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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도올 김용옥씨의 강의가 큰 인기를 얻어 그가 화제의 중심에 선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내용 중 한 가지가 기억난다.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는 왕자였기 때문에 남부러울 게 없어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만 파고들어 불교의 색깔이 명상적이라고. 이에 반해 기독교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긴 하지만 세속적으로 봤을 때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불우한 처지였기에 늘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그런 성향이 ‘사랑’으로 표현 됐다고 했다.

지금 소개할 두 권의 그림책 또한 불교와 기독교처럼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 일본인 작가 야시마 타로가 쓴 <까마귀 소년>이 다소 불교적이라면 미국 남부사막의 사구아로 선인장을 모델로 한 <선인장 호텔>은 기독교적 동화다. <까마귀 소년>은 내면의 평화와 바람직한 개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까마귀 소년>은 다른 사람과 무관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선인장 호텔>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베풀면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 <까마귀 소년>
ⓒ 비룡소
<까마귀 소년>은 매우 문학적인 그림동화다. 문학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설득이나 설명보다 한 사람의 삶이 느껴지게 하면서 행간에 감동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애써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교훈보다 더욱 벅찬 느낌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한 소년이 있다. 시쳇말로 표현해서 왕따 소년이다. 다른 애들보다 재치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수줍음 때문에 애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거기다 걸핏하면 지각하기 일쑤니까 애들 사이에서는 덜 떨어진 애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소년의 학교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는 외로움과 무관심 속에서 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소년의 외로움. 선생님 또한 좀 떨어지는 이 학생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 소년의 학교생활은 외롭고 행복하지 못하다.

이렇게 소외받던 소년의 진가가 발휘될 기회가 온다. 졸업을 앞둔 6학년 때 새로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는데, 선생님은 자상하게도 소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 그래서 소년이 아주 먼 거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고, 먼 길을 혼자 걸어 다니면서 까마귀 소리를 유심하게 들어서 그 누구보다도 까마귀 소리를 잘 흉내내고, 들꽃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는 걸 찾아내셨다. 소년이 매우 성실하다는 것도 그동안 소년을 무시했던 아이들에게 깨우쳐주셨다.

등교 길이 거의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멀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소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왔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개근상을 받게 됐다. 그 개근상은 소년의 인생이 앞으로도 쭉 성실하고 진지할 거라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재미도 없는 학교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먼 길을 걸어 온 소년이기에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도 어린 시절 그 모습처럼 살아갈 거라 확신하게 한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을 작가는 ‘성실함’과 ‘깨어있음’이라고 답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길을 돌아 학교에 다닌 소년의 모습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이 순탄하지 않고 폭우가 쳐 옷을 다 적시고 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몹시 걷기 힘들어도 주어진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라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노예가 돼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은 아니다. 보통 어른들은 자신이 어떤 생각에 몰두해 있거나 뭔가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음악을 아무리 크게 틀어놓아도 음악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영어테이프를 틀어놓아도 듣지를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항상 의식이 현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안 듣는 것 같아도 음악도 듣고 영어가 들리고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이 바뀌면 금방 알아본다. 무관심한 어른들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이는 아이들은 현재에 머물러 있고, 어른들의 의식은 현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까마귀 소년의 의식도 항상 현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별로 재미도 없는 학교를 오가는 동안 깨어 있음으로 인해 까마귀 박사가 되고 들꽃박사가 될 수 있었다. ‘학교 늦겠다. 빨리 가야지’가 아니라 ‘어제는 봉오리가 맺혔었는데 오늘은 입을 좀 벌렸잖아’ ‘이 소리는 좀 색다르잖아’하면서 보이고 들리는 것에 항상 마음을 열고 있었기에 소년은 들꽃박사도, 까마귀박사도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마귀 소년>이 그림동화지만 문학적 향기를 느끼게 하는 건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숯장사가 돼 시골장터에 다시 나타난 까마귀 소년. 이제는 숯장사가 된 소년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처럼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과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없는 범부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 얼마나 편안한가.

▲ <선인장 호텔>
ⓒ 마루벌
<선인장 호텔>은 미국 남부 사막에 서식하고 있는 사구아로 선인장을 모델로 해서 만든 이야기다. 아주 짧은 동화 안에 어떤 식으로 사는 삶이 정말 좋은 삶인가, 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 다 읽고 났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큰 힘을 가진 얘기라고 생각한다.

사구아로 선인장은 200여 년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다른 생명체에게 호텔의 역할을 해준다. 추위와 더위, 다른 사나운 동물들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동물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돼 준다. 두더지나 여우, 딱따구리와 같은 동물들이나 새는 사구아로 선인장의 몸을 파서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사구아로 선인장이 수명이 다해 쓰러지게 되면 이때는 개미나 뱀 등 땅 위를 기어다니는, 낮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의 안식처 역할을 하다가 완전히 호텔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됐을 때는 사람들이 와서 땔감으로 가져간다.

이렇게 사구아로 선인장은 일생동안 다른 존재에게 자신이 가진 걸 베풀면서, 다른 이를 유익하게 하면서 살았다. 책을 읽고 났을 때 짓누르는 무엇을 느꼈다. 도대체 나는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정말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는가, 하는 부끄러움이 일게 하는 동화책이었다.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비룡소(1996)


선인장 호텔

브렌다 기버슨 지음, 이명희 옮김, 미간로이드 그림, 마루벌(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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