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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들 상당수가 영국을 떠나 이민가려 한다는 내용의 8월 2일자 BBC 인터넷판 기사.

최근 상당수 영국인들이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BBC 뉴스 인터넷판 2일자는 이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영국에 들어와 살려는 외국인 망명자들과 이민자들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번 결과는 현 '영국사회'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절반 이상은 이민 고려... 영어권·과거 식민지 국가 선호

BBC의 의뢰를 받은 자료조사 전문기관인 ICM은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1002명의 영국인들을 무작위로 뽑아 전화 인터뷰를 실시했다.

내용은 '이민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왜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간다면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가?' '이민을 가지 않겠다면 왜 그런가?' 등 이민에 대한 영국인들의 전반적인 의식이었다.

놀랍게도 '가까운 장래에 이민을 실제로 가고 싶다'라고 대답한 영국인들은 2003년에 비해 두배인 13%나 되었다. 또한 그간 이민을 고려한 적이 있다거나 앞으로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한 영국인들도 절반 이상이나 되었다. 특히 25세 미만의 젊은 층 4분의 1 정도는 앞으로 이민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생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영국보다 더 좋은 날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 밖에도 '영국의 물가가 비싸서'라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영국의 현재 모습이 싫어져서'라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민 선호국가 1위는 영국에서 보통 '다운 언더(Down Under)', 즉 '저 남쪽 아랫동네'라고 부르는 호주였으며, 그 밖에도 캐나다·뉴질랜드·미국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어를 쓰는 나라들에 대한 선호가 대체적으로 높았다. 한편, 영국인들의 여름 피서 문화도 반영된 듯 스페인이 선호국 2위에 올랐다.

ⓒ 오마이뉴스 성주영
"영국 사회는 싫어, 다른 곳은 여기보다 낫겠지"

BBC 뉴스 인터넷판 2일자는 2004년 한해에만 35만명이 영국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10년 내 영국 이민자 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영국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외국으로 나가는 영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20년전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생활고에 지쳐 외국으로 이민가려던 당시 영국인들과 현재 영국인들은 다르다.

현재 이민을 고려하는 영국인들은 다양한 삶의 모습이란 가치에 더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조사 결과가 던지는 가장 큰 시사점은 BBC 지역사회갈등 담당전문기자인 도미닉 카산니의 견해처럼 '영국 사회' 그 자체다.

영국의 경제가 심각해지고 불황이 심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수십년간 영국은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싶어했던 나라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새로운 삶에 성공해 아예 영국인화되어버린 사람들도 많다. 70년대 영국으로 이민을 많이 온 인도-파키스탄계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지금도 영국에 들어와 살려는 망명자들은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불법 이민자들도 많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불법 입국하는데 드는 비용이 불과 150파운드(한화 약 28만원)밖에 안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의 망명자 처리문제는 변함없이 각 정당간의 첨예한 대립 사안들 중 하나다.

이처럼 영국으로 들어와 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은 지금도 많다. 영국에서 외국으로 나가 살려는 영국인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외국 생활은 천국" - "영국인에겐 영국이 최고"

이런 엇갈리는 상황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 역시 엇갈리고 있다. 댓글 문화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영국임에도 불구하고, BBC의 여론종합 게시판에는 1000건 이상의 의견이 달렸다.

게시판에는 대체적으로외국 생활이 영국 생활보다 훨씬 낫다며 자신의 경험과 현재 상태를 밝히는 네티즌들이 많다.

필리핀으로 이주해 필리핀 여성과 함께 살고있다는 하웰씨는 "필리핀 생활은 멋진 집과 자동차, 낮은 물가와 세금, 거의 공짜이다시피한 맥주, 80개 TV 채널의 천국"이라고 말했다. 또한 5년전 호주 브리스번으로 이민와 살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생각해 보면 영국 날씨는 끔찍했으며, 호주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인에게는 영국이 최고다' '영국적 삶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강변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영국 써리주에 살고 있다는 한 영국인 네티즌은 "외국에 함께 살고있는 당신들의 자녀들이 독립하게 되면, 영국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부분은 조사 결과가 현 블레어 노동당 정부에 대한 성토와 맞물려지고 있다는 면이다.

많은 영국인들은 해마다 큰 폭으로 인상되는 공공요금,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의료나 공공서비스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들도 게시판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 결국 이번 결과는 현재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 영국은 이미 다인종국가다. 중소 도시에는 백인의 비율이 높지만, 대도시에는 여러 인종들이 고루 섞여 함께 살고 있다. 사진은 런던 중심가인 옥스퍼드 서커스의 거리 모습.
ⓒ 김성수
수십년 뒤, 영국의 모습은?

이런 와중에 최근 영국 정부는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를 제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인디펜던트>지 인터넷판 7일자에서 존 리드 내무장관은 "유럽연합이 동유럽지역으로까지 확대된 이후로 더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사회 안정 차원에서 이민자 숫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영국은 의사·간호사·프로그래머 같은 전문직은 물론, 배관공·의복수선공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 부문에 부족한 인력들 대다수를 이민자들로 충당해 왔다. 아프리카에서 유입되어 영국 NHS(국가의료서비스)에 고용된 의사들 때문에 정작 아프리카에는 의사가 부족하게 되었다는 씁쓸한 보도까지 나온 바 있다.

또한 영국으로 들어와 살게 되는 정상적인 이민자들도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 살려는 외국인들 상당수는 안정된 선진국의 삶에 행복을 느끼려 한다. 이런 면들을 모두 감안하면 영국 정부가 이민자 제한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수십년 후, 영국 사회가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다인종적인 사회가 되어있게 될 가능성은 아주 많다. 런던 등 대도시에는 이미 이민자 상당수가 영국인화되어 있는 상태며, 영국을 떠나려는 영국인들과 영국으로 들어오려 하는 외국인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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