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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3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이 갈수록 선정성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외모가 뛰어나지 못한 연예인들에 대해 비하와 놀림으로 일관하는 인권침해, 자신들에게 무지막지한 벌칙을 가하며 억지 웃음을 조장하는 가학성, 특정 신체부위를 소재로 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낯뜨거움, 스타시스템에 의존한 특정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과 스타 만들기, 이들 사이에 오가는 신변잡기적인 사담은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고정화된 모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새롭고 참신한 형식을 만들려는 제작진의 노력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베끼기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KBS2TV의 <폭소클럽>이 참신한 형식과 소재, 그리고 신선한 인물과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많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락프로가 존재하는 이유, 바로 '유쾌하고 기분좋은 웃음과 즐거움'을 <폭소클럽>이 던져 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른바 '만능엔터테이너' 시대라고 이야기되며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혹은 연기자인지 연예인들의 정체가 불분명한 현실에서 '개그'는 개그프로에서만 볼 수 있는 장르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토크쇼 등 오락프로그램에 등장해 온몸 망가지는 '개인기'를 선보이고 현란한 '입담'을 펼쳐 제작진과 시청자의 눈에 들어 온 연예인은 자신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곧바로 오락프로의 진행자나 고정패널로서 자리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코미디'프로의 정통성을 찾는 것은 무의미해져버렸고 방송사들의 간판 코미디프로들은 외곽시간대로 밀려나거나 방송사의 투자 없이 출연자들만 고군분투하는 안쓰러움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을 처음으로 돌파해 낸 것이 바로 KBS의 <개그콘서트>였고 <개그콘서트>가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여 안착한 지금, 다시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폭소클럽>이다.

<폭소클럽>은 이제 막 '스탠딩코미디'라는 장르로 코미디프로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말 그대로 '스탠딩', 출연자 한 명이 무대에 서서 정적으로 코미디를 한다. 이러한 <폭소클럽>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한 꼭지당 한 명, 많아야 두 명이 등장해 자신만의 입담과 제스추어로 사람을 웃기는 방식이 낯설었고, 어두 침침한 조명아래 약간은 숙연하기도 한 조용한 분위기가 즉각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KBS의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게 보였음에도 '모험'을 하는 듯한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요란법석하게 시청자들의 혼을 빼놓는 오락프로에 시청자들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우를 떨쳐내고 <폭소클럽>은 인기를 얻고 있다. 각 코너들은 준비되고 연구된 결과물이기에 출연자들 중에는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는 '팬까페'를 가진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폭소클럽> 인기의 비결은 일단 기존 오락프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식상함을 들 수 있겠다. 제아무리 시청률이 많이 나온다하더라도 시청자들은 잡담이나 늘어놓고 개인사나 헤집는 지금의 오락프로들에 지겨워하고 있던 것이다. 바로 새로운 포맷 '스탠딩코미디'가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한 명의 코미디언이 관객(또는 시청자)과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은 자기들끼리 말장난만 주고받는 여타의 오락프로에서 소외되어 있던 시청자에게 나름의 역할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물론 형식이 신선하다고 인기를 높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코미디면 코미디답게 재밌어야 한다. <폭소클럽>은 재밌다. 특히 코미디에 있어 비전문인 몇몇, 예를 들어 생물강사 '장하나', 레크레이션 MC '김제동'의 경우, 근래 개그맨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새로운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신인(무명의 설움을 겪은 신인 아닌 신인도 있지만)들이 <폭소클럽>의 인기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것이다.

▲ <폭소클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이제동과 '사물개그'의 서남용
ⓒ KBS
'최형만의 공짜강의'는 형식으로 보자면 개그맨 최형만이 도올 김용옥의 성대모사와 제스추어를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주 새로운 주제의 강의를 준비하는 최형만의 노력으로 인해 그저 그럴 수 있는 흔한 포맷이 생명을 얻었다.

매 강의마다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재밌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풍자가 녹아있다. 2월 28일 방송된 내용에서는 '서울대 지상주의'와 '사교육'에 대한 풍자가 돋보였다. 또한 매회 꼭지가 끝날 때 항상 교훈적이면서도 전혀 딱딱하지 않은 멘트로 마무리를 한다. 최형만은 이러한 풍자를 혼자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의 호흡 속에서 주고받는다.

'서남용의 사물흉내개그'는 시청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꼭지다. 어떤 시청자는 '어렵다', '저게 무슨 개그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시청자는 '정말 새로운 개그다', '서남용의 노력이 돋보인다'는 반응을 보인다. 공통적인 내용은 새로운 개그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기자의 연구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개그라 할 수 있다.

