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대화 영화제의 주제는 "폴리틱 온 더 필름(Politics on the fil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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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화 영화제'를 무척 좋아한다. '대화 영화제'는 이른바 '작은 영화제'가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점을 잘 찾아 그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다른 '작은 영화제'들이 배워야 할 영화제다.

작년 '제 1회 대화 영화제'는 '미디어 테러리즘'이라는 제목으로, 2회째를 맞는 올해는 '폴리틱 온 더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곧 우리 사회 내부에서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혹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본질과 성향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인권이나 여성, 또는 청소년 영화제처럼 하나의 컨셉을 고르거나, 애니메이션, 다큐멘타리 영화제 등 하나의 장르를 택해서 보여주는 '작은 영화제'들은 많지만, '미디어'라는 독특한 소재를 골라 영화제를 열었다는 점에서 '대화 영화제'는 돋보이는 기획력을 가진 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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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대화 영화제'의 강점은, 그 해 컨셉에 맞는 영화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알찬 포럼을 연다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제들은 영화제의 시작을 개막식으로 장식하는데, '대화 영화제'는 작년과 올해 두 번 다 '개막 포럼'으로 그 문을 열었다. 이 '개막 포럼'에서는 영화제에 온 관객들을 대상으로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엮어나갈 줄 아는 언론학자들과 당대 논객(작년에는 김규항씨가, 올해는 진중권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제도권 안의 대학 교수와 제도권 바깥에 있는 논객의 토론을 지켜본다는 면 하나에서만 보더라도 이 토론은 매우 흥미 있다.

'대화 영화제'가 보여주는 분명한 경향 중 또 하나는 '계몽성'이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대화문화아카데미)'라는, 수십년 전부터 나름대로 우리나라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던 단체에서 주최한 영화제답게, 이 영화제는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뒤집어보고 깨어있으라는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토론을 통해 던져준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계몽적 성격이, 영화제들이 해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작은 영화제'는 궁극적으로 영화를 위한 기존 매체인 일반 상영관이나 TV 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보여주는 대안적 홍보, 배급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기본적으로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축제에 와서 한 판 같이 놀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익혀간다는 것, 이는 '작은 영화제'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이 너무 딱딱해져 버렸다. 아마도 '대화 영화제'에 참석하면서 나도 모르게 '정치적'이 되어 버린 탓인 것 같다. 이제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개막 포럼 '정치 권력과 미디어 권력'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포럼에 참석한 토론자들. 왼쪽부터 정대화 씨, 김창룡 씨, 사회자 원용진 씨, 임용호 씨와 진중권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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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신방과 교수인 원용진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 포럼에는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인 김창룡씨와 부산대 신방과 교수인 임용호씨가 발제를 맡아 각각 '정치 권력과 미디어', '미디어의 권력화란 무엇인가?'라는 발표를 했다. 이중 김창룡씨는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고강도 발언'으로 열띤 분위기를 만들어냈는데 AP통신 기자로 일했던 과거의 경험까지 곁들인 그의 발표는 매우 생동감 있고 흥미 있었다.

그가 한 발표의 두 가지 요점은 언론 문건과 언론 사주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예로 들어 보여준, 98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2002년까지 밝혀진 언론 문건들은 정치 권력, 특히 집권 정치 세력이 언론과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여기서 언론 문건이란,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웠다거나, 특정 매체를 탄압할 계획을 세웠다는 폭로성 기사 등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의 대 언론 정책에 관한 문건이다.

언론 사주의 부패함과, 그 부패함을 철저하게 수사하지 못해온 우리나라 검찰 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김창룡씨 발표의 두번째 요점이었다. 그는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의 탈세와 장재국 한국일보 회장의 외환관리법 위반을 예로 들면서, 족벌식 경영이 낳는 언론 사주의 윤리 부재와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고 나섰다. 또한 언론 사주 구속을 장관 구속보다 더 어려워하는 검찰의 태도가 우리나라 언론의 부패함을 존속시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들 중에는 '신문 그 이상의 신문'을 꿈꾸는 신문이 존재하며, 그들은 자기 신문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고까지 믿는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한 언론사 사주는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었음을 자처하며, 대통령 당선자를 집에 초대하여 축하연까지 열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미디어 권력이 정치 권력을 창출해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그가 지적한 것은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의 부재였다. 외국 언론들의 특징은 일단 소재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이후의 책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묻는다는 것이다. "옴부즈맨 제도,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옴부즈맨 제도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기사로 인한 피해 소송까지 대신해 줘야 하는 것이 옴부즈맨 제도지요"라고 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는요, 언론 소송하지 마십시오!"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말을 마쳤다.

