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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스테르담에 있는 커피숍 간판. 안에는 커피 냄새보다는 '다른' 냄새가 난다.
ⓒ 박성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커피숍에서는 구수한 커피 냄새를 잠재우는 다른 냄새가 난다. 담배냄새는 아니다. 마치 쑥 타는 냄새와도 같은 묘한 향이 난다.

그 묘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바로 대마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암스테르담은 세계적인 대마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에서 커피숍은 그 자리에서 대마를 구입해 바로 피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대마 흡연이라니? 암스테르담 커피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커피숍에 놓인 '대마초 메뉴판'

▲ 커피숍 내부에 있는 대마 흡연 도구. '봉'이라고 불리며 물을 채워서 대마의 타르나 이산화 탄소를 약화시켜 흡연할 수 있는 도구. 일종의 물파이프.
ⓒ 박성진
네덜란드의 커피숍에는 커피, 차, 음료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 여러 나라에서(특히 아시아) 강력하게 금지돼 있는 약물, 대마 종류의 마약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가벼운 약물(soft drug)'로 분리한 대마나 해시시 종류의 경우 커피숍에서 구입할 수 있다. 커피숍은 곧 '찻집'이라기보다 오히려 대마 구입, 흡연공간이라는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커피숍에는 대마나 해시시를 별도로 정리한 메뉴판이 준비돼 있다. 무게와 종류에 따라 판매된다. 대부분 10여 가지 안팎의 대마 종류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가격은 품종에 따라 10g당 20유로에서 40유로까지 2배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미 말아 놓은 대마를 한 개비씩 살 수 있고, 대마 잎만 구입해 자신이 직접 말아 피워도 된다.

▲ 암스테르담의 한 커피숍 창가에 앉은 흡연객. 대마 흡연 후 명상에 빠진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 박성진
이렇게 대놓고 향정신성 약물을 판매하면 정신 나간 '마약 중독자'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며 소란을 피울 거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실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커피숍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퇴근길에 혼자 들러 조용히 대마를 피우며 사색에 잠긴 사람, 삼삼오오 모여 대마를 말아서 나눠 피우며 가벼운 수다를 떠는 사람들, 일반 차를 마시는 사람들. 특별하지 않은 평온한 분위기다.

영국에서 온 엔지니어 숀은 "대마가 오히려 술보다 안전하다"며 "대마가 사람을 자극하고 동요하기 보다는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술로 인한 취중 난동 같은 것은 대마 흡연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네덜란드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에도 대마가 등장한다. 1차에서 저녁 식사와 가볍게 술을 마신 뒤 이들이 무리를 지어 향하는 곳은 대개 커피숍이다. 물론 차를 한 잔 마시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가볍게 대마를 나누어 피우고 집으로 향하는 것.

네덜란드 교민 김석형씨는 "네덜란드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도 종종 대마를 흡연한다"고 말한다. 1차에서 술을 마시고 난 뒤 2차를 원하는 사람들끼리 커피숍에 들러서 대마를 나눠 피우고 회식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왜 대마를 허용했는가

▲ 암스테르담 벼룩 시장의 대마 씨앗 판매 상점(왼쪽)과 대마 사탕(오른쪽). 참고로 사탕은 일반 사탕에 대마향을 가미한 것으로단 맛이 덜 하다는 것 말고 특별한 효과는 느낄 수 없다.
ⓒ 박성진
20세기 대마초 금지의 역사

1915-1927 미국 내 개인 기호품으로서의 대마를 불법화하는 움직임
1928 영국정부, 개인 기호품으로서 대마 사용 금지
1935 중국 정부 대마 경작 금지
1936 미국 정부는 대마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다큐드라마 <대마의 광기(Reefer Madness)>를 제작 출시함. 영화계에서는 컬트 클래식으로 남아 있다.
1937 미국 전역에서 대마를 불법 약물화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남
1970년대 대부분의 서양국가에서는 B등급 약물로 지정돼, 재배, 공급, 소지가 금지됐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규모 경작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975 미국 내 의약용 대마 사용 프로그램 시도
1976 네덜란드 정부, 대마 합법화.
(출처: BBC 과학사이트)
191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 아편 조약'이 체결된 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마 역시 금지 약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후 60년대 유럽의 자유주의 사회 운동 물결, 70년대 미국의 반전 운동과 함께 대마는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970년대 미국 정부는 젊은 층에서 급속도로 확산될뿐더러 반전 평화시위에 늘 따라다니던 대마초를 금지하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다. 아울러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주도 하에 대마초 흡연에 강경대응 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세계의 흐름과 달리 초급진적 결정을 내렸다. 1976년, 네덜란드 정부는 모든 약물을 중독성, 유해성 등에 따라 '가벼운 약물(soft drug)'과 '강한 약물(hard drug)'로 나누었다. 그리고 '가벼운 약물'에 대해서는 지정된 장소에서 구입하고 흡연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로써 가벼운 마약으로 분리된 대마, 해시시 등을 피우는 것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됐다. (표현상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대마의 '합법화' 보다는 대마 사용을 '탈범죄화decriminalization' 시킨다는 측면이 핵심이다.)

