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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의 상징 CN타워
ⓒ 김태엽
발발한 지 불과 석달만에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은 사스(SARSㆍ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5월에 들어서야 조금 진정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 외 나라 중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집계되었던 캐나다의 토론토는 5월 5일 현재 23명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 보건 당국은 3월 중순 첫 사망자 발생 이후 핫라인 운영, 병원 폐쇄, 철저한 방역, 감염자와 감염 의심 환자에 대한 격리 등을 통해 사스 통제에 나섰다. 캐나다의 경우 감염자의 1/4이 의료계 종사자들로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감염되었다.

사스 확장 초반부터 현지 언론들이 호들갑을 떤데다가 세계보건기구(WHO)가 토론토를 여행자제권고지역으로 발표하면서 토론토는 지난 4월 한달 동안 국제적인 고립을 맛보아야 했다. 1년 이상을 준비해 오던 대규모 국제 회의가 취소되고 관광객들과 유학생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국내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되어 경제성장률에 대한 기대도 현저히 낮아진 상태이다.

하지만 WHO가 여행자제권고를 발표한 지 불과 1주일이 못 되어 토론토는 이를 철회시켰다. 게다가 5월 초순에 들어서면서 토론토의 사스 감염 상황은 거의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관광, 문화 분야는 저렴한 상품들로 손님 끌기에 분주하고, 지난 주말에는 기름값을 파격적으로 내려 주말 내내 주유소마다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토론토의 관광 명소인 CN타워 또한 지난 주말 입장료를 파격 할인하고, 토론토 메이저리그 팀 블루제이스와 텍사스 레인져스의 경기를 1불(한화 850원 가량)에 개방하는 등 사스 여파로 인해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꺼리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여러 자구책을 내놓기도 했다.

▲ CN타워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위)과 특별 할인 가격에 기름을 넣으려고 꼬리를 문 차들
ⓒ 토론토스타
최초 사스 사망자 발생때부터 두달 남짓 동안 WHO의 여행자제권고지역에 포함됐다가 이를 철회하면서 토론토는 중국, 홍콩과는 다른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있기까지 너무나 큰 긴장감을 겪어야 했다.

토론토에 몰아친 사스 태풍

4월 23일 WHO의 여행자제권고지역에 토론토가 포함된 후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걱정어린 전화를 받았다. 저녁 9시 뉴스에 캐나다 토론토에 사스가 만연해 위험하니 절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나왔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전화를 준 건 좋은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전염병이 번진 동굴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나마 다니는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상점들은 문을 닫거나 일찍 철시를 했다는 보도가 나간 모양이다. 물론 근거 없는 보도는 아니지만 사스와 관련한 지난 두달 동안의 토론토 시민들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 토론토 다운타운의 한 거리,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 김태엽
지난 4월 한달 동안 캐나다 토론토 현지 언론과 외신 언론들은 사스의 공포감에 몇배나 되는 미디어의 공포를 보여주었다. 언론은 WHO의 여행자제권고를 전후해 마스크를 쓴 CN타워 그림을 보여주며 토론토에 사스가 만연이라도 한 듯 소란을 피워댔다. 미디어가 증폭한 전염병의 공포와 두려움은 실로 무서운 대량살상 무기가 되어 토론토 시민의 생활에 타격을 주었다.

사스 사태가 초기이던 4월 초 토론토의 대표적 대중 교통 수단인 TTC의 운전 기사들이 감염을 우려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회사 측은 이를 거부했다. 거기에 더해 온타리오 지역의 각 카지노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고객들의 출입을 불안 및 위화감 조성의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기 대응에도 불구하고 4월 중순 사망자 숫자가 10명을 훌쩍 넘어서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4월 중순에는 기차편으로 출퇴근하던 한 간호사가 감염자로 확인돼 출퇴근 당시 근처 좌석을 이용했던 승객들을 찾기 위해 공중파 방송국들이 하루종일 승객찾기 방송을 내보내며 호들갑을 떨었고, 외신들은 의료계 종사자들과 중국계 학교의 마스크 착용 사진에 덧붙인 기사에서 토론토의 모든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양 보도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우로 한 가톨릭 신자가 병원을 찾아가 사스 증세를 호소했으나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고 귀가한 후 다시 감염 환자로 확인되고 같은 교회 신자 30여 명 역시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 토론토 보건 당국이 급하게 교회 신자 500여 명에 대해 격리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 보도와 함께 교회와 성당 등에서 장갑을 끼고 예배를 드리는 장면들이 연이어 기사화되고 사스 사태는 두려움의 먹구름으로 토론토를 뒤덮게 되었다.

