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윤주
“디지털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디지털 영화”라는 화두는 한때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내놓곤 했던 “포스트 모던”이라는 단어 만큼이나 인구에 회자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할 “정답”이 발견되지 못했다.

13일 개막한 “인디 비디오 페스티발” 역시도 이 화두를 붙잡고 고군분투하는 전사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99년 “비디오 작가 연대”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디지털 비디오 작품을 만드는 작가 서른명 남짓이 모여 정기 상영회를 가지며 서로를 격려했던 그 단체가, 올 초 “대안 영상 문화 발전소 아이공”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올해 두번째를 맞는 “인디 비디오 페스티발”을 개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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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찾아준 아는 얼굴들에게 인사하느라, 상영 작품 소개를 하느라, 또 관객과의 대화를 이끄느라 바쁜, 대안 영상 문화 발전소 아이공 대표이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장인 김연호씨를 붙잡고 한시간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 내용이 이 영화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이곳에 옮긴다.

-최근에 열리는, “인디”면서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작품들을 상영하는 다른 작은 영화제들과의 차별점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
"비디오라는 매체가 보편화되어 여러 영화제들이 생기면서 우리 단체와 영화제의 자리 매김을 새롭게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비디오라는 매체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들을 보여주는 일에 주력한다. 그래서 “비디오 포엠”, “포스트 다큐멘타리”, “디지털 비디오 다이어리”와 “비쥬얼 랩”이라는 장르를 새로 개척해내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는 그간 정기적으로 열린 바 있는, “인디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소개되었던 새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하는 작업은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뛰어넘어 보는 일이다. 이를테면, “디지털 스페이스” 섹션에서는 우리가 흔히 “독립 다큐멘타리”라고 부르는 작품부터 “미디어 아트”, “웹 아트” 등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영화인지 미술 작품인지 애매할 것들, 또 극영화까지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이자 프로그래머 장인 김연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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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장르의 개발과 기존 장르의 파괴를 동시에 시도했다는 뜻인 듯한데?
"그렇다. 디지털이라는 매체는 아직까지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가능성들을 뒤져보고 드러내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자면 기존 영역간의 구분을 해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쉽지 않다. 가령 압바스 키에로스타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이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하나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이곳에서는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로 소개되고 다른 곳에서는 미디어 아트, 곧 “미술 작품”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렇게 한 작품을 각자의 문화 영역 방식으로 소개하면서도, 정작 그 문화 영역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은연 중에 애니메이션이면 애니메이션, 극영화면 극영화 한 영역의 전문인으로 머무를 것을 권유, 혹은 강요받고, 여러 영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데에 있어 거북한 시선들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 단체는 상대적으로 기존의 경계 짓기에서 자유롭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영화와 미술이라는 영역 중간에 끼어있는 셈이기도 한데, 우리는 이 어중간함, 혹은 자유로움을 활용하여 오히려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보려는 것이다."

- “비디오 포엠”이라는 장르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비디오 포엠” 섹션에는 2002년 11월 “More than Words-International Video Poem”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던 “제4회 밴쿠버 비디오 포엠 페스티벌”의 작품들이 초청작으로 소개된다. 나도 “비디오 포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압축적이고 철학적인 단상들을 리듬감 있게 영상화한 작품들이겠지, 하면서 매우 추상적이고 난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하게 “비디오 포엠”을 읊고 있었다. 기본 포맷은 영상과 함께 시를 읊는 것인데 대단히 사적인 이야기를 시로 읊기도 하고, 단순한 단어 몇 마디와 간결한 영상으로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비디오라는 매체가 밥 숟가락, 젓가락처럼 아주 일상적인 도구라는 듯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작품 중에 개성이 뚜렷한 것들이 많지 않은가?
"생각 외로 그렇지 않다. 다음주 시작되는 “서울 독립 영화제”에 사백여편의 작품이, 또 올 초에 열렸던 “인디 포럼”에도 삼백여편의 작품이 들어왔다고 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건질 작품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반 이상이 디지털 작품이고 나머지가 필름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오히려 필름 작품 중 상영작으로 뽑힌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자면, “디지털 비디오” 매체를 다루기 쉬운 만큼, 만드는 사람들도 자신의 작품을 너무 쉽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한다. 우리 영화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합쳐 157편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많은 경우 천편일률적인 주제를, 성의없이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천편일률적이라 함은?
"기승전결이 딱딱 나누어져 있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겠구나 하는 방식대로 찍혀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늘 생활하다 보니 그 영역을 벗어나는 주제 잡기가 힘든 건 알겠지만 대부분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다루는 건 좀 지루하다. 그것도 교사에 대한 반항이 주제인데, 이를테면 교사 앞에서 담배를 핀다든가, 대드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심리적 억압을 그런 식으로 표출하려 한 것은 알겠지만 왜 모두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주제를 잡는 데에 고민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 고등학생들보다 윗세대인 사람들이 만든 출품작에는 현란한 기술적 재주가 눈에 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개성적인 주제 의식이 없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눈에 대고 장면들을 찍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내가 독특한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기술적 효과가 있다고 해도 소용없다. 주제 의식에 대한 고민, 매체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고민, 그런 고민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디 비디오 페스티발”(www.indievideo.org) 은 12월 13일부터 17일까지 광화문 흥국 생명 빌딩 지하 “아트 큐브”에서 열린다. 디지털 비디오로 영화를 포함한 각종 영상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가서 자신의 사고가 “천편일률적”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볼 수 있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2002-12-14 18:5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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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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