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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2시 강남 교보타워로 <달인>(여름언덕)의 역자 강유원을 만나러 갔다. 강유원이란 이름만보고 강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할 때만해도 <달인>의 역자가 그인 줄 몰랐다.

<책과 세계> 겉그림.
 <책과 세계> 겉그림.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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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지하고 있던 강유원은 자기계발서 따위의 책을 번역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 제목과는 다른 뭔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어째든 시간이 촉박하여 <달인> 구입하지 못한 채, 전에 읽었던 그의 저서 <책과 세계>를 들고 강연장으로 향했다.

30여명이 모여 있는 강연장에 유독 눈에 띄는 사내가 있었다. 검정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가 강유원인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책 속에서 지적 갈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던, 마음속으로 기대했던 그이가 아니었다. 곱상한 외모는 아닐지라도 뭔가 지적인 면이 묻어 나야하는데, 그에게선 야성적인 면만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강의의 서두를 두 가지로 시작하였다. 하나는 <달인>을 번역한 계기고, 둘은 달인의 주제인 연속적인 훈련을 통한 숙련을 6월 항쟁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자는 것이었다. <달인>을 번역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자기계발서로 생각해 자신의 이미지를 훼상이 될까 싶어, 거절했다고 한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 내용이 그동안 자신이 공부해온 방법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단순히 사회적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달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번역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예로든 연습과 반복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일반적인 지식 습득이나 기술 습득과는 차원이 달랐다. 먼저 그는 책을 크게 네 가지 등급으로 분류해서 본다고 하였다. 세상의 본질적인 진리를 다룬 고전을 A급으로 보고, 이런 고전을 연구한 논문을 B급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다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글을 C급의 책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 정보를 묶은 책은 D급에 해당한다. 진리가 담겨있는 고전은 읽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런 어려운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복과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숙련을 설명하기 위해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연관하여 ‘프랑스 혁명’과 ‘6월 항쟁’을 예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 사고할 수 없다. 아이는 아이의 경험영역에서 사고하듯, 어른들도 자신의 경험영역에서 사고한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현실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현실공간을 넓힐 수 없다. 경험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현실공간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그 예로 칸트의 말을 빌렸다.

“프랑스혁명을 잦은 경험을 통해 일상화해야 한다.”

<몸으로 하는 공부> 겉그림.
 <몸으로 하는 공부> 겉그림.
ⓒ 여름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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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처럼 엄청난 사건을 일상화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다소 낯선 이야기로 들리지만, 만약 프랑스혁명이 단순한 반란으로 끝났다면, 시민의 권리라는 것을 세계인이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미국의 독립으로 반복되었고, 러시아에서는 ‘10월’혁명으로 반복되었다. 이처럼 경험공간의 확대와 반복적인 경험이 현실 속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으며, 그에 따라 기대치가 넓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프랑스 혁명과 비견하여 우리나라의 '6월 항쟁'을 끌어냈다.

“그렇다면 ‘6월 항쟁’ 20년을 맞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속에 ‘6월 항쟁’의 정신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 “6월 항쟁의 주역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은 우리 사회에 안이함으로 반복적인 경험을 단절시키고 있으며, 경제 논리에 물들어 스스로 퇴보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을 요구한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경험의 반복과 숙련은 단순이 지식이나 기능에만 있지 않다. 역사적, 사회적인 경험과 반복에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런 경험과 숙련은 우리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여주게 된다. 이런 사고의 경험은 고전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을 수 있으며, 대부분 그 고전에서 파생되는 것이므로 고전 읽기에 단련해야 한다고 반복하여 주장하였다.

뒤이어, 자신이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홈피를 관리하는 이유도 일반인들에게 고전 읽기를 독려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험과 단련 과정에는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의 스승과의 관계를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달인이나 숙달이라는 단어가 지식이나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인 경험도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깊었다. 오래 전 <책과 세계>(살림)를 통해 고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했지만, 이를 숙달시키지 못했다. 오늘 강의는 이런 필자를 책망하듯 <달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고 있었다.

'사자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은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 <책과 세계> 4쪽 

덧붙이는 글 |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예스 24,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달인 -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조지 레너드 지음, 강유원 옮김, 여름언덕(2007)


태그:#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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