▲ 주말 오후 암스테르담 한 커피숍의 풍경. 이 커피숍은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로 장식했고, 대부분의 커피숍처럼 사람이 많아도 조용한 분위기다. 밤시간에는 DJ가 음악 틀어준다.
ⓒ 박성진
반면, 네덜란드는 합법화 이듬해인 1977년부터는 헤로인, 코케인 등 강한 마약에 중독 된 사람 및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재활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매주 한 번씩 상담 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버스에 주사기를 싣고 다니며 나눠주기도 했다. 비위생적인 주사기와 환경에서 마약을 투입할 경우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마약 투입을 돕는 주사기까지 나눠주는 이러한 관대한 노력은 마약을 양지로 끌어내 장기적으로 마약 중독자의 수를 줄이고, 사회 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햇볕 정책인 셈이었다.

▲ 런던 노팅힐 축제 기간 중 등장한 마약 단속 버스. 헤로인 코케인 등 강한 마약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영국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늦게 대마에 대한 규제를 낮췄다.
ⓒ 박성진
한편, 대마나 해시시 등 가벼운 약물에 대해서는 허가 받은 장소에서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의 단속 또한 쉬워졌다. 정해진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불법으로 분류된 강한 약물(헤로인, 코케인, LSD 등)을 판매할 때는 어김없이 단속을 하게 되고, 가벼운 약물일지라도 길거리 마약상을 통해 사는 것은 단속대상이 된다.

암스테르담 경찰서 소속 마르셀 경관은 "합법화된 약물을 정해진 장소에서 구입하고 흡연하면 된다"며 "대마처럼 허용된 약물이라고 해도 길거리에서 판매하거나 아무데서나 피우는 것은 불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 과정에서 대마 재배나 공급에 관련된 범죄조직들은 밥그릇을 잃고 떠나야 했다. 경찰이 불법을 감시할 상대도 지하 범죄조직이 아닌 평범한 대마 재배 농민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네덜란드 정부의 관대한 마약정책을 두고 네덜란드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마를 위한 변명(이하 '변명')>(실천문학사)의 저자 유현은 저서를 통해 "'금지를 금지한다'는 철학과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논의와 실천이 지금까지 네덜란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힘"이라고 평했다.

'마약 햇볕정책' 효과... 뒤따르는 유럽국가들

마약에 대한 네덜란드의 관대한 포용 정책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0년 유엔 약물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네덜란드 내 마약관련 범죄 인구는 10만 명당 47명으로 조사대상 국가 중 20위를 기록했다. 지난 2일, 396g의 코케인 소지혐의로 베트남계 호주청년 응웬 투옹 반의 사형을 집행해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던 마약 초강경 대응국 싱가포르의 경우 10만 명당 46.8명으로 21위에 그쳤다.

대마 유해성 논란은 여전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펼치고 있는 관대한 대마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마의 유해성 논란은 여전하다. 아래 내용은 대마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주요 논거와 반대 논거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BBC 과학사이트, <대마를 위한 변명>)

대마는 유해하다?
* 중독 될 수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처럼 갑자기 중단하면 공격적인 충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 대마는 헤로인, 코케인 같은 더욱 강하고 유해한 약물로 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
* 대마는 담배보다 타르 함량이 높아 폐암 등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 심장이나 순환기 계통에 나쁜 영향을 준다.
* 대마는 정상적인 감각과 사고를 방해하는 향정신성 물질이다.

