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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새롭게 태어난 <바보 만들기> 겉그림입니다. 판이 끊어진 지 열한 해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이 책은 우리 삶과 교육 문제를 차분하게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 민들레
저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먹고삽니다. 책 만드는 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많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이래저래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 술 한잔을 걸치면 으레 저한테 "몇 학번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75년에 태어났다"고 말하며, "학교를 안 다녔다"고 이야기합니다.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미안하다. 보통 대학교는 다 나온다고 생각해서…" 하고 말끝을 흐리지만, 생각이 거의 없는 사람은 "그래도 알 것 아니냐. 당신은 대학교 중퇴라고 하니 학번이 있지 않겠느냐"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학번'을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술잔만 비웁니다. 그 사람이 무어라 무어라 더 떠들든 말입니다.

.. 아이들을 나이에 따라 분류해서 감방에 처넣는 대신 온전한 삶을 살게 해 주면 아이들이 읽기, 쓰기, 셈본을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내용이 자기들 주변에서 펼쳐지는 현상들 속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 〈44쪽〉

요즘은 시골에서 일합니다. 지난 2003년 8월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아서 합니다. 이곳 시골에서 만나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가운데 저한테 '학번'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등학교건 중학교건 국민학교건 어디를 나왔느냐 묻는 분도 없습니다. 더구나 나이도 잘 안 묻습니다. 이분들이 그런 일에는 눈길을 안 두니 안 물어 본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 일하며 어울려 살 때는 이런 것 가운데 어느 것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며 도움 되는 일만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도움이 되는 일과 도움이 안 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며 자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어린아이 때부터 제 몫의 의무를 책임지는 습관을 통해 일하는 방법을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그 강과 그 강가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한 일상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모험을 빚어내고 찾아낼 줄 알게 되었던 곳 .. 〈61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이곳에서 제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교수한테 잘 보이고 숙제 잘 내고 집회에 나가지 않으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고, 교재 아닌 책을 보지 않으면서 달달달 암기능력을 선보여서 실기점수도 높이고, 시험을 치를 때 교수를 속이는 커닝도 잘 해내면 학교를 마친 뒤에도 큰 기업에 들어가기 좋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첫 학기는 부지런히 다니려고 애썼으나 남학생보다 여학생한테 높은 점수를 주는 전공 교수를 보고, 교재 베껴 쓰기 숙제를 하나라도 안 내면 학점을 한 단계씩 깎는 교수도 보며, 한자를 드러내어 일부러 어렵게 써야만 '작문'을 잘했다고 칭찬하며 점수를 잘 주는 교수도 보았습니다. '이것이 참말로 대학교인가?' 하는 물음이 들며 둘째 학기는 거의 안 듣다시피 했고, 2학년 첫 학기에는 전공 수업은 거의 안 들어가고 교양 수업 두 가지만 알뜰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고등학교 수업보다도 못한 게 대학교 수업이고, 그러면서도 학비는 엄청나게 비싸게 받고, 그러면서도 강의 시간은 얼마 안 되고, 그러면서도 강의가 일찍 끝나는 서너 시나 네다섯 시가 되면 다들 미팅하러 가고 술 마시러 가고, 어디로 놀러가고… 저라는 사람은 어리둥절해서 이곳에 있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입대 신청을 해서 군대로 갔습니다.

.. 실제로 학교에서 측정하는 것은 학생의 유순함이고, 이러한 측정은 상당히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누가 고분고분하고 누가 그렇지 않는가를 아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요? ..〈142쪽〉

초중고등학교는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시험 성적이 높은 아이들이 사랑받습니다. 대학교는 이런 학생도 사랑을 받지만 집회 잘 나가는 선후배도 사랑받고, 연애 잘하는 아이들도, 어디 가서 잘 노는 사람도 사랑받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학문을 하는 까닭을 늘 속깊이 헤아리면서 교수나 선후배한테 이런 걱정을 묻고, 도서관이나 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여러 가지 책을 보고, 여러 동아리나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부대끼는 사람들은 거의 외톨이처럼 지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까? 대학교라는 곳에 오면 놀 때는 놀더라도 공부하고 일할 때는 또렷또렷하게 공부하고 일할 줄 알았는데, 또 대학교 학문이나 전공은 교재 외우기가 아니라 어떤 갈래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자기 눈을 길러서 자기 생각과 중심을 잡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만저만 마음이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군대에 가서도 마찬가지. 아니 군대는 차라리 머리를 텅 비우고 바보가 되어 몸으로 힘쓰는 일만 잘하면 되니, 끔찍한 관료주의와 계급주의에 몸도 마음도 피멍이 들었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가벼웠습니다.

