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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불사조 기사단'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영향력은 이제 영화를 비롯해 게임 등 전 산업에 걸쳐 출간될 때마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시리즈가 이어질 때마다 작가 조앤 롤링의 집필 과정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뉴스가 된다.

마니아들이나 아이들 그리고 해리포터를 이해하려는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해관계의 중심에 이 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불사조 기사단 시리즈를 보면서 상혼이 집약된 우리 나라 출판사의 현실에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를 위한 분권 출간인가

▲ 해리 포터 시리즈 제5권 불사조 기사단의 국내 번역본.
출판사로부터 5편이 5권으로 나누어 출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권으로 출간된 영미권과 비교해 수많은 독자들과 언론으로부터 돈벌이에 눈이 먼 작태라는 눈총을 받았다.

원래 우리 나라의 책 값은 영국에 비해서 1/10 수준이고 미국에 비해서는 1/4 그리고 일본에 비해서는 1/2 정도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 마케팅이 성행하는 미국의 할인율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책 값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얼마 전 제기되었던 온·오프라인 서점들간의 정가 논쟁 과정을 통해서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경우 하드 커버 양장본에 정가 29.99불, 아마존 할인 가격 17.99불 혹은 최저가 13.49불에 판매되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권당 8500원에 5권 총 정가 4만2500원에 판매 되는 현실은 누가 보더라도 과도한 잇속 차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세를 제외하고 출판에 소요되는 비용이 우리가 미국보다 높을 리 만무하고 여기에다 단순 도서 가격의 차이를 1/10이 아니라 최저 할인율-최저 판매 가격 13.49불을 감안하여 59% 즉 1/3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너무 심한 가격 차이다.

거기에다 총 정가에 매겨진 인세는 출판사를 통해 외화로 환전되어 작가에게로 돌아갈 터이다. 이에 출판사는 아이들의 독서 피로를 줄이기 위해 분권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금세기 최고의 마법소설”이라는 카피를 표지에 싣고 있는 출판사는 어른 독자들을 위해 단행본 출간을 동시에 겸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출판사는 우리 출판사보다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에 분권하지 않았을까?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의 출판사는 또 어떠한가? 출판사가 활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주체라는 환상을 버린 지는 벌써 오래 전이다. 또한 '출판사는 가난하다'라는 고정관념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그래도 이러한 출판사의 행동은 너무 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번역의 문제

지금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문학수첩'의 게시판은 오역과 오타에 대한 독자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해리포터>는 최초 번역자 김혜원이 3부까지 번역하고, 4부는 5부를 번역한 최인자와 공동 번역을 맡았다. 마지막 5부는 최인자가 단독 번역했다.

게시판의 글들은 누구의 번역이 더 잘 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떠나, 번역된 문체 자체가 전 편들에 비해 5부에 와서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로 윤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에서부터 오타와 오역을 지적하는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출판사는 사춘기를 맞은 주인공의 내면 의식을 좇다 보니, 전 편들에 비해서 다소 무거운 문체가 사용되었다고 댓글을 달고 있다. 필자가 번역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식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들리를 보고 ‘찌찌보이’라고 놀리는 해리포터의 대사 번역에 이르러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두들리에 대한 이모와 이모부의 왜곡된 편애와 이를 당연하게 누리는 사촌에 대한 야유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찌찌보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번역이 된다는 것은 번역자의 고민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임을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호그와트 발달사’와 ‘호그와트 역사’에 대한 혼돈이라든지 3권 125P(제 19장 '사자와 뱀') 16번째 줄에서 “해리와 론은 곧 그들에게 닥칠 재앙을 짐작할 수 있었다”에서 같이 있었던 사람은 론이 아니라 존이었다는 사실 등 독자들의 항의와 충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전편 오역에 대한 독자의 지적에 대해 문학수첩은 "영국과의 정서적 차이 부분이 있었습니다. 원어로는 깔끔하게 정리되지만 한글로 풀어쓸 경우 늘어지거나 부적합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타지 물에 대해 이해도가 낮은 한국적 상황 또한 오역의 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많은 오역이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지속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오역을 시정하고 있는 중"이며 "처음 발간 시와 비교하면 현재까지 20% 이상" 바뀌었고 "완벽하게 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하며 "지금 번역 중인 5부는 빨리 출간하기보다는 번역자가 충실히 번역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작업을 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던 출판사의 해명은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았음이 5부 출간에서 확인된 셈이다.

책은 책이다

동네 서점에서 1권과 2권을 구입해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인쇄가 전혀 안 된 페이지가 무려 5면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책의 뒷 면에 '인쇄가 안 된 책이나 파본은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조차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이 교환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시 다리 품을 팔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식품은 교환하여 드립니다'라고 쓰여진 음식에는 적어도 '제조과정에서는 문제가 없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고해야 하는 노력과 과정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책이 유통과정에서 변질 될 리는 만무할 테고, 이는 제조과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출판사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필자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인쇄가 흐리게 나왔다거나 제본 불량을 구입했다는 독자들도 있다. 이것을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적당히 넘어가야 하는 문제일까?

얼마 전 <로마인 이야기>를 출간한 한길사가 저자와의 번역 출간 계약서를 은행 측에 제공하고 운영자금을 대출 받은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좋은 책이 좋은 평가를 받아 출간되고, 소비되는 바람직한 유통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돈벌이에 급급한, 혹은 속이 뻔히 보이는 상업 행태로 독자들에게 각인이 된다면 이는 결국 책과 독자와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좋은 책은 올바른 작가적 소양을 지닌 저자와 양식 있는 독자들의 판단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이를 뒷받침하는 출판사가 필요하다. 문단이 출판사와 영합하고 출판이 상업주의와 결탁해 독자들을 왜곡된 지식의 창고로 인도한다면 책은 더 이상 인간적 삶의 가치를 높이는 자양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해리 포터 : 마법사의 돌 (양장)

J.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문학수첩(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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