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일자 <오마이뉴스>에서 이찬근 기자(인천대 교수,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는 "좌파가 '보수기득'과 손잡다니요/장 교수님, 이념 빼고 토론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의 '재벌개혁론'을 반박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이찬근 기자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이찬근 기자의 재반론이나 그외 이 주제에 관심있는 다른 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 주]


이 글은 한때나마 '황당한' 이찬근 교수의 글이 <오마이뉴스> 톱에 오르는 것을 보고서 쓴다.

아마도 이는 <오마이뉴스>에 자주 접속하는 수백만 386(부분적으로 486)세대들과 그 위, 아래 연배에 걸쳐서 넓게 분포하는 또 다른 수백만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 상당수의 사고방식과 이 교수의 주장이 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간단히 보아 넘길 해프닝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소중한 진보에너지의 큰 부분이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기 위해, 가로등을 설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붙들어 매놓자'는 쪽으로 몰려갈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좌파가 ' 보수기득 ' 과 손잡다니요 장 교수님, 이념 빼고 토론합시다"

이찬근 교수 얘기는 구절구절 중대하고도 널리 퍼진 착각과 오류를 담고 있어서 제대로 비판하려면 엄청나게 긴 글이 필요한 듯하지만 지면 관계상 그가 강조하는 '현실인식' 문제를 중심으로 이 글을 쓴다.

물론 이 교수와 대안연대의 주장은 '재벌구조 개혁'이나 'SK사태 해결방안'이나 '주주전횡의 문제점을 개선할 기업지배구조'나 '주주가치 중시주의의 폐해 억제방안' 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놓고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필자 외에도 언급할 사람이 많은 듯하여 접는다.

하여간 대안이 구체적이고 총체적일수록 논점은 선명해지고, 따라서 논쟁은 생산적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교수의 소망대로 '이념'을 빼고 당면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놓고 토론할 수 있다.

이념을 빼고 얘기하자고? 그러나 '이념' 빼고 얘기하자면서 <오마이뉴스>에서 펼친 이 교수의 얘기는 결코 '이념'을 빼고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에 불과한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라인형 자본주의)이 현단계 전통제조업이 주력인 한국 사회의 연대와 효율을 높은 수준에서 결합할 수 있는 대안모델이라 생각하고, 바로 이 관점에서 참여연대의 '주주가치 중시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주가치 중시주의가 금융주도형경제의 논리로서, 한국 재벌을 월스트리트에 바겐세일하고, 나아가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아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제약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 그 일각을 드러낸 이 교수의 사고방식은 이교수가 쓴 책 <창틀에 갇힌 작은 용>(물푸레, 2001)에 보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황당한 주장이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

이 교수의 글이 기본적인 실사구시를 등한시하여 조잡하긴 하지만, 약간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교수가 한국의 산업 및 사회 발전단계와 핵심 경쟁력(중간기술의 전통 제조업)과 금융시스템과 기업지배구조를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5월 7일자 톱에 실린 글 중에서 이찬근의 현실인식과 문제해결 방법론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 부분을 살펴보자.

'한국경제는 아직도 굴뚝 산업형 대규모 제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소한 20년 동안은 금융업보다는 제조업에 의존해서 생존과 발전을 계속해야 한다. 동시에...중국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제조업 분야에 대규모 혁신 투자가 지속되어야 한다...따라서 우리경제가 성급하게 금융주도형 경제의 논리인 주주가치 이념에 빠져드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참여연대가 추종하는 주주가치 논리를 맹종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아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제약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 왜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에 빠져들었고 그 사회경제적 귀결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분명해진다...오늘날 미국은 군수산업이나 첨단 벤처산업 외에는 이렇다할 산업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미국의 대기업들은 주주를 위해 ‘주주가치’는 높이고 있을지 몰라도 ‘기업가치’의 장기적 향상에는 실패하고 있다...경제 발전론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재벌은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성공적인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며...앞으로도 국민경제의 성장엔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결국 이찬근 교수 주장의 핵심은 주주가치를 중시하다 보면, 기업의 중장기적 미래가치 향상에 관심이 없는 주주들의 비위를 맞추게 되고 따라서 배당, 자사주 매입, 스톡옵션 등 형태로 이익을 나눠줘 버리니 재투자 여력이 소진되고, 결국 긴 호흡의 투자가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스템은 특히 회임기간(라이프 싸이클)이 긴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큰 한국은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럴듯한 주장은 이 교수의 현실인식을 실사구시해 보면 그 허구성이 수두룩하게 드러난다. 정말 그가 늘어놓은 수많은 말 중 드물게 필자가 공감하는 말; '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가 문제해결 방법론에 대한 차이를 낳는다'고, 이 교수의 문제해결 방법론은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실사구시를 등한시하여 허구가 되기 십상이고, 게다가 현실을 보는 틀이자 색안경인 대안모델(거대담론)이 시대착오적이기에 그 해결방법론은 거의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실사구시를 해볼까?

