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살얼음 잡힌 싱건지 살얼음 잡힌 저 싱건지, 창자 속까지 시원해지지요.
ⓒ 김도수

고향 집 아래채 위쪽으로는 아담하게 만들어진 장독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한켠에 구덩이를 파서 김장독을 묻고 김장독 뚜껑 주위에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었다. 비가 내리면 흙탕물이 김장독 뚜껑 주위에 튀지 못하도록 이엉을 엮어 덮었던 것이다.

김장 하는 날, 아버지는 텃밭에서 자란 배추와 무를 뽑아 바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져 날렸다. 어머니는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아버지는 소금물이 빠진 배추를 다시 짊어지고 냇가로 나갔다. 집에 우물이 없고 상수도도 없으니 섬진강 물에 배추를 씻으러 나간 것이다. 깨끗하게 씻긴 배추를 소쿠리에 얹어 물이 빠지면 아버지는 다시 무거운 배추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초등학교 하교 길, 책보 메고 집으로 달려오면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배추김치를 김장독 속에 집어넣고 계셨다. 어깨에 둘러멘 책보를 마루에 던지기도 전에 곧바로 장독대로 달려가면, 어머니는 빨갛게 버무린 배추김치 한 가닥을 쭉 찢어 내 입속에 넣어주었다.

"어쩌냐. 간이 좀 맞냐? 짭짤헌 것도 같고 싱건 것 같기도 허고…."
"오메! 간이 딱 맞아 아주 맛싯고만…."

눈 덮인 김장김치 어머니! 어머니께서 가꾼 배추, 이젠 김장독 속에 들어 있어요
ⓒ 김도수

김장 하는 날,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머니는 내게 무를 다듬어달라고 했다. 닳고 닳아 초승달처럼 휘어진 놋숟가락을 들고 통통한 무를 다듬었다. 싱싱한 속잎 줄기는 남기고, 겉잎 줄기들은 잘라내고, 잎줄기 바로 아래 거친 무 머리 부분은 도려내고, 홈 파인 곳이 있으면 득득 긁어내고, 잔뿌리는 잘라 다듬었다.

어머니는 소금에 절여 깨끗이 씻긴 무를 네 쪽으로 쪼개 양념을 버무려 세갈지를 담고, 잘게 썰어 깍두기를 담고, 굵은 소금을 버무려 싱건지를 담았다. 싱건지 속에 마늘과 생강 몇 쪽을 헝겊에 싸서 넣고 이틀 정도 지나 물을 적당히 부었다.

책보 메고 집으로 돌아오던 하교 길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나는 어머니가 담은 고소한 김장김치 한 그릇을 받아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께서 아랫목에 이불 덮어 뜨듯하게 보관해 놓은 밥 한 그릇을 꺼내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웠다.

어머니가 내 입 속에 배추김치 한 가닥 쭉 찢어 넣어주면 꼴딱꼴딱 잘도 받아먹던 그 장독대. 85년 초겨울 어느 날 어머니 돌아가시자 이듬해 봄, 집이 팔리면서 사라져 버렸다. 김장독이 사라지고 장독대가 놓여져 있던 땅마저 빈 벌통들만 쌓여가며 장독대는 그 흔적을 완전히 감추고 말았다.

@ADTOP@
절골에서 본 눈 내린 진뫼 눈내린 강변마을에 인적 끊기고...
ⓒ 김도수

98년 봄, 어렵사리 고향 집을 다시 사서 주말이면 고향으로 돌아가 텃밭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첫 해,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장독대를 다시 만들고 텃밭에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었다.

장독대 한켠에 전 주인이 몰래 묻어둔 쓰레기들을 파내고 곳곳에 쌓인 돌들을 실어내고 터를 반반하게 다듬었다. 냇가에서 자갈들을 퍼다 골고루 깔고 반반한 돌을 듬성듬성 놓고 그 위에 김장독을 올려놓아 예전처럼 장독대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항상 김장독을 파묻어 놓았던 곳에 다시 구덩이를 파서 김장독 네 개를 묻었다.

지금 그 장독대 한켠에 묻어놓은 김장독 속에 김장김치를 넣어두었다가 김치가 떨어지는 주말이면 고향으로 달려가 겨우내 조금씩 가져다 먹는다. 김치냉장고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땅 속에 묻어놓은 김장독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고 아침에 내오는 살얼음 잡힌 싱건지와 배추김치·세갈지의 아삭아삭한 맛! - 맛본 사람이 아니고는 그 맛을 모르리라.