서남용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하찮은 사물들의 모습을 자신의 신체로 흉내낸다. "형님, 누나 이것은 무엇일까요?"라며 흉내내는데 처음 볼 때면 어리숙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흐느적거리는 신체적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대상이 되는 사물의 특징을 딱 꼬집어 흉내내는 것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흉내는 그저 흉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과학강사 장하나, 우리몸의 신비'는 학원강사인 장하나씨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꼭지다. 색다르고 차별화된 강의로 학원가에서 '이색강사'로 명성을 얻었던 장하나씨는 코미디프로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강의를 한다.

먼저 장하나씨만의 과장된 포즈와 말투는 시청자로 하여금 '저런 강사도 있구나'라는 신기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강의의 내용이 '성'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것임에도 전혀 선정적이거나 야한 느낌을 주지 않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코믹하게 강의를 진행하면서도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과학상식도 함께 전달함으로써 지식습득의 장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기억력이 좋은 이유는 여성의 기억력 세포가 남성보다 10% 더 많다'거나 '1억마리 정도되는 정자 중에 우리들이 태어난 것은 로또복권 당첨보다 더 기적적인 일이다'는 등의 내용은 재미와 정보를 함께 주는 것이다.

'김제동의 대중 앞에 서는 법'은 <폭소클럽>의 여러 꼭지 중 시청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코너다. 가장 큰 장점은 실제 대중들 앞에서 다져진 김제동씨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장감 있는 말솜씨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말투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고 재치 있고 순발력 있는 즉흥대사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눈길을 끈다.

거기다 실제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 '사람들 앞에 설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해 살아 있는 강연을 한다.

이 때문에 관객(또는 시청자)이 동참하며 개그의 또 다른 주체가 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레크레이션 능력을 얻게 된다. 나아가 김제동씨가 풀어내는 재담 속에는 풍자까지 녹아 있어 보는 사람들은 절로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 독특한 몸짓으로 눈길끄는 '과학강사' 장하나와 마술에 유머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는 이은결
ⓒ KBS
이밖에 '이은결의 매직투나잇'은 전문 마술사의 마술에 유머를 담아 전혀 색다른 모습의 코너를 선보이고 있고, '정용주의 사춘기'는 누구나 학창시절에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내며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또한 과거 TV를 주름잡았지만 이제는 화면에서 보기 힘든 고참 코미디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것도 <폭소클럽>만의 미덕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정린의 성대모사 특강'은 매주 별 다를 것 없는 성대모사가 반복되고 있고, '김지선의 재밌는 이야기'라든지 고참 코미디언들의 재담은 별 의미 없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배동성의 부부리포트'는 관객의 대부분이 연인과 부부들이고 방송시간이 밤 12시가 넘어 주시청층이 성인임을 감안하더라도 성을 소재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우려할 만하다. '박준형의 게스트클럽'은 <폭소클럽>이 '스타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 또 다른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보통 초대되는 게스트들이 이른바 '연예계 스타'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보인다.

박준형이 스타게스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역시나, 시청자단체들이 비판해 마지않는 사담 위주라 더더욱 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비록 스타들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신변잡기 위주의 코너 구성이 아니라 준비된 연기로서 새로운 '따다다단 개그'를 선보이는 것은 변화를 재빠르게 수용하는 긍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폭소클럽>은 몇 꼭지들에서 문제가 발견되긴 하지만 대다수 꼭지와 프로그램 전체가 지향하는 바가 분명 새롭고 이전의 오락프로와는 질적으로 다른 유쾌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던져 준다. 이는 KBS가 자사의 코미디프로에 투자하고 출연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하기에 타 방송사, 타 코미디프로그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기계에서 찍어 낸 것처럼 비슷비슷한 내용과 형식, 똑같은 연예인들이 방송사의 벽을 허물고 판치는 지금의 대다수 오락프로그램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선다.

별 다른 수고 없이 판에 박힌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면 분명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말장난'과 '개인기'로 무장된 '스타연예인'의 인기에 영합해 '시청률 올리기' 선정성 경쟁을 벌이지 말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노력형 연예인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제작진과 방송사들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보여준다.

<폭소클럽>의 이 같은 모습 때문에 민언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성유보)서는 '시청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연예오락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민언련은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고 시청자들이 함께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발굴해 모범을 삼고자" 80여개의 연예오락프로그램을 검토하고 그 중, <폭소클럽>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보고서를 통해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아이디어 개발을 통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유쾌한 웃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면 연예오락프로그램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폭소클럽>의 성공이 다른 오락프로들의 개혁으로 이어지고 "연예오락프로그램의 변화를 통해 시청자들이 가슴 시원한 웃음을 터트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는 다른 모든 시청자들의 요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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