단적으로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들은 주주가치가 중시 논리가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주장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고 파는 초단기 투자자라 하더라도, 그가 주시하는 것은 주식시장이라는 용광로에 녹아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이 기업의 중장기적 미래가치에 끼치는 영향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주식투자자는 분명히 주가관리를 잘하는 기업을 높이 사지만, 그들이 높이 사는 최고의 주가관리는 높은 배당금도, 이익으로 자사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중장기적 잠재력이다.

미국에서는 경영자들이 거액의 스톡옵션을 챙겨가기 위해 지나친 단기실적 중시 경향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익잉여금이라는 우선 먹기 좋은 곶감에 침흘리는 주주들 눈치보느라 생산적 투자가 제약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비록 주주들의 감시 때문에 부실계열사 변칙 지원 못하는 문제는 있을지라도...

물론 기업들이 IMF환란 전에 비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주주들, 특히 외국인들의 단기실적주의 압력 때문도 아니요, '금융헌신'을 경원시하는 은행의 비협조로 투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아서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경기 전망에 대한 비관이 핵심적 이유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IMF환란을 전후하여 30대 기업 중 16개가 파산. 매각되고 총 150조원 가까운 금융부실을 경험한 여파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과감한' 투자 경향이 어느정도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소액주주 운동도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소수파의 권리를 인정하듯이 딱 그만큼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일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당연한 주장이 터져나오는 것은 한국은 대주주 혹은 순환출자 방식으로 탄생한 이상한 대주주가 전횡을 일삼아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액주주의 권리를 찾기 위해 주총장에서 '생쇼'를 하고, 법적인 수단에 호소하여 매스컴에 부각이 된다고 해서 '재벌이 소액주주만의 것이냐'고 일갈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이하이다.

5월 7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 보면, 2002년 3분기말(9월말)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185조 9천억 수준이었는데, 2003년 1분기말(3월말)의 대출잔액은 206조 6000억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전체 기업대출 240조 4천억원의 85.7%를 차지한다. 대기업 대출비중이 줄어든 것은 국내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체율도 국민은행의 경우 작년말 3.45%에서 1분기 3.74%로 상승했다. 이는 국민은행이 산업에 대한 헌신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갈곳 없는 돈을 가계대출로 막 빌려주다가 이것이 여러 가지로 한계에 봉착하자 이전에는 별로 거들떠 보지 않던 중소기업 대출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은행의 기업금융 노하우도 약간 높아졌고, 기업들도 약간은 더 투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불과 1~2년전까지만 해도 이 교수는 은행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로 월스트리트 기준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강요하다 보니 중소기업에 돈이 안간다고 비명을 질렀다.

물론 아직은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어서, 돈 빌릴 필요가 없는 초우량기업에는 서로 돈 빌려주려고 은행들이 줄을 서고, 차입이 절실히 필요한 많은 유망 중소기업에는 은행도, 주식시장도, 채권시장도 외면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이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금융시스템 정상화 속도는 낙관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잘되면 이자와 원금, 못되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다 날리는' 과거 기업금융방식(이는 평생 채무자를 따라 다니는 가계대출과는 다르다)은 은행에 절대적으로 불리하여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회임 기간이 긴 장기 투자는 산업에 대한 헌신성이 넘치는 은행과 관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부분 쪽박을 차긴 했지만 기술주 시장에 장기전망을 보고 쇄도해간 엄청난 자본은 이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적인 군대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공군도 있고, 상대적으로 꿈뜬 육군도 공존하듯이, 이 시대의 금융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투기자본도 있고, 기회(금리)도 적고 위기도 적은 곳으로 가는 자본도 있고, 위기도 크지만 대박을 노릴 수 있는 곳에 가는 벤처자본도 있고, 5~10년 진득이 기다려서 기회를 보는 자본도 있기 마련이다. 이는 금융제공자(투자자,채권자)와 기업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무수히 다양한 조건에 딸린 문제이다.

이찬근의 핵심 착각

이 교수의 착각과 오류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주주가치가 중시되고,금융유동성과 고용유연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세계사적 환경변화(특히 시장환경)와 한국의 산업발전단계 및 사회적 특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찬근은 세계화(개방화), 정보화, 자유화(탈규제화, 시장화,민영화), 과학기술혁명이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 만들어낸 세계사적 시장 환경 변화를 모르고 있다.