주말이면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이 농사짓던 텃밭을 가꾸어 온지도 벌써 6년이나 흘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배추와 무를 심어 기르는 일이 내게는 아주 중요한 농사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고향 집에 다시 장독대를 만들고 김장독을 묻어 그 김장독 속에 김장김치를 담아 놓고 조금씩 가져다 먹자, 주말에 종종 남원에서 고향집으로 놀러 오던 누나도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독 속에 넣어두었다가 가져다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추와 무 농사는 늘어났고 누나는 포항에 사는 누이에게 주려고 이듬해 배추와 무를 더 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누나와 나는 이왕이면 4남2녀 모든 형제들이 부모님께서 평생 손톱 속에 흙 넣고 살던 텃밭에서 자란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해서 갖다 먹으면 좋을 것 같아 많은 양의 배추와 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서울 사는 셋째 형수님은 그동안 친정 언니께서 담아주는 김장김치를 갖다 먹었다. 몇 년 전 어머니 제사 지내러 내려온 형수님께 김장을 해준 적이 있다. 형수님은 "매년 친정언니가 김장을 해서 보내준다"며 '그 김치가 그 김치겠지' 생각 했는지 무겁다며 적은 양의 김치만 가지고 갔다.

그런데 그 다음해부터는 아예 김장을 고향 집에서 해 가기 시작했다. 고향 텃밭에서 자란 배추로 담근 김치라 그랬는지 형님은 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댔기 때문이다. 형수님이 가끔씩 고향에서 가져간 배추김치로 김칫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여 밥상에 올리는 날이면 형님은 "맛이 끝내준다"며 밥상에서 형수님께 엄지손가락을 계속 펴 보였던 것이다.

눈 내린 마당 눈내린 고향 집 마당에서 딸내미가 혀늘 내밀어 눈맛을 보고있다.
ⓒ 김도수

85년 어머니 돌아가시던 초겨울, 텃밭에는 배추와 무가 싱싱하게 자라있었다. 어머니를 선산에 묻고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텃밭에 푸르게 자라있던 배추와 무에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잎에 쌓인 눈들을 털어내며 뽑던 그 배추와 무가 고향 집 김장독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던 지난 세월은 내게 너무 길었다.

'한겨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상에 둘러앉아 푹 익은 배추김치 한 가닥 쭉 찢어 밥숟가락 위에 올려 먹으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지. 살얼음 조각들이 잘게 부서지며 반짝반짝 빛나던 세갈지를 젓가락으로 푹 쑤셔 들고 아삭아삭 베어 먹으면 이 세상 풀리지 않는 일이 없었지. 밥을 먹다 목이 메면 살얼음 잡힌 싱건지를 훌훌 떠먹으면 창자 속까지 시원해져 이 세상 얹히는 일이 없었지.'

이빨이 시려서 식솔들 여기저기서 긴 호흡을 들이키며 고개를 내젓고 감칠맛 나게 먹던 우리 집 겨울철 밥상은 늘 '왕후(王侯)의 찬'이었다.

한겨울 이른 새벽에 깨어나 밤새도록 내린 눈이 마당에 소복이 쌓여 있으면, 나는 싸리비를 들고 어머님이 김치를 내러 가는 장독대 길을 쓸어주었다. 어머니는 싸리비로 쓴 좁은 길을 졸졸 따라가서 시린 손을 호호 불어대며 살얼음 잡힌 싱건지와 배추김치, 세갈지를 한 그릇씩 내오곤 했다.

추운 겨울 날 아침이면 부엌 마루에 차려진 아침 밥상을 안방으로 들고 가면 행주로 닦아진 밥상 표면에는 강추위로 인해 성에가 끼어 그릇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성에 끼어 밥상에서 그릇들이 춤을 추는 날이면 아버지는 꼭 한마디씩 중얼거리셨다.

"엄머, 조놈의 그릇들 춤 좀 추는 것 좀 보소. 오늘 아침 되게 춘갑다."

김치 내는 아내 눈 내리는 날, 주말에 장독대에서 김치를 내오는 아내.
ⓒ 김도수

고향 집 장독대에 여름이면 예쁘게 피어나는 봉선화 꽃을 따서 누나는 어린 내 손톱에 분홍빛 꽃물을 물들여주곤 했다. 어린 내 손톱에 붉게 물들여진 봉선화 꽃물은 마흔 중반이 된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장독대를 바라볼 때마다 누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새로 만든 장독대에 봉선화를 심었다. 여름이면 봉선화 꽃이 예쁘게도 피어나 아내는 아이들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물들여 주곤 한다. 내 아이들 마음속에도 봉선화 꽃물이 붉게 물들어져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으리라.

음력 시월 열 사흗날 밤이면 형제들 모두 고향 집으로 모여 어머니 제사도 지내고 김장도 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김장을 다 할 수는 없어 1차로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 김장을 먼저 한다.

각자 살고 있는 곳에서 품질 좋은 배추와 무를 사서 담으면 될 김장을 굳이 고향 집에서 해가는 것은 아직도 부모님의 사랑이 텃밭에 녹아 숨쉬고 있어서 그러리라. 부모님의 못다 받은 사랑 아직도 더 받아가고 싶어 그러리라. 배추 잎마다 벌레들이 파먹어 송송 구멍 뚫린 곳으로 고향의 맑은 공기가 시원하게 지나갔을 김장김치가 지금쯤 형제들 밥상마다 올려져 밥맛을 한껏 돋우고 있으리라.

봉숭아 장독 새로 만든 장독대에는 여름이면 봉선화 꽃이 예쁘게 피어나고.
ⓒ 김도수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