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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는 사람들, 애정 직업 금전 등이 관심사

봄은 즐기라고 있는 계절이라 했던가. 신촌 거리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난 토요일(4일) 오랜만에 서울 신촌 나들이를 나갔다가, 로터리에 서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게 됐다. 무심코 바라보다 독특한 풍경을 발견했다.

'봉산철학원', '정도령', '애기동자', '총각도사', '장군보살'…. 소위 '점집' 간판들이 즐비했다. 낡고 허름한 양옥집에서부터 오피스텔까지, 다양한 곳에 점집이 들어서 있었다. 젊음의 거리 신촌에 아직까지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게 의아해 방문하기로 했다.

오전 11시는 좀 이른 시간이었는지 점을 보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겨우 만나게 된 사람이 '장군보살' 집의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는 "나는 몸이 아파서 점을 못 보지만, 저 쪽 '애기동자'에 가면 사람이 있을 거야"라며 옆집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이 곳에 꾸준히 사람이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점보는 분들의 나이를 묻자 "이 주변에서 점보는 사람들은 나이가 꽤 많다"고 말했다.

'애기동자'에 들렀다. 현대식 건물에 가려진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내부는 일반 주택과 마찬가지였다. '애기동자'라는 이름 때문인지, 점을 보는 사람은 30대 정도로 보였다. 이 곳에서 점을 보았다. 그는 방울을 흔들었는데, 점보는 방식은 직관(直觀)에 의존한 듯 보였다. 복채는 5만 원이었다.

점을 보고 난 후 '총각도사'로 향했다. 주인은 일반 빌라 건물 2층에 사무실 하나를 빌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주인이었다. 굿을 하는 '애기동자'와 달리 일대일 대화로 점을 보는 게 특징. 책상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요즘 사람이 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인은 "꾸준히 계속 온다"며 "애정운, 직업운, 금전운 등은 누구에게나 궁금한 주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연령층은 대부분 40~50대가 많다고 한다. 책상에는 사주관련 책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이 곳의 복채는 3만원이었다.

'봉산철학원'은 미리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방문하지 못했다.

사실 신촌보다는 미아리 신림동 일대가 점집으로 유명하다. 그 곳엔 수백여 곳의 철학관과 수 백여 명의 무속인들이 밀집해 있다. 최근 감자탕으로 유명한 응암동 일대 또한 먹거리와 역술을 한꺼번에 즐기려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젊은 구미에 맞는 신세대 점집, '사주카페'

보살집이나 철학원이 나이 드신 분들에게 인기가 많다면,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점집도 있다. 이른바 '사주카페'다. 이화여자대학교 앞과 국철 신촌역 부근에는 약 100여 곳의 역술원과 사주카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년 전에 생겨난 사주카페는 차를 마시며 궁합도 볼 수 있어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촌로터리를 따라 사주카페가 많다는 이화여대 앞으로 향했다. 이대 전철역에서 이화여대 정문으로 통하는 길 사이사이에는 '에로스', '앙가주망', '아이비', 'e-사주공간' 등 감각적인 이름을 뽐내는 사주카페들이 즐비했다.

'아이비'에 들렀다. 오전에 갔던 점집들과 달리 분위기가 경쾌했다. 일반 커피숍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점을 보는 '술사'들도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사주를 보러 온 김혜린(24·여)씨는 "해가 바뀔 때마다 이곳에 오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애 상담하러 올 때도 있고, 진로 상담도 하곤 한다"며 "일반 점집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분위기도 부드러워서 자주 오는 편"이라고 선호하는 이유를 말했다.

'아이비'의 사주 비용은 3천원부터 1만2천원까지로 저렴한 편이다. 근처 사주카페들의 가격도 대부분 비슷하다.

'아이비'를 나와 실제 점을 보러 'e-사주공간'에 들렀다. 그 곳 직원 박지연(24)씨는 "적성, 진로, 금전, 애정, 유학 관련 등 여러 분야 사주를 다 본다"며 '정통궁합사주'와 '애프터서비스(A/S)라는 독특한 사주방식을 소개했다.

고객들이 정통궁합사주를 택하면 카페 측에선 직업운 애정운 연애운 등 종합적인 사주를 본 뒤 티켓을 준다. 시간이 지나 고객이 사주를 본 내용이 적힌 티켓을 들고 오면 자신이 들은 항목 안에서 사주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무료로 물어볼 수 있다. 이것이 애프터서비스 시스템이다. 가격은 1만2000원이다.

e-사주공간의 '메인술사'인 상원(29)씨는 "고객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보통 연애운이나 직장운을 보려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취업이 어려워지고 나서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점을 보러 온 이승환(29)씨는 "보통 점집이나 굿하는데 가면 무섭잖아요. 여기는 편안한 분위기라 뭐 나쁜 말 나와도 별로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죠. 값도 싸고요"라고 찾는 이유를 말했다.

현재 사주카페는 신촌 뿐만 아니라 명동 종로 등 서울 각지에서 성업 중이고, 지방 중소도시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봄바람이 살짝 부는 신촌의 주말 오후, 점집과 사주카페를 끊임없이 찾는 인파는 우리 사회의 어려운 현실을 반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박혜연 배철욱 이상직씨와 함께 동행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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