정보화, 세계화, 과학기술혁명은 인간의 수명외에 시장에 나와있는 모든 존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다시말해 모든 존재를 격심한 변화, 부침,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았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어떤 산업, 어떤 업종, 어떤 기업이 유망한 지 선험적으로 예측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게 마련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돈되는 곳에는 자본과 사람이 빨리 달려가고 돈 안되는 곳에서는 자본과 사람이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금융유동성과 고용유연성과 주주가치가 강조되는 핵심 이유중이다. 그렇다고 기업이해관계자들의 합심 노력이 덜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어느 시대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다만 기존에 정착하여 부쳐먹던 토지의 황폐화가 빠르고, 반면에 새로운 옥토(상품.서비스)가 많이 출현하기에 금융이나 고용이 유목적 특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측불가능한 시장환경에 놓인 지금의 기업들은 종업원들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해서 시장에서 존재의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특히 보호주의 장벽이 한층 낮아진 현실에서는, 종업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 저편에서 나타난 강력한 경쟁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기술이나 신제품에 시장을 빼앗길 수가 있다. 또한 고객 니즈가 변덕을 부려 자신의 제품이 급격히 진부화될 수도 있다. 당연히 기업이 존재의의를 잃어버리는 사태가 오기 전에 기업들은, 경영역량과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나아가 비교우위를 쫒아서 생산기반을 세계화하기도 하고, 기업의 인수.합병.매각.분사화.외주화 등 유연화 조치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주주(투자자와 그 대리인인 경영자)가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합의에 의해 중요사안을 처리해야 한다면, 시장환경의 변화나 기업의 전략에 따라 사업의 철수. 매각. 합병, 사업장 이전, 공정 외주화 등 유연화 조치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효율을 존중하는 종업원들일지라도 사업의 철수. 이전. 외주화 등 각종 유연화조치 등에 호의적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실기업 직원 치고 심각한 부실의 늪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투자가치가 없다는 금융의 냉혹한 판단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나 금융 헌신성이 중시·권장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빈발하고, 투자효율성이 낮은 기업에 엄청난 돈과 사람이 묶이는 경우도 빈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변화. 부침이 심한 시장환경에 역동적으로 대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조성하여 위기를 크게 증폭시킬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주주나 채권자의 권리가 종업원들에 의해 크게 제약되는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리스크를 안고 전망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벤처 창업(모든 사업은 초창기에는 사실상 벤처이다)이 활성화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느 시대 보다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절실히 필요한 세계화, 정보화,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10년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 진작부터 현실이 되어있고, 독일 역시 심각한 고민을 하는 현실이다.

반면에 미국은 이런 환경에 자신을 가장 잘 적응시킨 국가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한국무역협회는 2002년 8월 13일 유엔(UN)의 국제교역통계 자료를 활용, 지난 96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국제상품분류(HS) 6단위 기준으로 전세계 교역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그런데 이 변화추이를 보면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우리 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수는 지난 96년 91개였으나 98년 85개, 2000년에 다시 81개로 감소했다.(전체 5033개 품목중 1.6%) 독일은 같은 시기에 898개->880개->728개로, 일본은 같은 시기에 389->320->379개로 소폭 줄어 들었다. 반면 중국은 96년 487개에서 매년 크게 늘어나 98년 578개, 2000년 731개로 증가했다.

그런데 미국도 크게 증가하였다. 96년 849개, 98년 952개, 2000년 1028개로 늘어났다. 결국 중국과 미국만이 1위 품목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중국은 탄탄한 원가 경쟁력도 있고,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포화상태인 상품들에 대한 거대한 내수 수요가 있으니 그렇다쳐도 미국이 1위 품목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끊임없는 새로운 수요에 대해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경제(금융)시스템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이런 환경에 적응한 한국의 산업발전단계는 설사 전통제조업일망정, 이 교수가 지적한 요건들이 성장·발전의 관건이 아니라는 것을 이 교수는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캐치업 단계를 진작 넘어선 한국의 산업발전 단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의 산업발전 단계는 금융기관이 거액의 투자금 빌려주고 몇 년 기다리기만 하면 기존의 자동차나 철강 등 전통제조업이 펄펄 살아나고, 나아가 신수종 전통제조업으로 막 뻗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1973년 5월 정부 주도로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자주 국방과 산업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했다.(1973년에는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6개가 전략업종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독일,일본 등의 산업화 궤적을 살펴보면 자명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식으로 정부가 강권과 정책 금융으로 산업정책에 직접 개입하여 위기를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가능했고, 또 나름대로 효용이 있었던 전제 조건은 모두 바뀌었다. 특히 선진국의 통상압력보다, 과거의 국가 관료 주도의 선택.집중 전략의 효용을 근본적으로 의심케 하는 변화는, 민간금융기관이든 정부기관이든 어떤 산업에 전력 투구하면 그 산업이 5~10년 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IMF환란을 전후하여 엄청난 국민부담을 떠넘기고 파산하여 빅딜, 통폐합, 해외매각 등 구조조정 대상업종이 된 업종(기업)들; 기아차, 한보철강, 삼성차, 쌍용차, 대우차 같은 기업과 철도차량, 발전설비, 항공,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선발국의 경험으로 볼 때 반드시 될 산업이라는 느낌을 재벌총수와 대부분의 관료, 은행가들에게 주었던 업종들이다.

