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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승려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뱃사공이 그들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며, 이어서 말했다.
"만약 이 계곡을 넘어 성으로 가시려거든 천천히 가셔야 합니다."

그러자 노승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천천히 간다면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일세. 성문은 해가 진 후에 곧 닫아 버린다네. 이제 한 두 시간밖에 안 남았을 텐데 그 거리를 어찌 천천히 걸어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천천히 간다면, 거기에 도착해도 성 밖에서 다음날 아침 성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사나운 동물들도 많고 하니 우리는 서둘러 가야만 하네."

노승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뱃사공이 말했다.
"좋습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담입니다. 천천히 가는 사람만이 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

그러자 젊은 승려는 뱃사공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지방의 지리를 전혀 모르지 않는가? 아마 뱃사공의 말에는 무슨 뜻이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뱃사공의 충고를 듣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젊은 승려는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노승은 바삐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등에 경전 자루를 지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를 가다 노승은 발을 심하게 다쳤다. 왜냐하면 성으로 가는 길은 자갈이 많고 매우 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발의 상처로 피로하여 얼마 못 가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는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노쇠한 체력이 그것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반면에 젊은 승려는 유유히 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뱃사공이 걱정이 되어 그들을 뒤 따라 갔을 때 얼마 가지 않아 길가에 쓰러져 있는 노승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다리는 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뱃사공이 노승에게 말했다.

"스님,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스님께서 제 말을 듣고 천천히 걸으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 길은 땅이 매우 거칠고 자갈이 많아 서둘러 걸으면 꼭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제 말을 안 들으셨습니까?"


▲ Bengkar namche에서(히말라야).
ⓒ 박인오
우리나라에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있다. 영어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천천히 서둘러라"(Make haste slowly)-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며 움직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내려오는 격언이다.

어제 아침 우리교회 네 분 장로님들과 동행하여 강화엘 나가기로 했다. 배터에서 8시1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집에서 출발 시간이 늦었다. 하는 수없이 가속 폐달을 힘껏 밟았다. 차가 거의 월선포 배터에 도착할 때쯤 뒤에서 내 머리꽁지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동 친구 분에 집에 오셨던 조화순 목사님이 오늘 아침 평창 댁으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내가 강화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약속하고 읍내리 입구에서 기다리시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급히 서둘다보니 그냥 지나쳐 왔던 것이다. 다시 읍내리 쪽으로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거기에 합당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씨를 뿌리고 난 후 일정한 시간이 자나야 싹이 트고 성장하고 야무진 열매를 맺는다. 심지어 밥을 짓더라도 충분히 뜸을 들여야 쌀이 맛있게 익는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은 매사에 너무 서두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충분히 꼭꼭 씹으며 음미해야 할 식사시간에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허둥댄다. 교통사고율이 세계 제일인 것만 보더라도 한국인이 얼마나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일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두른다고 잘 되는 일이란 없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고 오히려 시간을 까먹는 수가 많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꿰어 쓰지 못하고,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조상들의 충고는 항상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이다. 어떤 위급한 경우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노라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길을 잘 볼 수가 있다.

▲ Namche dewoche에서(히말라야).
ⓒ 박인오
특히 건강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데 조급한 마음을 품는 것은 금물이다. 건강은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올바른 생활의 열매이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특별한 보약이나 약물로써 빠른 효과를 보려고 대들다가는 오히려 건강을 망치기 십상이다.

병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몸의 신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편히 쉬어주노라면 몸의 자연치유력이 최대한 발동하여 병은 자연히 치료될 것이다. 휴식이나 여유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음 일을 위한 에너지의 저축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여유 있게 쉬고 볼 일이다. 괜히 성급한 마음에 이 약. 저 약,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호들갑을 떨면 증세는 더 악화되기 쉽다. 치유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면의 의사를 신뢰하고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 땅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몫의 책임이 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거둘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에 의해서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인 위태로운 길목에는 '절대 감속'이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절대'란 모든 언어가 그 앞에서 주눅이 드는 초월의 세계다. 위험한 길이니 감속하라는 경고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인 위기에도 이런 경고가 해당될 것 같다. 급하다고 서둘지 말고 순리대로 풀어나가라는 것이다.

물의 흐름이 때로는 급한 여울과 폭포도 이루지만, 그 종점인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자연스런 흐름을 이룬다. 어려운 때일수록 급히 서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세월 그 많은 시행착오가 급히 서두른 결과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개인적인 처지에서 보면 오늘의 어려움은 저마다 처음 당하는 일 같지만,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일찍이 누군가 갔던 길이다.

이런 시가 있다.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베드로시안의 <그런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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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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