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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8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치 칼럼에서 현 탄핵정국의 원인을 수구정치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개혁실패로 단정했던 <정치비평>편집위원인 이광일박사가 두번째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박사는 '촛불집회' 이후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정치의 진정성은 저버린채 당리당략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하면서,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세력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수구정치세력에 의해 대통령탄핵이 이루어졌다. '탄핵정국'이 시작되었고 정치는 대중에게 넘겨졌다. 그들이 밝힌 촛불은 '민주수호', '헌정수호'라는 대의로 상징되었다. 이렇게 하여 4월 총선을 향한 정치가 본격 시작되었으며 수구정치세력들은 대중의 힘에 의지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완패'를 당하였다.

대중의 역동적 힘을 무시하고 그들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수구정치세력들은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게임'을 벌임으로써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와 같았던 대중의 탄핵반대 또한 다소 이완되고 있는 듯하다. 모든 매체를 흡인했던 '촛불 잔치'는 그에 대한 참가자들의 가치판단과 무관하게 최고점을 넘고 있다. 그리고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그 빈 공간은 '탄핵반대 촛불'의 뒤에서 잠시 숨죽이고 있던 기존 정당들에 의해 다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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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으로 민주주의와 진보를 생각한다

촛불잔치 이후의 정치지형은 어떻게?

한나라당은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독재자의 딸'을 새 당대표로 선출하여 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탄핵의 책임을 둘러싸고 여전히 깊은 내홍에 빠져 있다.

이와 달리 열린우리당의 표정은 여유롭다. 각종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70%를 넘나드는 탄핵반대와 그에 따라 고공비행하는 당지지율은 이들에게 과반수가 넘는 제1당으로의 부상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국의 추이가 선거 이후 본격 전개될 노무현정권 후반기의 정치정세와 관련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하는 정치세력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등 수구정치세력들은 지금과 같은 정국이 선거로 이어지면 열린우리당의 일당 독재가 되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소 닭쳐다보듯 하던 정치세력들이, 그리고 지금의 탄핵정국을 만든 핵심 당사자들이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대중을 또 한번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정국 조성의 한 축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국회에서 자신들이 다수당이 될 때만이, '야당과의 균형'을 통한 정국의 안정과 민주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국과 관련, 정작 심각한 것은 수구정치세력은 물론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조차 이 흐름을 단기적, 정략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탄핵정국을 제도의 문제로 협소화시킴으로써 그것이 그동안 사회 각 부문에 잠재되어 끓고있던 사회경제적·정치적인 불만·불신의 표현이라는 점, 따라서 이 국면이 향후 정치를 규정할 제1막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정치의 진정성 외면하는 수구, 자유주의 정치세력들

수출호조와 내수경제 침체 속에 55%를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 9%를 넘어선 청년 실업, 상위 5%가 절반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 거의 4백만에 다다른 신용불량자, '중산층'의 분해 등은 이 위기의 핵심 진원지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바로 이런 상황은 지금 거리에 밝혀진 촛불이 '민주수호'를 상징하는 것으로 담론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그것의 토대가 결코 견고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촛불이 '최소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결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정작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삶의 고통에 짓눌려 있는 고통받는,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다가갈 수 없는 강 건너 희미한 불빛에 불과한 것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진정으로 다시 묻는다. 왜 정치가 필요한가. 정치의 목적은 단순한 제도의 복원, 절차를 마련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결코 목적일 수 없는, 수단일 뿐이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편에서 그 고통을 함께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4월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탄핵정국의 주판을 튕기기에 여념이 없는 수구정치세력은 물론,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에게서조차 이러한 진정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게 대중이 겪고있는 삶의 고통은 부차적일 뿐이다.

특히 '민주주의와 개혁'을 내세우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에게 보내는 그 높은 지지율이 현재 대중의 고통과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것이 향후 정국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징후'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진보정치세력은 대중이 직면한 삶의 정치에 관심 기울여야

지금 탄핵정국을 경과하며 자유주의 정치세력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밋빛 꿈, 총선을 통해 실현될 수도 있는 그 꿈이 전체 사회구성원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에는 이들의 정치적 행보가 너무 단견적일 뿐만 아니라 대중의 고단한 삶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선거 이후 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삶과 분리된 정치가 지속된다면, '탄핵반대의 촛불'에 의지한 이들의 정치적 약진은 더 큰 역풍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지금 자신들을 지지한 다수 대중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고통스런 삶에 실망하며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그 발걸음이 반드시 진보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의 도래가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상황의 조성이야말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들 집권세력을 자임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아직 절감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이러한 고민은 대중의 역동적 힘을 무시하는 성급한 몽상일 뿐이며, 그러한 상황이 다가오면 그 때 가서 해결해도 늦지않을 저 만치 떨어져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향후 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해소문제가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편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정치세력들에 의해 고민될 수밖에 없음을 함축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진보정치세력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탄핵정국, 선거정국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 전면에 부각될 '대중이 직면한 삶의 정치'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 의회진입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제도정당 등 진보정치세력들은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드리운 그늘로 인해 대중이 부담해야 하는 고통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엇으로 그들을 민주주의와 진보의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

진보정당과 정치세력에 희망을 거는 이유

만일 이 과정에서 기존에 해왔듯이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글로벌 신자유주의, 무장된 세계화에 입각하여 대중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고 그들을 정치의 수단·대상으로 전락시킨다면, 이러한 고민과 실천은 더욱 힘겹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에 대한 헤게모니는 도덕적 동의의 획득뿐만 아니라, 그들의 열악한 존재 조건의 변화를 위해 누가 얼마만큼 자신을 던지는가에 달려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 정치적 소수자들의 열악한 삶과 권리의 개선 문제가 진보정치의 중심에 놓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블랙홀의 탄핵정국'이 반면교사로 가르쳐주고 있듯 민주주의와 진보의 향방은 한 개인, 특정 정당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민주적 힘에 근거한 권력관계, 사회관계가 어떻게 재구성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 진보정치세력들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하다. 진보정치세력은 총선이후 글로벌 신자유주의 심화 여부와 맞물려 다가올 수도 있을 '민주주의의 위기', 즉 탄핵정국 속에 몸을 낮추고는 있으나 여전히 완고한 보수적 사회구조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수구정치세력들의 '또 다른 모험가능성'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관점에서 지금의 탄핵, 선거정국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대중의 구체적 삶보다 권력에 시선을 두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진보정치세력과의 차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의 하나의 의석은 자유주의 정당의 수십 석에 견줄만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보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본질의 대중적 실천만이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이며 향후 정국에서 대중을 민주주의와 진보로 불러 모을 수 있는,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지금 '탄핵정국'을 돌파하는 대중의 역동성에 주목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민주주의와 진보를 생각하며 진보정당, 진보정치세력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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