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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도 인간형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당당히 이름도 얻었지요. '휴고'라고. 또 휴고 혼자 외로울까봐 친구 로봇까지 만들었다고 지난 주에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둘이 진짜 친구처럼 반가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지요. 무릎을 굽힌듯 휘어져 사람의 근육처럼 자유자재로 이동이 가능한 이 로봇은 사람의 물음에 간단한 인사로 대응까지 할 줄 아는 그야말로 사람은 아니되, 사람 비슷한 로봇이었습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진짜 인간과 비슷한 외형에 인간의 감정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로봇이 등장하지 않으란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니 머잖아 로봇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일본이나 혹은 그것이 과학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믿는 우리나라에나 현실로 분명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게 됩니다.

가정용 로봇은 이왕에 일상화 된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청소형 로봇 같은 간단한 외형을 가진 단순한 로봇이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라인에 투입된 산업 로봇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 뉴스를 텔레비전이나 신문으로 볼 때면 왠지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입니다.

영화 <아이, 로봇>의 배경이 2035년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30년 후가 되면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지요. 영화의 후미에 가서는 그 로봇이 인간들을 지배하려는 양상까지 띠게 되고 간헐적이나마 전쟁까지 가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합니다. 결국엔 그 중 이성을 가진 로봇 '써니'의 도움으로 인간과 평화 공존하기로 가닥이 잡히긴 합니다만.

영화의 주인공은 윌 스미스가 연기한 '스너프'입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형사인 스너프와 대비될 만한 주인공이 또 하나 등장하는데 <써니>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어떤 이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써니라고 단정을 짓기도 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엔 어디까지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염려스러웠습니다. 집집마다 로봇이 한개씩 배치되어 있는 미래,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사회, 그래서 그 로봇을 만드는 회사가 날로 번창해 결국엔 로봇이 인간을 통제하는 제국에 대한 꿈을 꾸게 하는 사회를 그려놓은 영화 속 미래가 염려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영화의 메시지는 로봇이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이 결코 되어서는 안된다였기에 그나마 위로를 받습니다만 혹시 미래가 그런 식으로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여전히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가시질 않았습니다.

주인공 스너프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로봇 혐오주의자' 입니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로봇을 혐오하는 그의 삶이 그리 쉽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아웃사이더는 외로운 법이니까요.

미래의 사람들은 로봇을 신뢰할 뿐더러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의심스러웠던 부분은 영화 속 사회는 모든 인간이 해야할 일 심지어는 거리청소까지 로봇들이 해내는 그런 사회에서 과연 인간은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가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은 로봇을 만들어 내는 회사 'USR'뿐입니다. 사람들은 US4로봇을 사들여 그 로봇으로 하여금 집을 지키게 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로봇들에게 시키는데 인간들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순의 극치지요.

끔찍하지 않은지요. 인간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만 스스로 처리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그 나머지 인간이 해야할 일들을 전부 로봇이 처리해 주는 미래가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방대한 스케일의 디지털 방식은 잠깐 동안이나마 입을 벌어지게 할 만큼 대단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영화 속에서 로봇들을 보면 기존의 딱딱한 기계 느낌의 로봇과는 차원이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감성과 이성까지 지닌 로봇, '써니'를 보면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큼 발전한 테크놀로지 세상을 경험하게도 되지요.

유려한 얼굴 곡선을 가진 로봇이라든지, 불투명한 외장형에 버튼을 누르면 투명하게 바뀌면서 내장된 섬세한 기계장치가 들여다 보이는 장치라든지, 얼굴과 몸통을 연결하는 섬세한 부분처리 등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잠깐 우리의 로봇 '휴고'를 생각해 봅니다. 휴고를 만들 때 쓰인 돈의 액수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생각컨데 수조의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돈이 그곳에 쓰였을 것이란 추측을 해봅니다.

그 돈, 참 헛되이 쓰인 돈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돈을 막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하천을 정화하는데 써서 진짜 맑은 물을 끼고 살게 한다면, 그도 아니면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데 쓴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인간이 못할 일이 있을까요? 꼭 거대한 돈을 들여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으로 하여금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인간의 지능이란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만큼 뛰어나지 않았는지.

그 뛰어남을 새로운 기계에 쏟아부어 로봇을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인간을 위해 우리 인간들에게 쓸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기계, 아니 로봇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저는 영화속 주인공 스너프 형사처럼 회의스럽습니다. 그런 주인공의 불안을 대변하듯 영화속에선 결국 로봇들의 일대 반란이 일어나 인간들을 통제하고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로봇이라면 '3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구요.

로봇의 3원칙 즉 인간을 보호하고 지키라는 등 3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이식한 로봇은 자신을 만든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죽이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게다가 그 행동에 대해 합리성까지 부여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얘기 일 것입니다. 석유를 에너지로 해 달리는 기존의 자동차가 사라지고 전기자동차가 자동으로 작동하며 몇 백km 속도로 내달리는 사회는 그저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얘기일 것입니다.

목하, 봄이 한창입니다. 문득, 사람을 대신하여 로봇이 바구니 끼고 봄나물 뜯는 상상을 해봅니다. 주인은 방에 앉아 로봇과 연결된 모니터를 보며 로봇이 봄나물을 뜯는 장면을 들여다보며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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