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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지하철 민심청취'에서 일어난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지하철을 탄 이 총재는 승객들과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우자동차 여성 해고노동자로부터 면박을 받아야 했다.

“승용차 타고 다니세요, 불편하게 하지 말고”,“제1당이라면서 도대체 뭘 했나. 야당 되어보니 찬밥신세 느낄 텐데 노동자들은 더한 찬밥대우를 받고 있다”, “야당도 좀 잘해보세요. 저도 지지하게.” 그 여성 해고노동자는 정치권을 향한 불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당황한 이 총재는 그래도 피하지 않고 대화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민심청취라고 자위하고 있지만, 식은 땀을 닦아내리는 분위기이다.

뉴스화면에 보도된 장면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시원하게 말 잘했다는 반응이다. 야당 총재에 대한 예의같은 것을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도 지하철에서 만나면 더한 소리를 해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마침 하루 전날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있었다. 몇몇 언론들에서는 과거보다 심층적인 문답이 오고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전에 연출되고 점잖게 다듬어진 질문과 답변만이 진행되고 있었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잘했다는 소리만 하냐, 대통령이 의원임대나 하고 정치를 이렇게해도 되는거냐, 평소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바닥민심'은 이날 들을 수 없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민심을 듣는 모습을 보이려는 대통령과 야당총재의 시도는 그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일단 반길 일이다. 아무리 정치적 이벤트로 기획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안하는 것 보다 낫다는 평가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기왕에 하는 민심읽기라면 민심을 정면으로 껴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나는 우선 대통령이 하는 '국민과의 대화'가 최소한의 연출속에서 국민들의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표출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제 국민과의 대화를 보니 대통령은 남의 얘기는 하나도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더라"는 지하철속 해고노동자의 지적이 적지않은 공감을 얻는 이유를 행사관련자들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회창 총재에게도 바란다. 민심을 듣는데 무슨 수행원과 기자들이 그리 많이 필요한가. 옛 시절도 아니고 야당총재가 물리적 폭력사태에 처할 일이 얼마나 있다고 수행원들을 그렇게 여럿 대동해야 하겠는가. 지하철속에서 사진이나 찍으며 덕담이나 주고받는 품위있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런 행사는 안하는 것이 낫다.

나는 대통령과 야당 총재가 민심을 듣는 현장에서 지하철속 사건과 같은 '봉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얼마나 살기 힘들고, 우리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으면 저런 소리를 할까 하는 생각을 두 정치지도자가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채널선택권을 빼앗고, 지하철 자리까지 빼앗으며 하는 민심청취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살아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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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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