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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상호
무당개구리는 위협을 받으면 자신의 배를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빛깔은 경고를 뜻한다. 배를 보고 자신을 잡아먹지 말라고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당개구리가 보이는 특이한 행동이다.

무당개구리의 영어이름은 'Fire-bellied Toad'이다. '불꽃같은 배를 가진 두꺼비' 쯤으로 번역하면 좋을까? 하여튼 영어이름도 배를 드러내 보인 행동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이름에 두꺼비가 붙어있으니까 두꺼비와 가까운 종류일까?

아니다. 두꺼비와 물두꺼비가 두꺼비과에 딸린 종류들인 반면, 무당개구리들은 '무당개구리과'라는 독립된 과에 딸린 종류이다. 이곳 강원도에서는 무당개구리를 두고 '고추개구리'라고도 한다. 역시 배에 있는 붉은 빛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본다.

지난 달 30일에 개구리들을 살펴보기 위해 나선 길에서 무당개구리에 대한 새로운 표현을 들었다.

"고추개구리, 이거는 나쁜 개구리야."

내가 열심히 길바닥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그곳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독이 있어서 이거 먹었다가 큰일 난 사람이 있다. 그러니 나쁜 개구리지."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먹지 말라고 경고하는 개구리, 배를 뒤집어 보인다는 그 무당개구리를 굳이 먹었다가 탈난 게 사람 탓이 아니라 무당개구리 탓이란 말인가?

ⓒ 손상호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나서 길에 나와 있던 무당개구리 한 마리를 길옆으로 옮겼더니 녀석은 앞서 소개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배를 뒤집고서 몸의 붉은 무늬를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가만히 보니 붉은 빛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붉은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가 나있다. 검은 무늬는 등에도 나있다. 대개 점무늬를 띄고 있는데, 개체마다 다르게 나타나 있다.

무당개구리의 등은 배와 달리 대개 풀빛을 띄고 있다. 숨기에 좋은 빛깔이다. 몸은 납작하고 청개구리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디를 잘 기어오른다. 사진 몇 장을 찍는 사이 배를 드러낸 녀석도 힘들었던지 등을 펴고 내 눈치를 살핀다. 다시 건드리자 곧바로 배 드러내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 손상호
녀석을 놓아주고 나서 다른 녀석들을 살펴보았다. 왼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녀석이 보였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흘림이 심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날을 넘기기 어려울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개구리를 치료하는 곳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냥 내가 보기에 당장 안전한 곳으로 생각되는 쪽으로 밀어주고 말았다. 개구리들을 바라보는 현재 내 시각의 한계이기도 하다.

ⓒ 손상호
ⓒ 손상호
찻길은 무당개구리에게 전쟁터 같은 곳이다. 길바닥 곳곳에서 무당개구리들이 깔려 죽고 있었다. 알을 갖고 있다가 깔려서 알을 드러낸 녀석도 볼 수 있었다. 가다가 눈치를 보느라고 멈췄다가 그만 차에 깔린 녀석도 있었다. 짧은 구간 안에서 수십 마리가 죽어있었다. 미쳐 도와줄 여유도 주지 않았다.

아주머니께서 또 한 말씀 하셨다.

"여기 여름에 개구리들 많거든. 그런데 어떻게 여기 개구리 죽는 것을 알았수?"
"내가 하는 일이 그거랍니다."

대답을 해놓고 나 스스로 머쓱해졌다. 개구리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 일인 사람, 개구리들의 죽음을 사진에 담는 사람, 그것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 그렇다고 개구리들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치료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기록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단지 사람들이 만든 온갖 장애물이 야생동물인 개구리 무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이다.

발 밑에서 죽어 가는 것이 비단 무당개구리들뿐만이 아니지만 그날과 그 다음날 나는 많은 무당개구리들이 죽은 것을 보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내가 듣기로는 여름철에 비린내가 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 비린내를 맡고 단기간에 짧은 구간에서 얼마나 많이 죽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엽기적인 상상은 나의 특기란 말인가? 많은 죽음은 그만큼 많은 수가 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냥 넘겨버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많은 죽음을 무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무당개구리가 전하는 또 다른 경고는 아닐까?

또 한 마리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무당개구리들을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리지 않았다. 녀석들은 도대체 어디를 가기 위해 그리도 위험한 찻길을 건너는가?

사람들은 흔하다고 하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사는 춘천 지역을 포함한 강원도에서는 무당개구리를 보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처럼 녀석들이 길 바닥에 무수히 쓰러져 죽어가도 나 몰라라 하면서 우리는 녀석들을 단지 독을 지녀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나쁜 개구리쯤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는데 관심을 가질 것인가?

무당개구리는 나쁜 개구리이기는커녕 보호받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놓여있는 불쌍한 개구리, 슬픈 개구리, 살아서도 죽어서도 경고하는 개구리이다.

그래서 나는 아래처럼 당부하고 싶다.

- 비상등을 켜고 차를 조금 천천히 하고, 발밑에 움직이는 것들을 생각했으면 한다.

- 무당개구리들이 많이 죽는 지역들은 얼마간 정해져 있다. 각 지자체나 자연보호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그런 곳들을 조사해서 일정한 때에는 속도를 줄이도록 하는 표지판을 세워주면 어떨까?

- 무당개구리 독은 먹지 않으면 되고, 만지고 나서 손을 씻으면 되는 독이다. 독을 가진 뱀들처럼 누구를 공격하는 독이 아니어서 별로 위험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월간지 '자연과 생태'에 보낼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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