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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가 어디인가? 미국의 저널리스트 그렉 크리처는 '미국'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미국을 '비만의 제국'이라고 부른다. 남녀노소, 연령을 불문하고 미국인들에게 비만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저자는 <비만의 제국>에서 미국이 비만의 제국이 된 까닭을 정치,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물음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임명한 제18대 농림부 장관 얼 버츠의 특별한 이력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얼 버츠가 무슨 일을 행했는지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제18대 농림부 장관이 미국의 소비자들이 원했던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값싸고 풍부하고 맛있는 칼로리의 향연'을 벌이도록 한 것인데 이때부터 미국은 청교도 정신 같은 단어는 잊고 칼로리의 향연에 빠져든다.

정치적으로 이런 의식이 퍼져 나가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먹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당시에도 다이어트라는 것이 있었지만 이때의 대세는 '양껏' 먹으라는 희귀한 다이어트 비법이었다. 요즘은 보편적으로 '덜 먹고 더 움직이는' 것이 다이어트로 통한다지만 당시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더 먹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식품 기업들의 상술에 인스턴트 음식과 탄산 음료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데 반해 TV시청을 위해 동적인 생활보다 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비만이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몸속에 자리 잡게 된다.

누군가 비만에 대한 진단을 내려줬다면 그나마 사태가 좀 나아졌을 텐데 '뚱뚱해도 건강할 수 있다'는 속 편한 망상이 사람들 머릿속을 자리잡았으니 비만은 전염병처럼 미국 사람들을 지배해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비만의 제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 종래의 비만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또 비만으로 인해 다양한 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만의 제국, 미국은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비만의 제국>은 우리에게 미국에서 '비만'이 자리잡게 된 경위를 알려주면서 비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서 분류상, 또한 책의 내용 자체로 본다면 저자의 말들은 정보를 얻는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라는 단어를 한국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내용이 헝클어지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인가.

체육 교육 예산이 삭감되고 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이 줄어든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을 중요한 교과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집에서는 TV시청과 게임이 중요한 베이비 시터가 되었다. 집에서도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뚱뚱해져 간다.

이것은 저자가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비만의 제국>에서 나열하는 사례들을 한국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다.

'비만 상태'를 미국과 비교하자면 분명히 한국의 오늘은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비만의 제국>에서 역사로 기록한 것이 우리의 오늘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는데 어찌 만족할 수 있을까. '건강'까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을 체감한다면 더욱 <비만의 제국>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비만의 제국>에서 저자가 말하는 메시지와 경고는 마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오히려 미국보다 우리가 더 경청해야 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비만의 제국'은 아닐지라도, '비만의 국가'가 되어가는 이 땅에서 <비만의 제국>은 오늘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성찰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외면할 경우 '비만의 제국'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기 이전부터 과체중이었던 여성은 사산을 하거나 아기가 돌연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만일 아이가 생존한다고 해도 척추이분증에서부터 심장 기형과 복벽 기형에 이르는 다양한 선천적 결함을 지닐 확률이 30~40퍼센트나 높다. 비만한 어머니의 경우 엽산 영양제로는 이러한 기형아 출산을 예방하지 못하며 태어난 아이도 역시 비만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다시 악순환이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비만 아동은 비만한 어른이 될 뿐 아니라 암에 걸릴 확률도 증가한다. (…) 그 협회는 비만이 "폐경 이후의 유방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대장암, 전립선암, 담낭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선언했다. - '본문' 중에서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비만의 제국

그렉 크리처 지음, 노혜숙 옮김,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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