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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제 신록은 제법 짙어가고 계절은 여름으로 내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휴일을 맞아 시골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 뵙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도 내리쬐는 햇볕과 후텁지근한 바람에 여름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데 아이 둘이 "아이스크림 먹고 가자"며 졸랐습니다. 저는 차를 도로 가장자리에 세웠고 아이들은 가게로 뛰어갔습니다.

혼자 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새댁, 어디까지 가?
"시내까지 가는데요."
"나 좀 태워 줄 수 없을까? 차를 놓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거든..."

차를 태워 주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고라도 나면 할머니에게 더 큰 피해가 발생할까봐 염려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할머니 혼자 차를 기다리는 게 힘들 것 같았고, 우리 시어머님 얼굴이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타세요."
"아이고 새댁 고마워요."

잠시 후, 우리 아이들 둘이 쪼르르 달려 와 차에 올랐습니다. 아이들은 두 개 밖에 사오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내 얼굴만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할머니 하나 드려라."
"아니, 나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난 괜찮아."

할머니가 극구 사양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아이들만 먹게 됐습니다. 시내로 향하면서 할머니와 30여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머니는 친척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 목적지인 병원에 도착해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기를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갑을 뒤적이더니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셨습니다.

"할머니, 그냥 내리세요."
"아니야, 얼마나 고마운데. 자! 맛있는 것 사 먹어."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2천 원씩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할머니는 뜻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 차비가 너무 비싸요."
"괜찮아, 그 고마움에 비하면 비싼 것 아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돈을 받았습니다. 버스 요금은 고작 900원인데 할머니는 무려 4.000원이나 주신 겁니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였고, 정말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꼭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의 모습처럼 정겨워 보였습니다. 나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이란 걸 우리아이들도 느꼈으면 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미디어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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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가 되고 싶은 작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뭇잎 보다 작은 행복 내 발밑에 떨어진 행복 줍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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