매일매일 주요 뉴스는 오늘 몇명이 사망했는지, 몇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했는지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토론토 곳곳에 있는 중국 타운과 쇼핑몰들을 꺼리기 시작했다.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의 공연이 취소되고 많은 극장들이 평소의 관객 수에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기 시작했고 야구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은 사스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WHO의 여행자제권고지역 포함과 철회

그리고 4월 23일 WHO가 토론토를 여행자제권고 지역으로 발표한 후 한국 언론들은 잇따라 토론토 여행금지지역 선포, 여행금지령 발동 등 조금은 다른 해석이 가능한 단어들로 제목을 뽑기도 했다.

캐나다 당국은 WHO에 대해 "무책임한 과잉반응이며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박하고, 즉각적인 재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발표 후 며칠간 WHO측은 이를 거부했으며, 4월 27일이 되어서야 선별된 기준 아래 재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후 30일 토론토에 대한 여행자제령을 해제했다.

WHO 사무총장은 해제 이유로 ▲사스추정 환자 수의 감소 ▲집단감염 사례가 20일 이상 발생하지 않음 ▲토론토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덧붙인 말처럼 여행자제권고안이 철회된 것이지 토론토가 사스 감염 위험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WHO의 여행자제권고안 발표와 철회를 통해 토론토는 사스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급속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피해가 속속 집계되기는 했지만, 사태를 이쯤에서라도 진정시켜 천만다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4월 동안 미국 등에서 오는 봄 성수기 관광객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공연, 관광 시설의 타격과 잇따른 국제행사의 취소로 인한 숙박 업소들의 불안, 그리고 소비심리 위축은 캐나다 전체 GDP의 약 20%에 이르는 토론토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 사스를 막아 주는 특제 마스크(?). 사스 여파가 진정되면서 뒤늦게 마스크 판매를 시작한 상점들이 울상이다.
ⓒ 김태엽
사스 사태 진정 국면, 복구에 관심 쏠려

토론토는 사스로 입은 전반적인 피해를 복구하느라 분주한 상태이다. 토론토를 주도로 둔 온타리오 주 정부는 캐나다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며, 사스 피해 업소에 대한 대출도 결정된 상태이다. 주 정부 수상은 사스로 인한 일반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500만 달러를 지원하고 토론토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1천만 달러를 투입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침체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각 업체들의 복구 노력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WHO의 여행자제권고 철회 이후 주 정부는 9월까지 숙박세와 입장세 등 세금 면제 해택을 발표했으며 호텔과 극장 등은 입장료 할인 등의 방법으로 손님 끌기에 분주하다.

주 정부는 향후 2년간 약 4억 달러를 투자해 사스 사태 이전부터 조금씩 침체되던 관광 분야의 회생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거기에 더해 토론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사태 복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4월에만 5개의 굵직한 국제 행사들이 잇따라 취소되었던 것과 달리 미국출판협회(ALA)는 캐나다 출판협회와 함꼐 북미도서전시회를 예정대로 오는 6월 19일부터 1주일간 토론토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2만 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행사는 경제적인 수익 뿐 아니라 공식적인 국제행사를 토론토에서 개최함으로써 도시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 중국 타운에 나온 사람들, 마스크를 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 김태엽
사스, 전염보다 무서운 속도로 번지는 두려움

그렇다면 사스에 대한 두려움은 어떨까? 최근 캐나다의 한 여론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사스 감염을 우려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6%로 나타났다. 이는 4월초의 61%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어든 수치이다. 하지만 사스에 대한 우려는 비단 감염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다.

