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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배아복제줄기세포'로 온 국민이 들떠있는 가운데, 한 언론이 이를 의심하며 재검증을 요구한다. 수많은 언론 매체들이 재검증을 요구한 언론 매체를 '매국노'로 규정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집중 공격하기 시작한다. 일부 진보 언론 매체들은 신중하게 재검증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얼마 뒤,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배아복제줄기세포'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면2. 한 정당의 대표가 찬바람이 부는 당사 밖에서 '빨갱이들이 나라를 삼키려 한다.'며 오랜 시간 동안 시위를 벌인다. 몇몇 신문사들은 대표의 말을 인용해 현 정권을 '친북 좌파적 성향의 빨갱이 집단'으로 규정한다. 이에 반대하는 언론 매체들은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론의 압박을 느낀 정당의 대표는 당사로 복귀한다.

위의 두 장면은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모습이다. 필자가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을 보면서 위의 두 장면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지였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은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 1909~·1957)는 1950년 2월 "미 국무성에는 57명의 공산당 당원증을 소지한 자와 2백5명의 공산당 동조자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선언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매카시의 폭탄선언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매카시의 발언은 군중심리를 악용하는 무책임한 선동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이 불거지면서 공포심을 느낀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당시 미국에는 수많은 언론 매체가 있었지만, 하나같이 매카시 의원에게 찍히는 것이 두려워 그의 근거 없는 마녀사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언론 매체들은 상업성을 위해 매카시의 광적인 행동들을 통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매카시를 제외한 다른 의원들 역시 자칫 매카시 의원에게 찍혀, 정치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나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당당히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법. 당시 CBS의 간판 앵커였던 에드워드 머로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씨 잇 나우>를 통해 매카시 의원의 광기를 맹렬하게 비판한다. 영화에서 등장 하듯이 <씨 잇 나우>의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

광고주의 압박과 함께 심지어는 방송시간대가 주말로 옮겨지기도 하는데, 머로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회적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강조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최후의 승자는 머로였다. 매카시는 머로와의 설전 끝에 결국 몰락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끝났을 수도 있던 당시의 사건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거대한 미국을 뒤흔들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매카시의 광기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거나, 오히려 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황색 저널리즘 때문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가 앞서 제시했던 두 장면은 많은 점에서 영화 <굿나잇 앤 굿럭>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유사한 모습을 살펴보면, 첫째. 특정 인물이 한동안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둘째. 언론 매체들이 앞 다퉈 달려들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자의적으로 사건을 확대 재생산했다. 셋째. 몇몇 정도를 걷는 언론 매체들에 의해 진실이 드러났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두 번째 장면에서 근거 없는 마녀사냥을 시도했던 한 정당의 대표를 제외한 당사자들이 모두 몰락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영화 <굿나잇 앤 굿럭>과 기자가 언급한 두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언론 매체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 매체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언론 매체에 노출되어 있고, 수많은 국민들이 언론 매체가 전하는 소식들이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것들을 수용한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 매체가 보도하는 것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기자는 언론 매체가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한 진실추구'를 목표로 삼고, 사회를 감시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를 올바르게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속의 배경인 지난 1950년대의 미국과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에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매카시의 후손들이 국민을 선동하고 있고, 수많은 언론 매체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황색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원 시절 "국민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런데 언론이 삐뚤어져 있으면, 국민은 삐뚤어진 세상을 보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언론인 개개인이 유시민 장관의 지지여부를 떠나서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언론 매체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의무'를 명심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해 본다.

"굿나잇 앤 굿럭!"

덧붙이는 글 | 이윤석 기자의 미니홈피 www.cyworld.com/foryou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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