..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교제도를 통해서는 빈부를 막론한 모든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없습니다 .. 〈97쪽〉

군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진작 그만두려 했지만 집안에서 모질게 반대해서 한 해만 더 다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을 나와서 학교 앞 신문사 지국으로 들어가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며 쓸 돈을 벌고 책값을 댔습니다.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이제부터 한 해 동안 전공 수업은 하나도 안 듣겠다. 내 마음은 벌써 떠났다. 다만 이대로 떠나기는 너무 아깝다. 그동안 이 학교에 퍼부은 돈이 얼마인가? 나는 앞으로 기자가 될 꿈을 안고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한 해 동안 다 듣고, 이 학교에서 내 마음을 끌고 움직일 만한 강의는 죄다 들어 보자!' 이리하여 두 학기 동안 '남들은 4년 동안 배우는 신방과 수업'을 다 들었고(이론만 배우는 강의는 교재를 알아내어 혼자서 공부하고, 실기를 꼭 하는 강의만 골라 들었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교양 과목으로 꽉꽉 채워서 빡빡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자기가 들어간 학과 공부와 시간표에 주어진 대로 강의를 들으면 '교재 외우기'밖에는 할 수 없는 대학교이지만, "이까짓 졸업장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면서 자기 길을 찾고, 자기 꿈을 키워갈 생각을 한다면 대학교는 그럭저럭 우리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곳입니다. 이것은 이때 느꼈습니다.

사람이 왜 사는가, 사람이 왜 공부를 하는가, 배운 공부는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대학교에서 대학생한테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모두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런 물음을 스스로 찾기가 어려워서 스승을 찾고 책을 찾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툴 때에는 자기보다 먼서 살아간 사람들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자기도 마찬가지로 시행착오라는 잘잘못을 몸소 겪어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스스로 의미를 찾아낼 줄 아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목적을 찾아낼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짜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 〈88쪽〉

책만 보고 버드나무 생김새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책만 보고서는 감꽃이 피고 지는 때와 감을 언제 따서 먹으면 좋은지를 알 수 없습니다. 산에서 우짖는 멧새가 어떤 새인지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 어느 새 도감에도 '새소리가 어떻다' 하고 적지 못하지만, 새소리를 낱낱이 적은 새 도감이라 해도 실제로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는 아주 다릅니다. 사진이나 그림만 보아서는 벼와 피를 가려낼 수도 없고, 봄에 올라오는 게 보리싹인지 잡풀 싹인지도 가려내지 못합니다.

.. 아이들은 낡아빠진 과정을 되풀이하며 과학용어를 외웁니다. 텔레비전 상업광고를 따라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공식을 따라 외웁니다. 과학교사는 국가가 인정한 과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정치적인 진리를 선전하는 사람입니다 .. 〈134쪽〉

.. 책은 어떤 선생이 가르치든 어떤 학생들이 배우든 똑같은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 〈136쪽〉


나라 안에서 그럭저럭 이름이 있는 대학교 졸업장은 '대학교를 마치지 못한 우리 아버지'한테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큰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는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대학교에 못 갔고, 동생인 작은아버지들은 모두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훌륭하게(?) 마쳤거든요. 이는 지금까지도 아버지한테 큰 짐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도 교대 대학원에 들어가셨고, 끝내 수석으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제가 품은 꿈을 이루는 일이 중요하지, 학교 졸업장을 따는 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품은 꿈을 이루고자 애쓰는 일이 중요하지, 학점 잘 받으려고 교수한테 아양 떨고 선물 바치고 베껴쓰기 숙제를 하고 시험 때마다 온통 커닝판이 벌어지는 일은 꼴도 보기 싫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중에 어디에서 일하든 '대학교 졸업장을 내놓으시오' 하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내 옷차림을 보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시오' 하는 곳에도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내 머리길이를 보고 '짧게 깎든지 보기 좋게 다듬으시오' 하는 곳에도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이러고 보니 들어갈 만한 일터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한 해 더 학교를 다니고 그만둔 뒤에도 새벽마다 신문 돌리는 일을 했고, 이렇게 일하면서 적은 돈으로 먹고살았지만 아무 걱정 없이 지냈습니다. '이름있는 대학교 졸업장을 내밀어 안정된 기업이 들어가 사무를 보는 일을 하며 쏠쏠하게 돈을 벌고 예쁘장한 색시를 만나 단출한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아이도 두엇쯤 낳아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일이란 부모님 꿈이지, 제 꿈이 아니거든요.

.. 인간사의 복잡다기한 여러 측면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임을 .. 〈71쪽〉

지금도 떠오르는 일인데, 국민학교 3학년 무렵으로 생각합니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학교를 비워서 양호선생님이 대신 수업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수업은 할 수가 없어서 이날은 하루 내내 "자기 꿈 이야기하기"를 했습니다. 한나절 동안 넉넉하게 "자기 꿈 이야기하기"를 했으니, 동무들은 몇 분이건 몇 십 분이건 자기 이야기를 교단에 올라가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동무들은 "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고 말하기도 하고, "나는 대통령의 비서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대통령이 된 아무개(동무 이름)를 똥통에 빠뜨려 죽이고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요…(깔깔깔)" …… 차분하게 자기 꿈을 말하는 동무도 여럿 있던 것으로 떠오르지만, 거의 모든 아이들은 장난으로 시간을 때우려 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엄청난 개구쟁이여서 '어떤 장난을 치면 동무들을 더 웃기게 할 수 있을까, 뭘 꾸미지?' 하고 머리를 굴리고 뒷통수를 긁적였는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반은 장난이고 반은 참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는 게 꿈입니다."

