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부터 시작된 '반부패 국제영화제'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개최한 여러 문화 행사들 중 하나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쌀쌀한 날씨라 그런가. 영화제 개막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아 얇은 옷을 입고 전통 춤사위를 선보이는 무용수들이 안돼 보일 지경이었다.

▲ 개막식의 흥을 돋운 공연
ⓒ 강윤주

▲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테마로 한 춤공연의 마지막 장면. '부정부패'와 'Corruption'이라고 씌어진 종이를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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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명성기구가 NGO라는 말을 들은 탓에 시민단체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무대 옆 가설 벽에 씌어 있는 후원 및 지원단체 이름에는 정부 조직명이 대부분이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가지고 '반부패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인 독일인 볼프강 피셔(Wolfgang Fischer)를 만나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어떻게 이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2000년 3월 언론에 실린 국제투명성기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인터넷에서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은 뒤 베를린에 있는 사무국에 찾아가 명예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해 12월부터는 영화제 일에 관여하고 있다(국제투명성기구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 사무국에는 명예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볼프강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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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투명성기구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국제투명성기구는 세계은행에서 일했던 페터 아이겐(Peter Eigen)이 93년 설립했으며 지금은 85개국에 지부가 있다. 정치·사회·경제의 다양한 분야에서 부패방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베를린에 있는 사무국이나 각국의 지부들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할 때는 서로 협조하지만 나라마다 부패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주력해야 할지는 해당 국가 지부에서 결정한다."

- 세계은행과 NGO는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보는데 이 기구를 전 세계은행 사람이 설립했다는 것은 조금 역설적으로 들린다.
"페터 아이겐은 세계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세계은행의 한계를 뼈저리게 체험했고 바로 그 이유로 세계은행을 나와 이 기구를 설립했다. 처음 국제투명성기구를 설립할 때 그가 도움을 얻었던 친구들도 모두 세계은행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들었다."

- 개막식을 비롯하여 이번 행사가 다소 관 주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NGO와 달리 국제투명성기구는 원칙적으로 정부 조직이나 기업 관계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논의를 해야 부패 척결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의 공동 전선을 꺼리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이번 행사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감사하고 있다."

▲ '국제투명성기구' 페터 아이겐 회장
ⓒ 강윤주
- 부패를 어떻게 정의해야 한다고 보는지
"부패는 암 세포와 같은 하나의 병이다. 암은 약물 치료만으로 치유할 수 없으며 가만히 놔두면 온 몸 구석 구석으로 퍼져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수술도 필요하고, 물리치료도 필요하며 때로는 다른 방법도 필요하다. 부패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과 싸우지 않으면 언젠가 온 정부 조직이, 기업 조직이 부패라는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 국제투명성기구가 해온 일의 성과라면
"솔직히 말해 아직 이렇다 할 커다란 성과는 없다고 봐야겠다. 독일 같은 경우 부패 경제인의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한 것은 하나의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기구 내에 있는 관련 법률 제정 추진 모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연방 의회의 관계 기구가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는데다 각 정당이 기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에 무척 힘들다."

- 국제투명성기구의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종종 내가 에베레스트 정상이나 히말라야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내가 혼자 이 많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해낼 수 있겠는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부패에 대한 각종 제보를 받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까지 제보를 해왔다.

예를 들면 한 대학에서는 박사 과정 졸업 시험을 앞둔 학생이 졸업 시험에 부정이 있다고 시험을 거부한다는 제보를 해왔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 산재한 문제 중에 우리는 일부만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너무 좁힐 수만도 없다 보니 결국 각 분야의 문제를 깊게 다루지 못하고 너무 이것 저것 일에 손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지난 달에도 베를린에서 '브레인 스토밍' 시간을 가졌는데 온갖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다. 곧 그 아이디어들이 현실에 반영되면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 기대한다. 함께 기다려주기 바란다."

-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상영 장소가 영화들의 성격에 다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장단점이 있다. 메가박스라는 멀티플렉스 극장은 이 영화들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은 장소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 진흥회를 통해 영화과 학생들이나 각종 단체에 홍보해 두었으니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좋은 점으로는 이번에 함께 열리는 제11회 반부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회의 장소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러 왔으면 좋겠다."

