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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20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전반에 걸쳐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재계와 정부 등에선 성장이 먼저라고 합니다.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선 분배를 통한 성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리츠메이칸대학의 이강국 교수는 경제학적인 측면에서의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과 미국, 유럽, 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분배를 통한 내수창출과 성장이 참여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편집자 주



2003년 경제성장률 3.1퍼센트, 소비지출의 지속적 위축, 경제위기 이후 투자위축, 기업 수익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 감소, 빈부격차의 급속한 악화,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급등, 세계적으로 높은 비정규직 비중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심각한 차별.

한국경제에 관한 최근의 주요 기사들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수출만이 외로이 이끌고 있으며, 성장과 분배는 동시에 악화되었다. 물론 언론의 호들갑이야 잘 알고 있고 경기순환도 언제나 부침이 있는 것이지만, 한국경제가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천성이 비관적인 경제학자에게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경제의 좌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경제회복 전략에 대한 논쟁은 성장인가 분배인가 하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재계와 정부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성장을 강조하지만, 악화된 소득분배를 배경으로 노동자들과 진보진영은 분배를 더욱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민노당과 전경련의 만남에서 보이듯, 양측의 주장은 여전히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힘이 세지고 분배를 강조하면 투자가 위축된다며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은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썩 구체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상의 분배정책일 수도 있지만, 이미 비정규직이 너무 많으며 분배를 무시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그러나 역시 돈 있는 자가 힘도 있으며 서민들은 언제나 약자인 법이라, 참여정부조차 2만 달러니 실용주의니 하며 성장에 목을 거는 모습이다.

경제의 핵심...성장 vs. 분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분배에 관해서는 애써 무관심하지만, 성장과 분배는 역시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들은 정치체제와 역사적 배경, 권력관계 등이 소득분배에 결정적이지만 경제성장과 분배간에 뚜렷한 관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한다.

최근의 미국을 생각하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이미 1955년 쿠즈네츠(Kuznetz)는 역 U자 가설을 통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

단기적으로는 보통 불황기에 분배가 악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경제호황은 소득분배도 개선시키는 듯하다. 각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호황이 오래 지속되면 실업이 줄어들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져서 부가가치에서 임금몫이 늘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반면, 노동자의 몫이 너무 늘어나서 기업의 투자의욕까지 떨어뜨린다면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너무 관대한 복지지출은 일할 의욕도 떨어뜨릴지 모른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형편없는 사회복지예산과 교육예산을 지닌 우리에겐 먼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소득분배의 개선으로 경제 전체의 구매력이 증가하고 국내수요가 증가되면 이윤 몫의 감소가 상쇄되어 이윤율이 오히려 높아지고 투자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투자를 좌우하는 이윤율은 임금 몫과 가동률 그리고 자본생산성의 함수이므로 총수요 증대로 인한 가동률 상승이 투자를 진작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총수요 창출의 중요성은 불황시기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역설한 케인즈에 의해서 이미 강조되었다. 가난한 이들의 한계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소득재분배정책은 수요창출이라는 거시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배경으로 분배와 성장의 조화로운 순환이 나타났으며, 이는 '임금주도적 성장(wage-led growth)'이라 불린 바 있다. 우리에게도, 최근 중국쇼크에서 보여지듯 불안정한 대외의존 대신 소득 증가에 기초한 국내수요의 확충이 미래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 핵심적일 것이다.

한편 개도국의 경우 극심한 빈부격차, 특히 자산의 불균등한 분배는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자율성과 능력, 제도의 질을 저하시켜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미있게도, 로드릭(Rodrik) 등 많은 발전경제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 등과는 달리,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은 토지개혁 등을 배경으로 한 상대적으로 균등한 분배의 덕을 상당히 본 것이라 주장한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최근의 경제학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전제 하에서, 분배가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시적인 경로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선 노동시장의 경우 노동자의 노력을 완벽히 감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균형수준보다 임금이 높은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는 이른바 '효율성 임금(efficiency wage)'과 관련된 여러 이론들이 제시된 바 있다.

오랜 경제위기로 빛이 바래긴 했어도 일본의 높은 생산성은 장기적인 고용관계 덕분이라는 연구가 많았으며, 최근에도 경단련은 종신고용 등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대기업이 경쟁력이 더 높다고 보고한다.

고려대의 권순식 박사는 한국 기업의 경우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을수록 노무비용은 감소하지만 노동생산성이 감소하며 영업이익률과 장기적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이렇게 볼 때, 비정규직의 급증은 소득에 미치는 악영향 외에도 숙련 형성과 생산성 상승, 그리고 노사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포브스(Forbes)지가 한국의 노동시장은 OECD 국가 중 미국과 캐나다 다음으로 유연성이 높다고 지적할 정도로, 우리의 노동시장 전반은 불안정한 상황이다.