지정 토론에 나선 진중권씨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언론 구조는, 신문들이 자신들의 컨텐츠, 곧 합리적인 논조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경제적 자본으로 발행 부수 확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구의 유력 일간지들, 곧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짜이퉁(FAZ)'이나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옵서버(Observer)' 같은 경우에도 40만부를 넘기 힘든 상황인데, 우리나라 일간지의 200만부라는 발행 부수는, 합리적 논조만으로 거두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열매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가능한 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야 할 신문들이 독자들 대신 '친절하게도' 판단까지 내려주는 '당파적 저널리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에게 기존의 언론말고 다른 대안적 언론에 대한 경험이 없는 탓에, 원래 신문은 이런 거야, 라고 거의 체념하다시피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역사적 경험 부재에 있다고 했다.

진중권씨에 따르면, 보던 신문을 절독하는 일은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더욱 강조되어야 할 일은 미디어를 보는 올바른 눈을 키우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자들 또한 많은 경우, 안티조선 운동을 언론 운동이라고 보기보다는 정치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적 언론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문제아일 뿐이지 사탄이 아닙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그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 촘촘한 언론의 '매트릭스'를 꿰뚫어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를 맡았던 원용진씨의 포럼 맺음말은 그래도 한편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미디어 권력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미디어 권력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대선을 맞아 미디어 권력이 마구 그 힘을 휘두르는 요즘, 마마, 호환보다 더 무서운 그 권력의 힘을 꿰뚫어보고 그들의 왜곡을 인구에 회자시키기 위해 '대화 영화제'에 가서 비판적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일, 그 일은 12월 대선 전에 해야 할 필수적 요건이라고 생각된다.
























대화영화제에서 꼭 봐야할 영화 세 편












▲ 독일 나치즘을 이끈 언론권력을 다룬 영화 <잊혀진 지도자>

모두 열 편의 해외 장편 영화와 아홉 편의 국내외 단편 영화로 구성된 '대화 영화제'에서 꼭 보아야 할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프로그래머 김정아씨가 "대선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솔직하게 토로한 것처럼 이번 영화제에는 대선 관련 영화들이 많다.

1. 4년 더 (Four more years) 1972년 TVTV 제작. 61분. 다큐멘터리. 미국.

72년 실시된 미국 공화당 전당 대회를 취재한 보도 작품으로, 당시 '대안매체'로 떠올랐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제작사인 TVTV는 지역 케이블 방송에 당시 전당 대회를 방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게릴라 영상 집단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제도권 언론들이 담지 못한 사회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 있는데, 그런 탓에 공화당 전당 대회 주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데모대의 모습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잊혀진 지도자 (Der vergessene Fuehrer) 1982년 제작. 감독 피터 헬러. 156분. 다큐멘터리.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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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세 생일을 맞았다는 레니 리펜슈탈 감독 못지 않게 히틀러 독재 정권의 산파 노릇을 했던 독일의 신문왕 알프레드 후겐베르크(Alfred Hugenberg)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그는 독일 국민당 당수로서 언론과 영화에서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무기 제조사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의 힘을 빌어 독일 국민당을 독일 최대의 우익 정당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히틀러의 집권을 돕는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언론 권력이 어떻게 정치 권력과 손잡고 상호 발전을 도모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3. 재갈(Die Grille mit dem Maulkorb) 1996년 제작. 감독 피터 헬러, 실비에 바눌수. 41분. 다큐멘터리. 독일.

'재갈 물린 귀뚜라미'라는 원제를 가진 이 영화는 아프리카 말리의 미디어와 정치 발달사를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옷(Griot)이라는 예언자들이 소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 말리에서는 라디오가 그 역할을 한다. 60년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말리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사회주의 사상 보급을 위해 주로 라디오를 활용했고 68년 군사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92년 말리 최초로 자유 선거에 의한 민간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다양한 채널의 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데, 이 작품은 미디어의 민주화가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필수적 요소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11월 1일(금)부터 11월 6일(수)까지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열리는 '대화 영화제' 관련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신 분은 http://www.daemuna.or.kr로 가면 된다. / 강윤주 기자








2002-11-02 15:1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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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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