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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 아르고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아토피와 천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만 같다.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온 부모가 낳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다시 오염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의 지구에서는 피부병이나 호흡기질환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문화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신비의 숲 피톤치드>에는 심한 아토피로 일상 생활이 전쟁인 아이들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이 아이들의 삶은 아토피가 지배한다. 몸을 긁는 습관과 여기저기 있는 상처 때문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렵다. 가려움을 잊고 잠들어야 하는 밤은 더욱 두렵다. 이렇게 십여 년을 고생한 아이들을 몇 달 만에 치유한 것은 나무와 숲이었다. 한 아이는 매일 아파트 앞에 한 줄로 늘어선 나무 아래에서 놀았고, 한 아이는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몰라보게 좋아졌다. 오랜 시간 동안 써왔던 온갖 방법보다도 효과적인 것은 나무와 숲을 가까이 하는 것이었다.

친환경제품, 유기농작물들, 각종 허브 제품들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얼마나 자연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풍성한 나무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도시인들,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집안에 온갖 화초와 숯을 들여놓는다. 자연 가까이에서 살기는 쉽지 않으니, 제한적이나마 집안에 자연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그래도 집안에서 화초를 기르는 것, 조금 더 나아가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은 그나마 현대인의 삶이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인 것 같다.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화분 안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이 시대의 속도에 비하면 분명 느리고 답답하지만, 어느 정도의 인내만 있으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나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과는 달리, 나무는 사람의 수명을 넘어선다. 내 부모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는 늘 그대로다. 나무는 화초처럼 하루이틀 만에 달라지지 않으며, 서서히 변화한다. 여기저기로 이사할 때 가뿐히 들고 갈 수도 없다.

나무는 우리의 속도감에 맞지 않는 존재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무는 더욱 무심하고 소홀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존재다. 가로수는 전신주나 다름없이 보여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고, 필요에 따라 종종 변형되고 옮겨지며 베어진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휘둘리기는 공원에 있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 나무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숨어있다.
ⓒ 김정혜
그러나 나무 한 그루는 그저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숨어 있다. 조안 말루프의 <나무를 안아보았나요>에 나오는, 이름조차 낯선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생태계를 품고 있다. 호랑가시나무굴나방은 호랑가시나무에만 산다. 오피어스는 굴나방에만 기생해서 산다.

호랑가시나무 열매 속에는 깔따구 애벌레가 살고, 깔따구가 사는 호랑가시나무 열매 안에서만 사는 진균류도 있다. 만약 호랑가시나무가 경제적인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베어진다면 굴나방도, 깔따구도, 진균류도, 오피어스도 줄어들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에게는 아주 간단한 결정과 실행으로 일어난다.

조안 말루프는 조애나 메이시의 ‘깊은 시간(Deep Time)’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현재라는 시간 또는 평생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벗어나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점으로서 지금을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 7대 후손에게 미칠 영향까지를 고려했다고 한다. 과거에 살았던 모든 것들은 현재를 통해서 미래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확장된 시간 개념은, 지금 당장의 이익과 목표만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알게 한다.

조안 말루프가 숲을 지키기 위해 ‘9·11 추모의 숲’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모습은 자연을 지키는 일이 지금, 여기에서, 바로 일상에서 진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가 살고 있는 농가의 한 농장이 공원으로 조성되게 되었는데, 그 농장에 있는 나무를 베어 공원 조성 기금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조안 말루프는 열대 자연림의 벌목을 막기 위해 타이 승려들이 나무에 승려의 계를 내렸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주변 사람들을 모아 나무 하나하나에 9·11 테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걸었다.

▲ “숲은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치유의 장소다”
ⓒ 김정혜
“9·11 테러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숲에 있는 나무를 한 그루씩 헌정하면, 나무들은 갑자기 생을 마친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오랫동안 숲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숲은 그들을 기억할 것이고 더불어 사람들은 그곳에서 치유받을 것이다. 숲은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치유의 장소다.”

아직 공무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나무를 베려는 계획을 폐기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숲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관심을 갖고 벌목을 하려고 하면 추모숲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공무원은 나무가 희생자를 추모하고, 희생자가 나무를 살리게 되는 그 숲의 이중적 '살림'을 이해하게 될까?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 그 나무들과 생명을 나누는 갖은 생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숲의 연관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이 숲에서 공존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은 숲을 아끼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오게 한다.

물론 나무를 베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무는 종이나 목재로서 우리에게 유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숲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을 우리가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나무에서 나오는 자원들을 기꺼이 아낄 수 있을 것이며,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유로만 숲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안 말루프,<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주혜명 역, 아르고스, 2005, 9800원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조안 말루프 지음, 주혜명 옮김, 아르고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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