대마는 유해하지 않다?
* 알코올, 담배보다 중독성 낮다. 헤로인, 코케인, LSD 등 강한 약물과 달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 의약용으로 효과가 뛰어나다. 진통제 및 항생제 역할, 류머티스, 녹내장, 천식, 간질, 종양, 스트레스 해소, 두통 해소 등에 우수한 효과가 있음이 이미 입증됐다.
* 대마 흡연은 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심장에 일으킨다.
* 대마와 다른 강한 약물과 연관성이 매우 적다. "미국 내 대마 경험자는 8200만 명인데 반해, 헤로인 중독자는 1백만 명이다. 대마 사용은 오히려 다른 약물 사용을 막아준다. - 미국 린스키 박사"
* 대마는 LSD, 엑스터시와 같은 환각제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에 해가 되지 않는다.
또 마약 관련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1인당 마약 단속 예산이 1997년 기준 80달러인 데 비해, 네덜란드는 1995년 기준 20달러(법무부 발표 자료)에 머물고 있다.

때문인지 199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대마를 금지했던 유럽 여러 나라들이 네덜란드의 성공 사례를 뒤따라 대마에 대해 관대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스웨덴,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상당수 국가들이 '대마 등급 강등'과 '소량의 대마 소지 불 처벌' 정책을 펴고 있다.

심지어 대마 합법화를 놓고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던 영국 정부조차 2004년 1월 대마를 C급 마약으로 강등시켰다. 이는 의사 처방으로 살 수 있는 우울증 치료제, 진정제 같은 것들과 동일한 수준이다(그러나 대마 재배, 거래 등은 여전히 범죄로 처벌된다).

영국 경찰 총창 이언 블레어 경은 2005년 5월, BBC와 인터뷰를 통해 "법원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안에 경찰 업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며 소량의 대마 소지에 경찰이 개의치 않을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마약, 그러나 안전한 암스테르담 밤거리

▲ 암스테르담 관광 자료 중 커피숍을 모아 안내하는 자료. 뒷면에는 찾아가지 쉽도록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다. 매우 자세하고 친절한 대마 구입처 가이드인 셈.
ⓒ 박성진
암스테르담의 밤거리. 라이브 클럽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들은 바 넘어 내 맞은편에 서 있던 바텐더에게 무작정 대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바텐더는 지나치게 퉁명스럽게 "커피숍에 가라"고 일러준 뒤 손짓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

마약이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곳이지만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는 자체규율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마약이 풀린 곳이지만 사람들은 풀리지 않았다.

1998년 유럽 약물중독 모니터링 협회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의 평균 대마 흡연율은 15.6%이다. 참고로 미국의 평균 대마 흡연율은 32.9%(1997년 기준)로 조사됐다.

또한 마약 관련 범죄가 오히려 줄어들면서 시민들의 안전 체감도 역시 높아졌다. 2005년 유엔 국제 범죄피해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밤길에 안전함을 느끼는 나라' 5위에 올랐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대마용품 판매 숍을 운영하는 가스퍼는 "우리들(네덜란드인들)은 마약 합법화 후 분위기가 더 차분하고 안전해졌다고 느낀다"고 전한다.

'대마 금지'는 이데올로기에서 파생?

▲ 암스테르담 홍등가에 있는 커피숍 프리 아담. 레게의 전설로 불리는 밥 말리가 그려져있다. 밥 말리는 자본주의적 폭력, 인종 차별 등을 비판했던 가수다. 굵은 대마초를 가지고 다니며 피웠던 음악인으로도 유명하다.
ⓒ박성진
미국 닉슨 정부가 1971년 대대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관련, 담배나 술이 대마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 이면에 다른 메커니즘이 숨어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대마초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한 쌍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원은 청교도적 금욕주의에 있다는 것.

<변명>에서 유현은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무산 계급이 노동하는 것 이외의 것을 즐기는 꼴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이어 "대마초는 자본주의 발전에 해가 되는 약물로 비춰졌고 이 결과 자본주의는 대마를 거두고 담배를 내밀었다"고 평가했다.

대마가 금지된 주된 이유가 보수 정치 세력의 사회적 억압을 정당화 시키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1970년대 중반 신중현, 조용필 등 국내 음악가들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음악을 그만두어야 했다. 특히 신중현은 국민가요를 만들어 달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후 곧 대마 혐의로 음악을 못하게 된다).

미국, 유럽 등의 진보세력, 평화주의자, 반전운동가, 예술가 집단 등이 자유, 평화, 사랑의 구호와 함께 대마를 피우며 보수 권력에 저항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일까. /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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