이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동무들은 책상을 치고 걸상을 끌고 긁고 뒤로 자빠지고 앞으로 엎어지고…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호선생님도 웃음이 새어나오는지 웃음을 못 참다가 제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더니 "장난치지 말고, 다시 말해요." 했습니다. 저도 좀 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었지만, 곧 얼굴빛을 바꾸어,

"제가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참말로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커서 진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동무들도 양호선생님도 웃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제가 무슨 말을 더 했던 것 같은데, 그 대목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을 무렵, 양호선생님이 아까 때린 것 미안하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준 일은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 시험과 성적, 통지표의 가르침이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이나 부모를 믿기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남이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27쪽〉

지금도 제가 품는 꿈은 "어른이 되는 일"입니다. 나이로만 어른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른이 되고,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른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차며, 옳은 일에는 옳다고 그릇된 일에는 그릇되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일이 꿈입니다. 제게 있는 지식이나 학식이 모자라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나 생각이 옳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간다면 이것은 땅을 치고 뉘우쳐야 할 일입니다. 지식은 언제가 되더라도 꾸준히 익혀서 얻을 수 있지만 올곧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어릴 적에 몸에 붙이지 않으면 언제가 되더라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우리 아이들의 삶을 통제하는 두 가지 제도가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학교. 중요한 순서대로 적은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진짜 세계, 즉 지혜와 용기, 자제와 정의의 세계를 쥐어짜서 쉴 새 없고 끝없는 추상의 세계로 만들어 놓습니다. 지난 시절, 사람들은 진짜 일, 진짜 사랑, 진짜 모험, 그리고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 줄 만한 스승을 찾아다니는 일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 〈45쪽〉

저는 지금 충주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곳에 와서 선생님 자취를 하나씩 더듬으며 참모습을 살피기 앞서까지는 '나한테 스승다운 스승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참 그랬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제대로 된 책읽기를 했고, 잠깐 대학교를 거쳐 군대를 마치고 신문배달로 먹고 살다가 출판사에 들어가 네 해 남짓 일하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숱한 책을 읽었지만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늘 되물었습니다.

저한테는 종교도 없지만 스승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늘 그 앞에 서면 고개가 숙여지고 이것저것 배우게 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다름아닌 '일하는 보통 사람'입니다.

책 정보

- 책이름 : 바보 만들기
- 글쓴이 : 존 테일러 개토
- 옮긴이 : 김기협
- 펴낸곳 : 민들레(2005.7.7.)
- 책값 : 7500원
이삿짐을 나를 때 만나는 이삿짐센터 아저씨들, 출판사에서 일할 때 배본소나 창고에서 일하는 아저씨나 아주머니, 밥집에서 열 몇 시간을 선 채로 일하는 아주머니들, 하루 열여섯 시간 넘게 일하고 쉬는 날도 없으면서도 늘 사회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비싼 가겟세 때문에 버거워하는 헌책방 임자들, 시골 땅을 버리지 않고 일흔이나 여든 넘은 나이에도 젊은 도시사람보다 더 힘을 잘 쓰면서 농사를 짓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새벽에 신문을 돌릴 때마다 만나는 새벽 일꾼들과 청소부 아저씨들, 막일판에서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소주 한잔으로 고단함을 풀어내는 아저씨들, 바닷가 고기잡이, 제주도 해녀, 저잣거리 아저씨와 아주머니, 철도 역무원, ……

세상에서는 '이름 없다'고 말할 뿐 아니라 '학력도 가방끈도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억센 손과 몸뚱어리로 이 나라, 이 겨레, 이 사회, 우리 삶터를 튼튼하게 받치고 꾸려 가는 이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분들 앞에서 그지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구나. 참 못났구나. 모자라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세상은 바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굴러가는구나 싶었고, 돈과 이름과 힘을 앞세워 잇속을 챙기고 권력을 누리고 권위로 다른 이를 짓누르는 이들이 얼마나 나쁘고 몹쓸 사람들이며, 100년도 못 가는 뜬구름을 좇는가 하고 느꼈습니다.

.. 학교는 일하는 사회에 대한 기생충 노릇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온통 훑어보아도 아이들을 창고에 몰아넣고 공익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일체 주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일그러진 이 사회뿐입니다 .. 〈53쪽〉


---------------------<2편으로 이어짐>----------------------
글이 길어서 둘로 나누었습니다. 따온 글에 나온 쪽수는 1994년에 나온 책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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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 함께 올려놓고, 서울 은평지역 시민신문인 <은평시민신문(http://epnews.net)>에도 함께 보냅니다.


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개정판

존 테일러 개토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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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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