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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늘은 늘 공평하여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골고루 주었다. 간혹 배분이 잘못되어 조금 더 낫거나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힘 좋고 튼튼한 사람에게 냉철한 머리까지 준다거나, 기발하고 뛰어난 머리에 건강한 신체까지 준다는 건 좀처럼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재주가 열 두 가지면 굶어죽는다"라고 했을까?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일개 서민이 '선택된 사람' 인양 행동한다면, 그렇게 큰 피해가 없지만 위쪽, 즉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개 서민이 천지를 모르고 설친다면 그냥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한 바퀴 빙글 돌리고 무시해 버리면 되지만,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그 피해가 예삿일이 아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세상을 바꿀 사람은 나뿐이며 나부터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이 위험한 생각, 공평하게 나누어준 하늘에 도전하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은 수년간 그야말로 '욕봤다'. 아비가 제 자식을 교정하기도 어렵고 아랫사람이 어른의 생각을 바뀌게 한다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모든 친구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물며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 맞는다고 우기는 일들을 우리는 요즘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너무 쉽게, 자주 본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좋은 말이 있다. 나 하나 변하는 것이야 좋은 책을 몇 권 본다거나 좋은 스승이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어느 날 문득 득도해서도 가능하지만 자기를 뺀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건 솔직히 말해 불가능하다.

▲ 민들레 홀씨가 또 다른 생명의 대지로 여행을 떠난다. 자신을 덜어내고 가볍게 할수록 더 멀리 떠날 수 있으리라.
ⓒ 박철
약삭빠르고 싹싹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마음속이 쉴 틈이 없다. 무슨 일이든 만들어 꾸며 보려는 욕심으로 마음을 가만 두질 못한다. 성급하고 조급해서 양은그릇처럼 잘 달구어지기도 하고 잘 식어 버리기도 하는 사람은 진득하게 살지 못한다. 어수선하게 일을 벌여 놓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밤낮으로 쫓기면서 자신을 돌이켜 볼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영악할 수는 있어도 어질 수는 없다.

약삭빠른 현대인은 자신을 이길 생각은 않고 남을 이길 생각만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벗을 잃었고 이해상관으로 얽힌 동료만 있을 뿐이며, 항상 서로 경계하면서 다투어 상대를 이길 생각만 골똘히 한다. 그리고 염치를 모르며 겸허할 줄 모르고 우쭐대면서 자기선전을 하여 씨름판의 천하장사가 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사람들이 뻔뻔스러우니까 세상은 점점 추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남을 탓할 때가 많다. 잘못은 내게 있는데, 내가 오해받을 일을 했는데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화를 낼 때가 많다. 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 실수인 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과 유치한 자기체면 때문에 먼저 다가가 서 사과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데, '나'라는 존재가 한번 숙인다고 버릴 명예도 없는데, 먼저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해!" 그 한마디면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다시 다정한 이웃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왜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하는 큰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먼저 숙이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면, 내가 먼저 사과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나는 그리 못하는 것일까? 지금은 그의 잘못이 크다 해도, 내가 먼저 큰 사람이 되어 마음을 먼저 열기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낯이 붉어지며 미안해 할 텐데…. 그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왜 내가 먼저 못하는 것일까?

스님이 절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절더러 떠나라고 할 것인가? 가벼운 스님이 떠나면 되듯이 나를 뺀 모든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변하자. 순리대로 좀 살자.

덧붙이는 글 | 앞으로 ‘아침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차 한 잔 하면서 묵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그저 붓 가는 대로, 마음과 눈길이 닿는 대로 이야기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낼 모레가 망종(芒種)이군요. 본격적인 여름철에 들었습니다. 도시에 와서 살면서도 모내기를 마친 농촌의 들판이 눈에 삼삼하군요. 모두 마음과 생각이 깊어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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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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