk), 소울(Soul), 싸이키델릭 등의 음악까지 장르의 영역을 넓히며 가요와 접목하는 데 힘을 썼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톱 싱어를 발굴해 내고 여러 스테디셀러 히트곡을 냈지만, 사실 그렇다고 신중현 본인이 메인 스트림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록이든 재즈든 밴드 음악이 대한민국 땅에서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신중현은 지난 7월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은퇴 공연을 펼쳐왔으며 다음달 17일 서울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