물론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들도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지만,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이 거의 없으며 노사가 자발적으로 파트타임 노동을 선택한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 크다.

한편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한 금융시장의 경우, 소규모의 기업이나 가난한 차입자들은 담보의 부족으로 인해서 더 좋은 투자 프로젝트를 가지고도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산의 균등한 분배가 사회적으로 더욱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실에서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등 이른바 공동체적 노력에 기초한 담보가 없는 미시금융(microcredit)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즉, 이러한 이론들은 미시경제적으로도 분배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등주의적(egalitarian) 정책이 효율성과 배치되는 것만은 아니며 평등과 참여가 효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유산과 잘못된 시장자유화가 겹쳐져서 경제위기로 이어졌던 한국의 경우,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클지도 모른다.

여러 가능성과 경험들

물론 신자유주의의 열풍과 자본의 세계화 등을 배경으로 현재는 미국식의 이윤주도적 성장만이 거의 유일한 가능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헨우드(Henwood)의 최근 저작 <신경제 이후>(After the New Economy)를 비롯한 많은 연구들은 미국 경제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미국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70년대 초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 정체되어 지금도 1973년 수준보다 낮은 수준이며, 소득과 부의 분배는 급속하게 악화되어 호황에도 불구하고 2001년의 절대적 빈곤율은 1973년보다 높았다.

또한 신경제 시기의 생산성 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생산성이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서 높은 것도 아니다. 실제로 Crafts의 IMF 연구에 따르면 1973년에서 1996년까지의 기간 동안 미국의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상승률은 거의 모든 OECD 국가들보다 낮았다. 최근의 생산성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식 시스템이 다른 경제시스템보다 월등한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에 잘 맞는지는 의문스럽다.

반면, 핀란드와 같은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네덜란드 등 유럽의 소국들은 계급간의 대타협과 협조에 기초한 성장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중요한 점은, 더 나은 사회적 통합과 소득분배에 기초한 경제회복과 성장전략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며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

누구나 지적하듯, 한국에서는 위기 이후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악화되었고 별반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분배(shared growth)와 고도성장을 자랑하며,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n Miracle)이라 불리던 한국경제가 좀 과장하면 라틴아메리카처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 이전 30%를 넘던 경제의 총투자율은 20% 중반대로 저축률보다도 낮게 떨어져 이제 사람들은 과소투자와 장기적 경쟁력 약화를 걱정한다. 일각에서는 분배가 투자를 저해할 가능성과 생산성을 넘어서는 임금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오랫동안 실질임금의 상승은 생산성상승보다 낮았고 위기 직후에는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폭락하였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피고용자의 몫을 나타내는 피용자보수율은 1996년 48%, 1997년 46.3%에서 2000년 43%까지 하락한 후 2003년 44.2%에 머무르고 있으며, 제조업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1996년 12.9%, 1997년 11.4%에서 위기 이후 급락하여 2003년 약 1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부채비율 하락 등을 배경으로 2002년 이후에는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회복되고 있으며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시중에 몇 백 조나 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 부문 등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기업들의 투자는 전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로 분배를 강조하고 노동자와 서민의 힘이 세져서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것일까? 금융시스템의 급속한 전환과 외국인의 입김 강화, 그로 인한 불확실성과 혼란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아닐까?

물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개도국과의 경쟁에서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어려움을 받는 측면도 있겠지만, 저임금 대신 생산성 향상에 기초한 경쟁력 강화가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에 의한 인건비 부담 완화와 함께 교육과 훈련에 관한 공적 투자의 노력이 요구되며, 신용 등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불합리한 하청관계의 개선에 힘쓸 필요가 있다.

성장과 분배의 동시적 악화

또한 신용카드 규제완화 등 부채에 기초한 경기진작책을 배경으로, 급기야 2002년의 개인순저축률은 1.5%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여 장기적인 성장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한편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비율은 1997년 4.5배에서 경제위기 이후 1999년 5.5배까지 높아졌다가 2003년 5.2배에 머무르고 있고, 절대적 빈곤층도 위기 이후 2배 이상 급등하였으며 부동산 폭등과 함께 부의 격차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경기가 회복되면 빈부격차는 완화될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경제의 구조변화로 인해 빈부격차가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현실은 자살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가계부채와 결합되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과 같은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의 목소리가 높으며 부유세 논의도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한 요구가 높고 일부 기업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나타나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나누면서 키우는 파이

현실이 이러하다면, 어떻게든 파이를 먼저 키워서 나중에 나누자는 믿기 힘든 구호보다는, 분배의 개선과 소득증가에 기초한 내수창출과 생산성 향상 등 나누면서도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실 참여정부의 원래 청사진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것이 바로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이었을 것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성장 대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와 국민적 지혜와 합의를 모으는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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