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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방송연설에 이은 바그다드 폭격을 보며 저는 디엔비에푸 전투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아니 미국 스스로도-이라크전이 제2의 베트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을 겁니다. 전쟁개시 10일이 넘어 미영 연합군이 고전을 치르는 지금 그같은 생각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 보 구엔 지압
1951년 11월 미국의 대대적인 항공지원으로 일거에 북베트남을 괴멸시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디엔비에프로 진공했던 프랑스군은 1953년 굴욕적인 항복을 합니다. 세계전사에 큰 획을 그은 이 전투의 지도자가 보 구엔 지압입니다.(응우엔, 응우웬, 보구옌 등 여러 가지로 발음됩니다.)

호치민 루트라 불리웠던 오솔길을 통해서 자전거, 소, 말등에 탄약과 식량을 지고 날랐고 심지어는 병사들이 직접 포탄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만에 빠진 프링스군을 기만하고 병력의 우위를 확보한 후 전격적인 섬멸전으로 마침내 프랑스군을 격멸시킨 디엔비에프 전투는 기나긴 베트남 '인민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단기에 승리하겠다던 미국의 전략은 빗나가고 있습니다. 보급선은 길어지고 '정밀폭격'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급기야 진격을 늦추고 병력을 증원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반전여론에 우격다짐으로 버틸 뿐입니다. 그들은 모래폭풍에 잠시 발이 묶인 정도가 아니라 아랍민중의 바다에 빠진 것 같습니다.

KBS 일요스페셜에 나타난 보 구엔 지압

▲ 체게바라
베트남 항불항미 전쟁의 영웅 보 구엔 지압은 '인민전쟁'을 군사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 구엔 지압은 그 업적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부활한 체게바라나, 중남미 여성들의 애간장을 녹인다는 사파티스타의 지도자 마르코스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보 구엔 지압을 알게 된 것은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을 통해서였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베트남해방전선 전사의 입을 빌려 묘사된 명장 보 구엔 지압에 대해 저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90년에 <인민전쟁 -군사예술론-보 우옌 지압의 베트남 통일병법>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출판되었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사 보았습니다. 러셀 스테클러가 엮은 이 책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보 구엔 지압의 저술을 모은 것으로 1990년에 참한출판사에서 출간하였습니다. 당시 대단한 감동으로 탐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과문해서인지 아니면 선입견 때문인지 책을 읽을 당시에도 보 구엔 지압은 당연히 고인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KBS <일요스페셜> '수교 10주년 기획 변혁의 땅 베트남, 통일열차를 타다' (방송 2002.12.15)를 보며 저는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50년대 대불전쟁의 명장이 버젓이 살아서, 그것도 현역대장으로 한국 방송에 등장한 것입니다. 91세의 노장군은 "우리에게는 자유와 독립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었다", "목숨이 있는 한 조국과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호치민이라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와, 보 구 엔 지압이라는 걸출한 명장을 배출한 베트남 민중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체게바라, 마르코스, 보 구엔 지압

▲ 마르코스
체게바라와 마르코스 그리고 보 구엔 지압의 삶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피압박 민중의 고통을 온몸으로 함께 하고 강대한 제국주의에 맞서 확고한 원칙과 방향을 가지되 유연한 전술로 마침내 승리를 향하여 조금씩 나아가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참 당당합니다.

체게바라는 불행한 죽음을 맞았지만 영원한 삶을 얻었습니다. 멕시코농민 반군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검은 스키복면과 파이프담배, 그리고 다정다감한 문학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90대의 노구에도 현역병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보 구엔 지압이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민중을 조직하여 항쟁하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들은 자본주의적인 서열기준으로 보면 모두 2인자라는 공통점도 있군요.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로서, 또는 지도자와 참모로써 그들은 변치않는 신뢰와 의리를 지킨 것이지요.

부시와 럼스펠드는 어떨까요? '이라크의 자유'를 위한 확보한 신념과 지도자와 참모로서의 굳건한 신뢰가 있기나 한 걸까요?

미군수뇌부에 <인민전쟁>을 권합니다

'충격과 공포' 작전에 대하여 한 외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손자병법"을 원용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수억불의 전비를 며칠만에 쏟아 붓고 민간시설과 민간인을 도륙한 작전 같지 않은 작전을 손자병법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손자의 세계관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을 때는 무슨 수를 쓰던 이겨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망과 기습, 기격 같은 전술이 대종을 이룹니다. 오히려 손자병법에 능한 쪽은 이라크인 것 같습니다. 이라크는 여기에 더하여 '인민전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비워 적을 끌어들이고 약한 고리를 끊어 적을 고립, 섬멸하는 것이 인민전쟁입니다.

자살폭탄 공격도 당연시하는 이라크 민중과 물량과 기계에 의존하는 침략군대의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부시와 럼스펠드를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지금이라도 선배들이 치를 떨었던 베트남의 명장 보 구엔 지압의 저서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저질렀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손자병법에도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라 했습니다.(혹자는 百戰不敗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손자병법을 우롱하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적을 알면 적어도 지지는 않는(不殆) 법입니다.

혹여 '독재자 후세인'을 타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아랍의 장구한 역사와 종교, 석유를 둘러싼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잇속을 챙기기 전에 자멸할 수밖에 없음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더 나가다가는 이라크 인민전쟁이 아닌 아랍민중항쟁의 모래무덤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명분없는 부도덕한 전쟁에 뛰어들려는 한국군 파병안을 찬성하는 국회의원들께도 이 책을 권합니다. (체게바라 평전과 마르코스의 저작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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