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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카키 히데히로의 <풀들의 전략>
ⓒ 도솔오두막
잡초의 삶과 사람의 삶은 닮았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작은 들꽃들과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그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도 그들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삶의 걸음걸이를 멈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이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들꽃은 그냥 들꽃이 아니라 나의 멘토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들꽃, 혹은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은 절망이라고는 하지 않는 존재, 그저 순해빠지기만 한 존재로만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생소한 '잡초생태학' 전공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단언한다. 큰 야망을 가진 잡초도 있고,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 사람의 발에 밟히는 삶을 살아가는 질경이도 있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해하는 땅빈대도 있다. <풀들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미카미 오사무의 세밀화와 함께 재미나게 풀어간다.

시행착오와 곤경을 극복하는 풀들의 전략을 읽다보면 '그래, 이건 내 이야기야!' 무릎을 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어떤 풀을 닮았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된 50가지 야생초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 더 정감이 간다. 그들의 생존전략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이다. 더불어 살아감의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끝내 자신을 지켜가는 그들의 전략을 보다보면 어떤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 되새겨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 속에 있을 때처럼 삶에 힘을 주는 에너지들이 이 책에는 충만하다.

꽃들의 전략, 그 몇 가지를 소개한다

▲ 광대나물
ⓒ 도솔오두막
광대나물은 매혹적인 입술로 벌을 유혹한다. 그래서 아랫입술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있다. 그 입술에 취해 벌이 아랫입술에 착륙을 하면 꽃 안쪽을 향해 몇 가닥의 선이 그어져 있다. 립서비스를 통해서 벌을 유혹하고 벌이 꽃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윗입술 아래에 숨어 있던 수술이 조용히 늘어지면서 벌 등에 꽃가루를 붙인다.

필자는 이런 광대나물의 전략을 보면서 어렸을 적 친구의 등에 '나는 바보'라고 쓴 종이를 붙이고 숨을 죽여 가며 웃던 장난과 비슷한 행동을 떠올리며 소개한다. 이 대목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신기하다.

광대나물은 벌이 사라지는 시기가 되면 폐쇄화를 피워 가루받이를 하는 전략을 택한다. 입술을 열어 벌을 유혹하는 전략과 폐쇄화를 통해 가루받이를 하는 전략에 대해 '구변이 좋은
광대나물조차 입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라고 정리를 한다.

마치 피에로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광대나물, 관객들을 웃고 울리려면 언변도 좋아야 할 것이고, 때론 말이 아닌 행동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해야 할 것이다. 참 재미있는 상상력이며 동시에 그 작은 풀이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능수능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 참나리
ⓒ 도솔오두막
참나리는 붉은 색깔로 호랑나비를 유혹한다. 붉은 색깔은 새나 동물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이다. 참나리는 주로 호랑나비에게 초점을 맞춰 전략을 세웠다. 나비는 빨대와 같은 긴 입을 갖고 있어서 수술이나 암술을 건들지 않고 꿀만 훔쳐갈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참나리는 꽃을 아래로 향해 피는 전략을 구사했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서 꿀을 빨아야하니 수술이나 암술을 발판으로 궁색하게 매달려서 날개를 파닥이며 꿀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략 1단계에 불과하다. T자 모양의 수술은 어떤 각도에서도 나비의 날개에 꽃가루를 붙일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3단계는 꽃가루에 들어있는 점액질로 나비의 날개에 척척 달라붙는 전략을 구사한다.

참나리는 이런 전략 말고도 다른 생존전략도 많이 가지고 있다. 우아한 꽃 참나리는 그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꽃도 자신의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전략들을 구사하고 있는데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우아하게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전략들이 필요할까?

물론, 이들 최고의 전략은 '다른 생명과의 조화로운 삶'이다.

▲ 강아지풀
ⓒ 도솔오두막
개인적으로 '똥개풀'이라고 부르는 강아지풀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다. 강아지풀의 꽃말은 '놀이'라고 하는데 강아지풀은 모든 어린이들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친근한 꽃이다.

강아지풀의 전략은 다른 풀들과는 다른 고성능 광합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C4회로라고 하는 이 시스템은 이른 바 터보엔진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높은 여름에도 건조한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터보엔진은 연료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는 햇살이 부족하거나 기온이 떨어지면 광합성 시스템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햇살이 적고 기온이 낮은 가을에도 치렁거리고 피어나는 가을강아지풀(일반 강아지풀보다 3~4배는 크다)은 왜 그렇게 클까? 동아시아잡초였던 강아지풀이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다시 동아시아로 역수입되면서 퍼졌기 때문이다.

▲ 개망초
ⓒ 도솔오두막
개망초는 '이스케이프잡초 Escape Weed'중 하나이다. 원래 원예종으로 들어왔지만 점차로 다른 화사한 꽃들에 밀려 스스로 인간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꽃이다. '핑크 플리베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개망초는 화사한 꽃들에 밀리고 밀려났고 이제는 더 나아가 해로운 잡초로 여겨지자 제초제를 통해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개망초는 제초제를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돌연변이를 탄생시키는 전략으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이른바 인간을 향한 잡초들의 저항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망초의 성공스토리를 보는 것이다. 계란후라이꽃이라고도 부르는 개망초, 제초제로도 뽑아버리는 것으로도 그들의 저항을 잠재울 수 없다. 이들을 보면서 아주노동자를 떠올렸다.

▲ 토끼풀
ⓒ 도솔오두막
'고난 속에서 자라는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쓰여 진 토끼풀에서는 네잎 클로버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 한 가지 이유 중에는 생장점이 상처를 받는데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있는 토끼풀에서는 종종 네잎 클로버를 찾을 수 있지만 꽃밭 속에 자리하고 있는 토끼풀에서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행복이란 밟히며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풀들, 그들의 전략은 다 최상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전략이 인간들의 전략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그러나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한 전략은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에 뒤쳐지지 않는 것, 남들 보다 많이 갖는 것 외에는 없는 듯 보인다. 이런 경쟁사회 구조를 뒤로하고 다운쉬프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 역시도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전략을 세운 것이리라. 물론, 도시에서 경쟁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나름대로의 삶의 전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한편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금 내 전략이 제대로 된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이 책에는 50가지 풀들의 전략이 잡초학 연구가의 깊이 있는 관찰과 과학적인 내용들로 소개되어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친근감과 놀라우리만큼 지혜로운 생존전략을 통해서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 소개 : 이나가키 히데히로 Inagaki Hidehiro
1968년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오카야마 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전공은 잡초생태학이며, 95년 농림수산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시즈카현 농업시험장에서 근무하며, 대지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잡초의 세계에 빠져 지내고 있다. 좋아하는 잡초는 개불알꽃.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미카미 오사무 그림, 도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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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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