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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맞이 경로잔치, 옥탑에선 재미있는 행사들을 무료로 훔쳐볼 수 있다.
ⓒ 박봄이
옥탑 생활 어언 6개월. 사하라 사막의 가뭄보다 더 살인적이라는 '세렝게티 옥탑'에서의 여름도 무사히 견뎌내었다.

그리하여 세렝게티 옥탑에도 곡식은 영글고 동물들은 새끼를… 아무튼 가을이 찾아왔다. 옥탑의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옥탑인들은 그 겨울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사(凍死)를 할 수도, 편안히 겨울잠을 자는 곰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옥탑의 밤은 지하 및 평지 거주인들의 밤보다 춥다. 말 그대로 낮에는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나 밤에는 바로 겨울이 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 강원도 감자밭을 뒤엎었던 비, 바람, 번개가 몰아치던 날, 옥탑은 비상사태였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여름 모기들과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타령'을 우지지더만 영악한 것들, 다음날 날이 추워지자 모두 모습을 감췄다.

대신 번쩍 번쩍 콩을 구워 잡수시는 번개와 내 눈물같이 영롱한(!) 빗방울이 장대처럼 쏟아져 내렸고 별책부록으로 창문을 깨 잡수시려는 듯 바람까지 불어주셨다. 요즘 들어 일찍 취침드시는 아침형 인간 모드에 돌입한 꼬냥이. 밤 9시에 잠자리에 들려 하니 사방에서 내리치는 번개 소리에 차마 취침하지 못하시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잠 좀 자려 하면 번쩍! '우르릉', 일어나 앉으면 잠잠하고 다시 자려고 하면 번쩍! '우르릉 쾅'… 지하 및 평지 거주인들은 그저 번개려니 하겠지만, 옥탑거주인들에게 이런 날씨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지난날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한다. 즉, 벼락맞아 죽진 않을까 하는 생과 사의 고민까지 하게 된다는 말이다.

천둥·번개치면 생사 고민까지 하게 되는 옥탑인들

그날부터 시작된 세렝게티 옥탑의 가을 체험.

다음날 아침, 모처럼의 아침형 인간 모드를 실패하고 퀭한 눈으로 어디 날아간 장독대는 없나 살펴보고 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올라오신다. 직업군인 출신의 하얀 눈썹이 배추도사를 연상케 하는 분이시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우렁차신지. 이 분과의 사연도 가히 '인간극장' 수준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 하기로 하자.

아무튼 첫째는 청결, 둘째는 '타도 개xx'를 외치는 이 양반. 꼼꼼하기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반이라 아침 6시만 되면 올라와 옥상은 밤새 안녕했는지를 점검한다. 어젯밤의 사태에 대해 '음, 이쯤이면 채비를 해야겠군'하고 느끼셨는지 뭔 발포 폴리스틸렌… 그냥 스티로폼과 잡다한 공구들을 들고 올라오신다.

"새댁!"

아 정말, 시집도 안간 아가씨에게 저 양반은 처음 본 날부터 새댁이랜다. 뭐 그러려니 하고.

"보일러가 말이여, 이게 추위에 아주 약해. 겨울에는 꽁꽁 얼어서 녹이려면 돈이 수십 깨진단 말이여, 그리고 세탁기 물이 얼면 하수도 막혀. 꼭 알아둬야 혀. 이리 와서 봐봐."

배추도사 할배는 항상 꼭 눈으로 보여주고 같은 설명을 5번 내지는 7번을 하셔야 한다. 그냥 '알겠어요' 라는 대답으로는 절대 성이 안차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냉큼 달려나가 할배 옆에 꼭 붙어 '경청'을 시작한다.

"이 보일러를 스티로폼으로 이렇게 안아주야 혀, 추위에 아주 약해. 꽁꽁 얼면 돈이 수십 들어가. 세탁기물도 잘 내려야 혀, 안 그러면 하수도 막혀."

"어머나, 스티로폼으로 막으면 되는군요. 세탁기관은 올려서 기울일게요."

"그려, 그래야 혀, 스티로폼으로 안아두면 안 얼어. 이게 추우면 얼어. 그럼 돈이 수십 들어가, 세탁기 관도 기울여야 하수도 안 막혀."

드디어 옥탑방 찾아온 매서운 바람

듣다 보면 나중엔 웃음이 배실배실 나온다. 처음엔 저 할배가 뭔 드라마 대사라도 외우시나 싶었지만 익숙해지니 제때 대답만 해주면 된다 싶어서 그러고 있다. 세렝게티 옥탑의 맹수인 배추도사 할배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꼬냥이의 삶의 방법이다.

"오늘부터 엄청 추워질 거여, 스티로폼으로 안아뒀으니께, 보일러 안 얼 거여, 얼면 돈 수십 들어, 세탁기 관도 세탁할 때는 아까 보여준 대로 해놔, 안 그러면 하수도 막혀."

기어이 7번인가를 채우시고 내려가는 배추도사 할배. 그러나 오래 산 양반들의 말은 무시할 것이 못 되는지 정말 그날 밤부터 '엄청시리'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창문을 두들겨 패는 바람은 그저 바람이 아니고 혹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원한이 맺힌 혼령이 '문을 열어라, 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하는 것처럼 공포스러웠다.

차라리 '켄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 오즈로 건너간 도로시와 토토는 동화스럽기라도 했지, 목동 외딴 옥탑방에서 바람을 가장한 혼령에게 당하는 꼬냥이와 덩치가 커서 날아가지도 않을 슈나우저 두 마리는 너무 괴기스럽지 않은가.

더군다나 기온은 홀라당 내려가 방안 공기는 남극이 따로 없다. 옥탑방 불침번 보일러 녀석을 아무리 돌려봐도 그 무서운 '웃풍'까지는 지 몫이 아니라며 포기하고 만다. 날이 추워지면서 점점 둔해진 복댕이와 삼식 두 녀석은 이불 안에서 도통 나올 줄을 모르다가도 바람이 창문을 '두다리면' 혼비백산으로 튀어나와 "워우~!!!" "우웡~!!" 하며 짖고 울어댄다.

"니들이 더 무섭거던?"

덜덜덜.

슬슬 겨울잠에 들어가 보실까

이제 11월, 스티로폼으로 보일러를 안아주고 내일이면 배추도사 할배가 방안 창문 사이도 막아주신다 했으니 대충 꼬냥이가 겨울잠을 잘 옥탑방의 겨울 채비는 끝난 것인가.

앗, 몇 가지 빠진 게 있다. 머리가 들어갈 만큼 커다란 머그잔과 넉넉한 커피와 코코아. 그리고 산처럼 쌓아두고 읽을 만화책. 더불어 시린 무릎을 덮어줄 무릎담요까지.

이 정도면 세렝게티 옥탑방에서도 포근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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