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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일 독일 카이저스라우테른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 E조 이탈리아 대 미국의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월드컵 한창인데 골프 얘기만

6월 15일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에서 다가오는 주말의 대형 스포츠 소식을 소개했다. 그 주말에 있을 US오픈 남자 골프에 타이거 우즈가 오랜만에 등장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가 주요 관심사였고 곁들여 미셸 위와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그 스포츠 전망에서 단 한마디도 월드컵 축구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월드컵이 개막한 지 며칠 후였는데도. 게다가 자국 팀이 경기를 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일언반구 없었다.(물론 미국팀이 진 바로 다음 날에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주말에도 월드컵 경기들이 줄줄이사탕처럼 기다리는데 축구 얘기는 전혀 없다니. 미국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초라한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확실히 미국은 축구에 대해 삐딱하다. 이름부터 보라. ‘사커’(soccer)가 뭔가. 영어를 쓰는 다른 나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인도 유럽어 계열 나라들도 ‘풋볼’이라고 부르는데 미국만 유별나게 ‘사커’란다.

하긴 미국에서 ‘풋볼’을 ‘풋볼’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미국에서 ‘풋볼’은 발 뿐 아니라 손도 쓰는 ‘미식 축구’를 가리킨다. 그리고 미식 축구가 미국 프로 스포츠의 총아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에서 축구는 원래 슬랭이었던 말인 ‘사커’란 이름으로 불리며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 할 밖에.

도대체 뭐가 문제? 왜 인기 없지?

미국에 축구가 도입된 역사는 깊다. 1862년 동부에 미국 최초의 축구 클럽이 생긴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면 100년이 넘은 역사다. ‘사커’가 완전히 생소한 종목이 아닌데도 미국에서 왜 그리 인기가 없는 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미국 특유의 텔레비전 방송 생리에 안 맞는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10분이 멀다하고 광고를 집어넣는 미국 상업 방송에서 한 번 시작하면 45분간 광고 없이 가야하는 축구는 거의 난센스에 가깝다.

미식축구, 메이저리그 야구, 프로 농구, 아이스하키, 그리고 테니스, 골프 등,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운동 종목이 워낙 많다보니 축구처럼 세계 무대를 제패하지 못 하는 미국 축구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한다.

이번 월드컵도 큰 예외는 아니었다. 통상 주말에는 메이저 채널 중 하나인 ABC가 중계를 하고 평일에는 케이블 방송인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이 중계를 했다. 그러다가 월드컵이 끝날 무렵에는 주말인 토요일에 열렸는데도 3-4위 전이 공중파 방송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독일과 포르투갈이 3-4위전을 치르는 시간, 한 공중파 메이저 방송은 남자 골프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2002년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올해 월드컵 출전할 때도 피파 랭킹 7위였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 '사커'와 '풋볼' 간의 혼란을 소재로 만들어진 월드컵용 광고. 왼쪽의 미국인이 셰브첸코에게 "우리 '사커'를 너네는 뭐라고 불러?"라고 물으면 셰브첸코가 "풋볼"이라고 대답하면서 시작한다.
미국 축구의 또다른 얼굴

그러나 인기 없는 ‘사커’ 그것만이 미국 축구의 전부가 절대 아니다. 미국에서 지난 10-20년간 축구는 눈에 띄는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년 축구 인구가 특히 그렇다.

‘미국 유년축구 연맹’(US Youth Soccer Association)은 미국 전역에 걸쳐 주마다 한 개 이상의 지부를 두고 있는데 등록된 회원 수가 3백만 명을 넘는다. 회원들은 5세-19세 사이 남녀 어린이/미성년자들이다. 1974년 발족할 당시에 ‘미국 유년축구 연맹’의 회원 수가 겨우 10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30년 여에 걸쳐 괄목할 성장을 한 셈이다. 현재 ‘미국 유년축구 연맹’은 ‘미국 축구 연맹’의 가장 큰 산하 기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이전에는 학교 운동 경기로서 축구가 미식축구에 늘 밀렸다. 두 종목의 시즌이 겹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흔히 미식 축구만 가르쳤다. 그러나 지난 10-20년간 미국 학교 체육의 지형도가 크게 바뀌었다.

축구가 미식축구보다 비용도 저렴하게 들고 간단하며 남학생 뿐 아니라 여학생도 차별 없이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큰 매력으로 등장하면서 미식축구 뿐 아니라 축구도 함께 가르치는 학교들이 증가했다. 현재 축구는 미국 초중고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운동으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기다.

즉 미국에서 프로 축구는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해 미미한 존재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뛰는 운동으로는 그 중량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여자 축구가 남자 축구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도 이채롭다.

▲ 일명 스포츠바라 부르는 술집에서 보는 축구. 객관적으로 미국에서 프로 축구의 인기가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지만 앞으로는 계속 인기가 올라가리라 예상한다. 점점 탄탄해지는 유년 축구 인구가 한 이유고 축구에 열광하는 중남미 출신 인구가 급증하는 것도 한 이유다.
ⓒ 윤새라

축구와 엄마가 무슨 관계?

게다가 ‘사커 맘’(Soccer Mom)은 또 어떤가? 우리 말로 직역하자면 ‘축구 엄마’가 될 이 표현은 미국에서 널리 퍼진 영향력 있는 사회 현상이다. 대체 축구와 엄마가 무슨 관계? 간단히 말해 ‘사커 맘’은 밴이나 SUV로 자식들을 방과 후 축구장에 실어다 나르는 엄마를 가리키는 말로 시작됐다.

1980년 후 미국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오후에, 즉 보통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을 축구장에 데려다 주는 엄마라는 것은 한마디로 중산층 이상 되는 집 부인들이라는 뜻이다.

남편 혼자만 돈을 벌어도 생활이 되는 집 부인들이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보다 아이들 방과 후 활동을 돌볼 여력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커 맘’들은 고등 교육을 받은 여자들이 대부분인데 따로 직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식 교육에 아주 적극적이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대선에서 눈에 띄는 표심을 형성했다. 1990년대에는 클린턴에게 기울었지만 9/11 테러 사태 이후에는 가정의 안위를 우선시 하는 사커 맘들이 대거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선거 때마다 ‘사커 맘’의 맘을 잡으려는 경쟁이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치열하다.

이처럼 2006년 현재 미국 축구의 진정한 힘은 월드컵용 축구에 있지 않다. 미국인들은 축구를 보기보다 직접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커’는 정치 용어로도 자리잡을 만큼, 사실 알고보면 인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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