당신은 감히 '마피아'에 저항할 수 있나?
영화소개1 - <백발자국>

▲ 영화 <백발자국>의 포스터
당신의 할아버지가 마피아라면, 당신의 아버지가 마피아라면, 그리고 당신의 삼촌이 마피아라면 당신은 감히 마피아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겠는가? 당신 집에서 백보밖에 떨어지지 않은 집에 그 마피아의 대부가 살고 있다면 당신은 감히 집 앞 거리에서 외칠 수 있겠는가? "그는 마피아다! 그는 범죄자다!"라고?

'시실리'하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영화 <대부>의 나른하면서도 날카로운 알 파치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모두 이 마피아 때문이다. 하지만 마피아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일어선 한 젊은이를 그린 이 영화는 시실리 사람들이 마피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얼마나 그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친척들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난 빼삐노. 그가 성장해 자신의 일가가 마피아 집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 하는 행동들은 친척들을 몹시 괴롭힌다. 그는 정치 운동에 깊이 빠져들면서 마피아의 범죄 행각을 폭로하는 글을 쓰고 결국 개인 방송국까지 만들어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더불어 날마다 마피아, 곧 자신의 친척 아저씨들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살기 위해 마피아 집단에 들어간 아버지 루이지는 끊임없이 동료들과 대부에게서 위협을 받는다. 그는 빼삐노를 때려도 보고 협박도 하고 애원도 하지만 빼삐노에게는 쇠귀에 경읽기다. 빼삐노는 계속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그러면서 조금씩 그의 지지 세력을 확보해나간다. 그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마피아에게 주는 타격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마르꼬 뚤리오 죠르다노가 만든 이 작품은 따노 바달라멘띠라는 마피아 두목이 6~70년대에 저지른 범죄를 고발한 빼삐노 임빠스따또라는 젊은 시실리 출신 활동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사자의 코 앞에서 겁도 없이 그를 약올리는 생쥐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은 빼삐노의 아슬아슬한 행동은 관객들로 하여금 언제 그가 폭행당하거나 암살될 것인지를 절로 기다리게 하지만 영화의 많은 부분은 빼삐노의 '활약상'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가 생난리를 치다시피하며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의 재치있고도 날카로운 멘트들, 또 동료들과의 유쾌한 대화 등은 그 당시 세계적인 추세였던 히피 운동을 떠올리게 하며 그들의 젊은 에너지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질 지경이다.

28일 저녁 9시반에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해외 영화상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했다. / 강윤주

그들에게 '골프'는 생사를 건 싸움이다
영화소개2- <골프 전쟁>

▲ 영화 <골프 전쟁>의 포스터
제목만 보면 자칫 걸프만에서 벌어진 걸프 전쟁을 말하는 게 아닌가 오해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큰 맥락에서 보자면 '골프 전쟁'이나 '걸프 전쟁'이나 그 주범 세력은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필리핀의 하시엔다 록 (Hacienda Looc) 사람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골퍼들에게 내줘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해안가 풍광을 배경으로 한 세계적 골프장을 만든다는 취지 하에 정부와 부동산업자들이 작당하여 이 지역 주민을 내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다큐멘타리는 세계적인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와 그의 아버지가 인근 지역 골프장에 왔을 때의 모습과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그 지역 주민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필리핀 반군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전반부에서는 이 나라 저 나라의 식민 지배에, 또 독재 정권의 횡포에 시달려온 필리핀의 역사를 짧게 소개하는데, 유감스러운 것은 지금 이 시점에도 이 나라 국민들은 다른 형태의 지배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관광 산업 관계자들은 이 지역을 관광지화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에 로비를 하고 정부는 지역 주민들을 내쫓고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주머니를 배불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한다.

미국 관광 산업 관계자들을 대신한 필리핀 정부와 지역 주민들의 갈등은 마침내 이 마을 농부 세 사람이 이 지역 개발 회사에 고용된 '보디 가드'들에게 피살 당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타이거 우즈를 보기 위해 까맣게 모여든 필리핀 사람들에게 (물론 그들은 골프를 칠 수 있는 중상류층 사람들이다) "골프는 게임이다.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다. 그저 즐겨라!"하고 말한다.

누군가가 골프를 게임으로 즐기고 있을 동안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골프를 즐기는 푸른 초장이 실은 피 머금은 땅이라는 것을 그가 알게 될 날이 올까?

'골프의 대중화' 운운하는 사람들이 꼭 한번 보았으면 하는 이 다큐멘타리는 5월 28일 수요일 저녁 5시 15분 메가박스에서 상영된다. / 강윤주
2003-05-27 15:3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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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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