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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숫가 살인사건> 책표지
ⓒ 노블하우스
명문 사립 중학교 진학을 위해 네 가족이 과외 선생과 함께 호숫가 별장으로 합숙과외를 떠난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 공부하기 위해 모였던 네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경찰을 부르고 모임은 해체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체를 유기한다. 아주 철저하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 살인사건>은 한국만큼이나 치열한 입시열풍으로 유명한 일본의 입시 실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응당 중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의 강박관념이나 그런 아이들을 경쟁에서 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부단히 공작을 펼치는 부모들의 모습이 작품 전편에 흐르고 있다. 이것은 지은이가 아무리 유명한 추리작가라 할지라도 무모한 일일 수 있었다. 너무나 민감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입시문제를 다뤘다는 것,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만약 지은이가 입시문제를 서투르게, 혹은 에둘러 다뤘다면 <호숫가 살인사건>은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로만 불렀을 테다. 하지만 작품은 그 문제를 과감하게 가장자리로 불러왔다. 그렇기에 <호숫가 살인사건>은 낯익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존재를 본다는 것, 특히 고등학생 때부터 준비하면 늦다 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논리에 의해 어린 시절을 빼앗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작품의 페이지마다 현실성을 부여한다.

<호숫가 살인사건>이 보여주는 장면 하나하나의 개연성은 어느 추리소설보다 확고하게 다져졌다. 추리소설을 볼 때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추리를 펼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작품을 파악하게 된다. 허나 <호숫가 살인사건>에서 그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공부 분위기를 해칠까봐 온갖 수를 벌이는 부모들의 음모를 보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체를 유기하는 것도 그렇다. 성적 나쁘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이 생기는 판에 남의 목숨 끊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쉽게 이해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호숫가 살인사건>은 그 어떤 것보다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추리소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호숫가 살인사건>은 낯익지만 동시에 불편하다. 그래서 사건이 본격화될수록 현실에서 겪었던 그 불편함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이 불편함을, 특히 자신도 일본에서 겪어봐서 충분히 알고 있을 그것을 어떻게 해소시켜주는가?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추리의 재미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결코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지은이가 만들어내는 추리세계의 재미 중 으뜸인데 <호숫가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예상치 못한 '반전의 유효성'이 몇 번이나 반복되다보니 더욱 그렇다. '일당백' 같이 여겨지는 놀라운 반전이 계속해서 등장하니 추리로서의 흥미가 만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호숫가 살인사건>의 분위기는 불편함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깔린 추리는 그것을 만회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건, 실상 불편함을 가중시켰던 '가족붕괴'의 막바지에 나타난 계부와 아들의 갈등 해소에 관한 대목이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상봉해 서로 눈물을 쏟는 걸 보는 건 분명 감동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계부와 아들이라고 한다면 어떤가? 서로에게 각각 친아들이 아니고 친아버지가 아니기에 노력해야 하는 이들이 그런 장면에서 눈물을 쏟는다면 더욱 감동적이지 않을까?

<호숫가 살인사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 장면은 작품이 주는 불편함이 기실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처럼 여겨질 정도로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불편함 뒤에 찾아오는 그 감동, 그것은 분명 <호숫가 살인사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세밀한 것에도 눈을 떼지 않는 지은이 덕분에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호숫가 살인사건>의 재미다. 시체를 유기하는 방법이나 서로 협력하는 척하지만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네 가족의 미묘한 심리전 등을 관찰하는 것은 이 작품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 한 점의 티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결벽증을 연상시키는 세밀한 구성, 입시문제와 가족 붕괴 문제를 빌미로 한 불편함과 그것을 뒤집고도 남을 감동의 피날레가 돋보이는 <호숫가 살인사건>은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추리소설에서 감동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지 않겠는가. 추리소설로서 이만하면 걸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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