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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책 표지
ⓒ 도서출판 길
10여 년 전 저의 고등학교 졸업식 풍경을 떠올려 보면 지금이랑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계란과 밀가루를 서로 뒤집어씌우려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가 먼저 계란을 맞으면 이에 질세라 친구의 교복에다 밀가루를 덮어씌웁니다.

좀 독한 학생들은 악명 높은 선생님들의 자동차에 흠집을 내거나 자동차문 열쇠구멍에 씹던 껌을 밀어 넣는 테러(?)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난장판에 가까운 졸업식 풍경이 어른들에게는 못 마땅해 보이겠지만 당사자들은 마냥 신이 납니다. 신이 난 졸업생들의 얼굴에서 헤어짐의 섭섭함과 아쉬움보단 억눌림에서 해방된 기쁨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졸업식 풍경은 그 시작과 유례를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 보아왔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오랜 세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기보다는 기존 사회 틀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왔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억압과 규제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억눌림의 분풀이를 졸업식 날 서로 교복을 더럽히면서 해온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마지막 책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아이들이 졸업식에서나 잠깐 맛봤던 해방과 자유가 지속되었을 때 어떠한 힘이 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지금 이 나라 교육은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이 아닌 죽이는 교육이라고 진단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좀더 나은 학벌을 거머쥐길 과도하게 강요하고 억압합니다. 아이들은 자연 인성을 헤치게 되고, 억눌림을 참지 못한 이들은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왕따, 자살, 학교폭력, 사교육 광풍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들의 원인 역시 억압적인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의 교육을 이대로 둔다면 아이들의 모든 능력을 죽이고 그 생명을 죽인다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이오덕 선생님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온 나라를 뒤덮었던 붉은악마의 열기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서열의 조금이라도 위쪽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규칙에 순응해야 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만큼은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학교에서는 축구응원을 위해 단축수업과 시험도 연기해 주었습니다. 또 사회에서는 닫혀 있던 광장을 자유롭게 열어주었습니다.

해방감을 맛본 아이들은 비로소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하고, 자연스럽게 질서를 만들어내고, 나라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은이는 이것이 진정한 산교육이며 이 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말합니다. 즉 채찍질과 반강제적으로 지식을 밀어 넣는 교육이 아닌 자유롭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고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어른들이 아이들을 믿어야 하며", "학벌로 사람의 값을 매기고 사람을 쓰는 망국 풍조를 하루빨리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이러한 이오덕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신념이 그대로 녹아 있는 책입니다.

40여년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바로 키우는데 온 열정을 다 받쳐온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책인지라 글 하나하나에 깊이가 묻어납니다.

이 책이 이 나라의 교육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고 해서 어렵거나 현학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오랜 교직생활을 통해 얻은 날카롭고 세심한 눈으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과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 하나하나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무척 친근하고 와 닿음이 큽니다.

최근 고교등급제 논란으로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서열화 된 대학도 모자라 고등학교까지 서열화 하려는 저의가 지금의 억압적인 교육환경을 더욱 심화시키지는 않을까 대단히 걱정스럽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에서 하신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이오덕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

이오덕 지음, 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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