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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대선자금을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안대희 부장)는 지난 3월 8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 15층 소회의실에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 경제권력에는 '굴복'.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참여연대가 매긴 최종 성적표다. 무려 100억이 넘는 불법자금의 주인인 재벌총수들을 '성역'으로 남겨둔 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20일 대검찰청 정문 앞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기업인의 처벌을 최소화한데 대해 항의했다.

실제 대검 중수부(안대희 부장)는 지난해 8월 'SK 비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10개월여 동안 진행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불법자금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정치권에 제공한 기업인 일부를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삼성 경영진에 대한 처벌 수위와 방침을 정하고 마무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오는 21일 오후 2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방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 대선 당시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제공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무더기로 구속한 것과 상반되는 것이다. 당시 여·야의 선거핵심 의원들이 거의 빠짐없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것에 대해 '작은 국회가 서울구치소로 옮겨왔다'는 말들이 회자되기도 했고, 국민들은 그 공을 검찰에 돌렸다. '정치 검찰'이라는 불명예 딱지를 뗀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처음으로 '살아있는 권력들'이 있는 성역에 칼을 제대로 들이 됐다"며 "이로써 검찰 수사가 정치권에서 독립성을 확보했고 정치자금의 부정적인 실상에 대해 파해쳐 경종을 울렸다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기업총수 처리에 논란... "유난히 기업총수에 약한 검찰"

하지만 '경제권력' 앞에 선 검찰은 무력해 보인다.

검찰은 기업수사에 있어 지난 19일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을 비공개로 소환했고, 삼성그룹이 정치권에 건넨 400억원대의 채권의 출처 등에 대한 수사를 끝으로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된 기업인들 중에 손길승 SK그룹 회장과 이중근 (주)부영 회장 정도만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정치자금 제공 혐의 이외에도 기업의 본질적인 비리인 배임이나 횡령 혐의가 적용됐다.

이에 반해 단순히 '정치자금'만 제공한 혐의로는 어느 기업인도 구속되지 않았다. 검찰이 불구속기소한 기업인은 ▲강유식 LG그룹 부회장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심이택 대한항공 부회장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 ▲오남수 금호그룹 사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이재경 두산그룹 사장 등이다.

▲ 불법대선자금을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는 지난 3월 8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 15층 소회의실에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 등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소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벌총수 대부분 '불입건'... '솜방망이' 휘두른 검찰

검찰에 의해 기소된 기업인들 중에 '재벌총수'는 빠져있다. 유일하게 검찰이 형사처벌한 재벌총수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뿐이다.

더구나 LG, 현대차, SK, 롯데 등 재벌총수들은 정치권에 100억대 이상의 불법자금을 제공하고도 모두 불입건 처리됐다. 검찰은 이들 재벌총수들에 대해 모두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17일 현대차그룹에 대해 김동진 부회장만을 불구속 기소했고, 정몽구 회장은 '불법 대선자금에 관여한 증거가 없다'면서 불입건 처리했다. 이에 앞서 구본무 LG 회장도 불입건 처리로 매듭지었다.

또 롯데그룹의 경우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부회장이 검찰 소환에 불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불입건 처리를 했으며, SK그룹도 고용 회장인 손길승 회장만을 사법처리했을 뿐 실질적인 회장인 최태원 회장은 불입건했다.

이제 남아있는 삼성그룹의 경우 40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정치권에 건넸음에도 이건희 회장을 일찌감치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귀국하는 대로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기업체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수사가 정치권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점에 치중했고 기업인들이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제공한 점, 국가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처벌 범위를 최소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했나

하지만 정치권의 강압에 의해 돈을 줬더라도 넓은 의미에 있어 '대가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실제 불법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렇게 큰 돈을 주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그동안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던 검찰로서도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다. 특히 검찰은 지난 2002년 10월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5대 기업으로 확대하면서 "기업에 수사협조를 구걸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수·자복을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지난 2월에도 "그동안 수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죄질이 나쁜 기업인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연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기업인 처리를 결정한 것일까.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실무자들만을 적당히 기소하고 총수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기로 한 결정을 한 것"이라며 "수백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정치권에 건넨 것을 총수들이 몰랐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며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도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유례없는 국민의 성원 속에 진행되었던 검찰의 수사가 용두사미로 마무리되고 있다"며 "그간 검찰이 수 차례 강조했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은 재벌총수 감싸기로 인해 무색해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20일에도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 수사에 비해 처벌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기업인 수사를 규탄한다"며 "검찰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을 가진 재벌로부터도 독립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라"고 촉구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팀장은 "10∼20억도 아니고 수백억대의 자금이 기업체에서 정치권에 전달됐는데도 총수에게 전혀 보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자금을 조성한 임원뿐만 아니라 총수도 같이 불러 조사를 해야 형평에 맞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또 발표문을 통해 "검찰이 밝혀낸 정치권의 추악한 면모는 정치개혁을 위한 중요한 계가가 됐고 총선을 통한 정치지형 변화에도 영향을 줄만큼 의미심장한 것"이라며 "그러나 또 하나의 권력인 경제권력, 즉 재벌집단들에게 굴복한 검찰의 모습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고 강한 비판을 가했다.

끝으로 참여연대는 "국민들은 검찰이 어떤 경우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21일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그 결과에 따라 그동안 우리 경제를 부실로 키우는 데 일조한 기업 비자금의 관행의 근절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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