중국, 홍콩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에서 시작된 사스 여파는 토론토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에 대해 여지없이 번져갔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가장 넓은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타운의 경우 3월과 4월에 걸쳐 매출 감소의 통계를 내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는 감염의 우려로 아시아계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비아시아인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내에서도 만연했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지로 지난 4월 중국 타운 식당과 상점에는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던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쇼핑 몰 매장이 대부분 팬시 용품을 취급하는 토론토 북서쪽의 퍼시픽 몰의 상인들은 갑자기 발길이 끊긴 손님들과 사스를 원망하면서도 매장을 닫을 경우 사스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기 때문에 닫을 수 없는 심정을 TV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 토론토 보건국의 중국계 간호사가 사스 관련 설명회를 개최하는 모습
ⓒ 김태엽
이러한 중국 상권의 경제적 타격에 비해 한국 타운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나 남미 국가의 유학생 중 상당수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유학을 준비하던 학생들도 잇따라 취소하는 상황에서 여행자제권고로 인해 현저히 줄어들지 모른다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한국인 관광객과 유학생들의 숫자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이유로는 한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사스의 안전지대라고 보는 것과 함께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불감증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스로 인한 첫 사망자 발생 후 사스에 대한 두려움은 아시아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유색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나 무시로 나타나기도 했다. 상점에 들어선 중국인에게 인사도 없이 손으로 입을 가린다거나 지하철을 탄 한국 학생들에게 작은 소리로 '사스'라고 속삭이기도 하며 한 일본인 유학생의 곁을 지나던 학생들이 욕을 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문제점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다인종 국가이면서 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사회인 캐나다 토론토의 특성상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전염병의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아시아계만이 걸리는 병처럼 호도되는 면이나 토론토의 전반적인 상황을 다른 나라에 올바르게 알리지 못한 결과로 토론토 사회 내 인종간 갈등이 깊어진 점 등은 초기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 중국 타운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4월 말부터 중국 타운은 다시 분주해졌다.
ⓒ 김태엽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중국인들의 자구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중국 타운에서는 토론토 보건국의 간호사와 의사들이 사스 설명회를 개최하고 의심 환자 발생시 신속하게 후송하기 위해 자체적인 핫라인을 구성하기도 했다.

상점들은 손님이 있건 없건 정확한 시간에 문을 열고 닫았으며 사스 예방의 상징(?)인 마스크를 벗는 노력 또한 중국 타운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중국 타운에서 마스크를 쓴 중국인을 만나보기는 힘들다.

현재 토론토는 사스라는 전염병의 확산 방지, 그로 인한 예산의 과다 지출과 경제 침체에 대한 책임 문제에 더해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나갈 것인지까지 전반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5월에 들어서면서 낮 평균 기온이 20℃를 전후하면서 가족들은 공원으로 호수로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오고 있다. 사스라는 태풍에 휩싸였던 분위기는 거의 걷힌 듯 하지만 앞으로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 아시아계에 대한 은근한 차별을 풍자한 만화. 실지로 토론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Richana
마지막으로 토론토와 홍콩을 오가며 일하는 한 중국계 캐나다인이 한 신문에 기고한 글로 이곳의 분위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누구나 사스에 감염될 수 있다. 아시아인이 언제부터 토론토의 방문자가 되었는가? 토론토는 나의 집이다. 나는 토론토에서 태어나 자랐다. 모든 아시아인이 하노이와 홍콩, 중국, 싱가폴에서 막 도착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토론토에 가족과 집이 있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아시아인 스스로 그들의 상점과 식당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왜 우리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의 장사를 돕지 못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공포에 서로를 믿지 못해야 하는가? 운전을 하다가 차 사고로 죽을 수 있다고 해서 운전을 하지 않는가?
(중략)
이러한 잘못된 인식들이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 나는 내가 토론토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모든 캐나다인들은 아시아계의 얼굴에서 사스를 떠올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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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퇴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맨발로 땅을 딛고 걷는 날이 올까를 궁금해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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