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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평화의 상징이라고들 한다. 그 때문일까 예전에는 무슨 행사만 있으면 비둘기 수백, 수천 마리를 날리는 것이 항상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에서 파란 하늘 높이 힘차게 날아오르던 이 평화의 상징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희에 차 있었는가?

이렇게 행사 때마다 많이 날린 비둘기들 덕분에 기차역 앞 광장의 수백 마리 비둘기 떼는 물론이고, 동네 공원에만 가도 비둘기 수십 마리가 떼지어 날아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둘기들이 그리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똥을 여기저기 싸놓는 것도 문제려니와 애완동물처럼 누가 돌봐주지도 않으니 그 지저분함에 옆으로 날아와 앉을까 겁내는 사람들도 많다.

▲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 보기만 해도 불쌍합니다. 이런 녀석들이 몇 마리가 있더군요.
ⓒ 이경운
그런데 이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비둘기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지저분하다고 사람들이 피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아픔일 것이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날릴 때는 언제고, 왜 지금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느냐고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른다.

현충일 아침 아들녀석과 산책도 할 겸 비둘기 줄 과자부스러기와 모이들을 들고 동네 공원에 나갔다. 짐승들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으니 공원의 비둘기나 참새들은 아들에게 좋은 동물 친구들이 된다.

비둘기 한두 마리 앉아 있는 곳에 아들녀석이 열심히 과자부스러기들을 뿌리자 주변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몰려들더니 금세 40~50마리 가량이 되었다. 필자는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들 녀석은 아직 그런 개념이 없는 나이라서 열심히 비둘기들과 얘기하며 모이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모이를 주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외친다.

"아빠, 저 비둘기는 다리가 아픈가봐! 어떻게 하지?"

말을 듣고 보니 한 녀석이 다리를 절며 다른 놈들과 힘겹게 먹이 경쟁을 하고 있었다. 분명 한쪽 다리를 다쳤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순간 나는 주변의 다른 비둘기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쪽 발가락이 없는 녀석, 양쪽 발가락이 하나씩 없는 놈, 부리가 깨져서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녀석, 보기에도 흉한 비둘기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발목에 줄이 묶여 있던 비둘기도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잡혀서 묶였던 것 같았다.

▲ 검은 색 비둘기는 다리를 절며 다른 비둘기들과 힘겹게 먹이 싸움을 합니다.
ⓒ 이경운
아들녀석이 모이를 주는 동안 이 비둘기들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려보내기 전까지야 대접 잘 받으면서 살았을 것인데 지금은 이렇게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비둘기 떼가 날아오면 지저분하다며 혹시라도 비둘기 몸에서 뭐라도 떨어질까 몸을 이리저리 피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피해라도 주지 않을까 아이들을 잽싸게 안고 가버린다. 아이들은 당연히 비둘기를 지저분하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면 자랄 것이다.

비둘기와 참새를 통해 아들녀석이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을을 갖기를 원했던 필자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혹시 발가락이 없는 이 비둘기들을 보며 오히려 동화 속에서 보던 비둘기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지나 않을까?'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에 은근히 화도 나고 실망도 되었다. 많은 세상일이 이런 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씁쓸하기도 했다.

필자는 비둘기 모이를 주는 아들녀석을 보면서, 녀석이 이 지저분하고 약한 비둘기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다면 비약일까?

휴일 아침,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비둘기들을 보면서 참 단순하지만 소중한 의미를 깨달았다.

▲ 아들녀석이 이 불쌍한 비둘기들을 보며 생명, 사람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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