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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자들처럼 자립시기가 늦은 동물이 지구상에 또 존재할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는 평균연령이 28.5세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4년과 군복무로 보내는 2년, 그리고 취업준비를 위한 시간이 더해진 것이죠.

 

요즘 대학가를 보면, 과거와 다르게 복학생의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1~2년 정도의 휴학은 기본이기 때문이죠. 얼마나 빨리 취직하느냐가 아닌, 취직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대학졸업장이 취직을 보장해주는 때는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예전 같으면 '왜 아직 졸업하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할 만한 전설의 학번들이 바글바글합니다.

 

그들이 오늘(3월 25일) 뭉쳤습니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의 OO학과 복학생들의 모임, '복학생협회'가 08년도 1학기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오후 7시, 약속장소로 몇몇 복학생 무리들이 어색하게 모이고 있습니다.

남자들끼리 참 어색합니다. 이제 막 제대한 복학생 새내기도 있고, 전설의 학번 아저씨들도 있고, 원래 최고 학번이어야 할 03학번들이 오히려 수줍어합니다.   

 

배고프고 돈 없는 학생들에겐 대학가 삼겹살집만큼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관계로 어색하게 먹기만 합니다.(사실 학과에 남학생들이 많이 없는 관계로 복학생들 간에 모임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같은 학번끼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과방청소일정, 차기회장선출, 모꼬지준비 등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과방 청소 같은 경우 우리 복학생들이 솔선수범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과거 복학생이라고 하면, 군대의 말년병장과 같은 존재였죠. 모든 것이 열외. 하지만 이런 군대문화는 대학가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는 아직도 선배가 후배를 때리거나 기합을 준다고 하는데. 참 못난 사람들입니다.

 

 

 4학번, 그러니깐 지금 3학년들입니다. 예전 같으면 과에서 어느 정도의 연륜을 풍겼겠지만 아직 선배들이 위로 수두룩합니다. 형들이 볼 때는 풋풋한 새내기들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건 엄청난 우정을 다지자는 것이 아니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자는 거지. 정보를 교환해야 돼."

 

그렇습니다. 복학생은 대학생과 사회인의 중간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절대적 공통분모는 취업과 진로입니다. 최고학번 형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냉혹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비해 선·후배간의 유대관계가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취업난이라는 벽에 부딪친 우리에게 대학의 낭만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을 서글프게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대학문화가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으로 바뀌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네 나이였으면, 내가 네 학년이었으면…."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 항상 앞에 갖다 붙이는 말입니다. 술이 얼큰해진 형들의 말투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후배 입장에서는 '자기들이나 잘할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형들이 후배들을 진심으로 아끼기 때문입니다. 형들의 조언은 과거에 대한 넋두리도 아닙니다. 형들은 이 말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못난 선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이런 게 바로 '선배의 마음' 아닐까요?

 

복학생끼리 술 먹은 게 무슨 기사거리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임에서 새로운 대학문화를 보았습니다. 서로에게 도전이 되는 선후배관계, 그래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대학문화,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지성인들이 만든 '취업난 돌파 트랙' 입니다. 복학생, 군에 갔다오고도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그들이 지금 대학문화를 바꾸고 있습니다.


태그:#복학생, #취업난, #대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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