바로 이 때문에 1980년대 말~ 90년대 초 규제 완화를 틈타, 재벌들은 마치 몇개 남지 않은 막차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걸고 질주하는 사람들처럼 달려 들었다가 실패하여 IMF환란의 원인이자 결과로 되었다. 물론 이는 애초부터 안될 사업도 아니었고, 또 돈만 조금만 더 대주면 대체로 될 사업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어떤 전통적 비교우위 요소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경영역량에 달린 문제였다.

한편 기아차, 한보철강, 삼성차, 쌍용차, 대우차등 주요기업의 사업내용을 보면, 금융 헌신이 얼마나 기업들에 의해 악용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과투자라는 말로 표현이 적절치 않아서 '황당투자'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 정도이다.

결국 IMF환란을 전후하여 터져나온 150조 가까운 부실들은 재벌중심의 캐치업 방식의 산업발전 전략의 파산의 산물이자, 그 역사적 수명을 다한 박정희 시스템이 질기게 연명하면서 무분별한 개방화와 결합하면서 그 폐악을 극도로 증폭시키면서 죽어간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융헌신이라는 멋들어진 말이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합심 단결은 중요하고, 특히 협조적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대중들의 지도층에 대한 신뢰, 대화. 타협의 문화, 효율존중의 정신 등이 넘치는 독일조차도 지금의 시장환경변화와 크게 충돌하면서 주주가치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몰리는 상황인데, 모든 면에서 독일과 비교가 안되는 한국에서는 독일과 비슷한 기업지배구조를 흉내내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발전(개발)국가 자본주의 혹은 라인형 자본주의는 흘러간 옛 노래

결국 이찬근의 현실인식의 문제를 진단하는 준거 틀이자 그의 대안모델인 발전(개발)국가 자본주의 혹은 라인형 자본주의는 선발국 벤치마킹을 통해 소출이 많을 것 같은 땅에 말뚝을 박고(부국 강병을 위해 반드시 일으켜야 될 기간·전략 산업이나 국제적 비교우위 요소를 고려한 전략적 투구 대상으로 설정한 품목), 관료-채권자-주주-경영자-종업원 등 기업이해관계자들이 합심 노력하면, 충분한 소출을 거둘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상황에 조응한 시스템인 것이다.

특히 핵심 생산요소인 돈이나 사람(지식근로자) 입장에서 기회도 자유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역사적 상황에 조응하는 시스템이자, 금융이 각종 규제에 묶여 자기 수익성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에 조응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한국에 대폭 창조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유, 개방화, 규제완화, 사유재산권(주주권리) 등은 무조건적으로 옹호되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규제, 보호주의, 공적통제 등도 무조건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악이 아니라는 것도 상식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 어떤 주장도 역사적 맥락 내지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인식(지형)과의 관련성 속에서 보아야한다.

자유방임주의로 인해 심각한 독점과 대공황과 전쟁을 겪는 역사적 상황에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규제철폐를 외치는 것이 반동이듯이, 시장논리가 한국의 사회적 강자들; 재벌이나 대주주 대기업. 공기업의 정규직노조, 독과점적 언론권력, 토지와 건물을 딛고 서 있는 수많은 불로소득자, 그 전문성이나 사회적 기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가치를 전유하는 독점적 자격증협회 등의 반칙(불공정 경쟁)에 의해 왜곡되어 사회의 효율과 연대를 심각하게 갉아먹는 상황에서는 시장논리(소비자·독자·시청자 주권이나 납세자주권, 유권자 주권, 주주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대체로 반동적이 되기 십상이다.

이찬근과 대안연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뜨거운 애정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대안 담론이 시대착오적이기에 '어두운 밤길을 밝히기 위해 태양을 붙들어매자는 식'의 대안을 내놓고 있으며 따라서 현단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형을 감안하면 그 실천적 귀결도 결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없다. “기득권적 보수와 이념적 좌가 일맥상통했다”는 장하성 교수의 지적은 적확하다고 생각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 소장(2005) 전 대우자동차기술연구소 차장(2003)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2009)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