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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아내가 내 서재 문을 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여보, 큰 일 났어요! 은빈이가 택시에 부딪혔대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내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3층 복도에는 택시기사 복장을 한 아저씨와 은빈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은빈이는 왼쪽 뺨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입술이 터져 피가 나오고 있었다. 은빈이가 학교 앞 고갯마루에서 길을 건너는데 한쪽 방향만 보고 위에서 내려오는 택시를 보지 못했고, 택시기사도 길옆에 주차해 놓은 탑 차에 시야가 가려서 길을 건너는 은빈이를 보지 못해 생긴 사고였다. 횡단보도가 따로 있는 길도 아니어서 늘 위험한 구간이다.

▲ 아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 박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사고를 낸 택시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S병원으로 향했다.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할 텐데….' 그 마음뿐이었다. 은빈이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차에 받혀 놀라기도 했을 것이고, 차 안에서도 병원에 가지 말자고 '아프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런데 S병원으로 향하여 차를 몰던 운전기사가 자기는 하나도 잘못이 없는 것처럼 은빈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너, 길을 건널 때는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야지."
"……."
"너, 왜 갑자기 차한테 달려들었니?"


처음에는 가만 듣고만 있었는데 똑같은 말을 계속하자 속이 뒤집혔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로는 택시가 언덕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갑자기 길로 뛰어든 아이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차가 정지했는데 우리 은빈이가 뛰어드는 속도에 못 이겨 얼굴을 택시 보닛에 부딪친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이 달라진 것이었다.


"아저씨,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애가 지금 다친 건 둘째 치고 겁에 질려 있는 앨 보고, 지금 애를 나무라시는 겁니까? 지금 아저씨 말대로 정지해 놓은 차에 우리 애가 달려들어서 사고가 났단 말입니까? 처음 저에게 찾아 왔을 때에는 분명히 아저씨가 길옆에 주차해 있는 탑차에 시야가 가려 길로 뛰어든 아이를 보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택시기사 아저씨는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이 아이가 일방적으로 길로 뛰어들어 발생한 일이라며 자꾸 은빈이보고 "네가 말해 보라"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택시가 S병원에 도착했다.

"좋습니다. 아저씨는 하나도 잘못 한 것이 없다고 그러시는데 그럼 그냥 가십시오."

나도 화가 나서 차에서 내리면서 차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해 놓고, 은빈이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젊은 여자 의사가 빨갛게 부어오른 은빈이의 뺨을 보더니, 자기병원에는 소아 성형외과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자 택시기사 아저씨도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다. 택시기사는 처음부터 아이보고 한 번도 아프냐고 물어보질 않는다.

의사가 은빈이가 다친 곳을 손으로 눌러가며 "아프냐?"고 물으니 "아프지 않다"고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맡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시 B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은 침묵만 흐른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B병원에 도착하여 곧바로 X-ray촬영을 했다. 담당의사가 X-ray필름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오늘 밤 자고 나면 얼굴이 조금 더 부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한다. 많이 아프면 아이를 다시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한다.

마음이 놓였다. 굳어 있던 아내의 얼굴도 조금 환해졌다. 병원에서 나오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 제가 심하게 말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아이가 아무 이상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아저씨도 많이 놀라셨지요? 저희는 알아서 집에 갈 테니 그냥 가십시오."

기사 아저씨도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 손가락이 부어 올랐다
ⓒ 박철
집에 도착한 은빈이는 잘 놀고 잠도 잘 잤다. 그런데 자꾸 손가락이 아프다고 한다. 차에 부딪칠 때 보닛에 손을 짚었는데 그때 손가락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손가락이 조금 부었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를 못 한다. 손가락을 다친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갈 수 있겠냐고 은빈이에게 물었더니 "학생이 학교엘 안 가면 어딜 가느냐?"고 능청스럽게 대꾸를 한다. 병원에 데리고 갈 까봐 겁이 나서 하는 말이다. 일단 학교에 보낸 다음 오후에라도 병원에 다녀와야 하겠다.

참 감사하다. 어제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작은 실랑이를 하면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팠는데, 지금은 머리도 맑고 마음도 편안하다. 은빈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학교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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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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