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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평생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곳도 있지 않을까 싶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지역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여행으로든 그 외의 일로든 여러 번 가게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거리상의 이유이거나 그 지역을 잘 알지 못해서 한 번도 발길이 닿지 않는 곳도 의외로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미지의 세계, 장흥

사실 장흥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어디쯤에 있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곳.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남도 장흥에서 한 달 여행하기'에 선정되어,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7일까지 장흥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장흥'이란 지명을 처음 들어보신 분들을 위해 일단 위치부터 쉽게 말씀드리자면, 녹차밭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지역이다.

장흥에서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흘러간다. 장흥 읍내를 가로지르는 탐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억불산 꼭대기 즈음에 걸려 있는 아련한 운무 역시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쉽게 만날 수 있는 도로 양쪽의 짙푸른 가로수들이나 하늘 높이 빽빽한 편백나무 숲들이 만들어 내는 푸른 풍경을 좆고 있다 보면 째깍거리던 시계는 저절로 천천히 돌아간다.
 
장흥 읍내를 가로지르는 탐진강
 장흥 읍내를 가로지르는 탐진강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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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어느 마을에서 바라본 초록빛 풍경
 장흥 어느 마을에서 바라본 초록빛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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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만약 이곳으로 올 일이 있다면 잔뜩 쌓인 일거리나 머리 아픈 고민 같은 건 잠시 내려두고 오시길.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머리 아픈 상황은 조금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런 상황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조금 바뀌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몸도 마음도 살찌우는 한 끼

해서, 장흥에 갔을 때 뭐부터 보러 가면 좋으냐고 혹 물으신다면, 정남진 전망대, 소등섬, 천관산 등등 갈 곳은 많다. 하지만 일단은 잠시 내려두시길 조심스레 권해본다.

뭔가를 보러 가는 것보다 먹는 걸 먼저 하는 건 어떨까 싶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 대신 몸도 마음도 살찌우는, 한 끼 한 끼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음식으로 유명한 전라도이지 않은가.

장흥은 작은 지역이지만 갖가지 먹거리로 풍성하다. 바다, 강, 산, 들 등 모든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덕분이다. 해산물, 농산물, 축산물 등이 풍부한 이곳에서 탄생한 음식은 '삼합'이다. 삼합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홍어란 공식이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장흥에서는 '장흥 삼합'을 먹을 수 있다. 한우와 푸른 숲에서 키운 표고버섯, 바다에서 난 키조개란 생각지도 못한 이 세 가지 조합은, 보통 불판 위에 조금씩 올려 바로바로 구워 먹는데 단연코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신선한 재료 조달이 가능한 산지인 덕분에 그 맛이 더욱 뛰어나다.
  
장흥삼합 중 하나, 표고버섯
 장흥삼합 중 하나, 표고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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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삼합 중 하나, 키조개
 장흥삼합 중 하나, 키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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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된장 물회, 키조개 요리, 하모 샤부샤부, 바지락회 무침 등 이곳의 별미는 장흥삼합뿐만 아니다. 그러니 미식여행은 이곳에서 첫 번째로 해봐야 할 여행코스이다.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난 제철 재료들로 직접 요리를 해 먹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에 가면 싱싱하고 부드러운 표고버섯을 비롯해 이곳에서 자란 각종 채소나 과일, 키조개, 김 등 저렴하면서도 신선한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장 구경을 하면서 하나, 둘 사온 재료들을 숙소로 가지고 온다.

거창한 요리도 필요 없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신선한 재료란 요건을 이미 갖췄으니, 깨끗하게 씻어 소금만 톡톡 뿌려 요리해도 맛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요리를 꼭꼭 씹어 천천히 맛보면 어떨까. 시간에 쫓겨 대충 때우는 음식과는 당연히 맛이 다를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만든 음식들을 몇 끼 먹다 보면 살이 조금 오를지도 모른다. 몸도 그럴 수 있지만 마음이 더더욱 말이다.

요즘 MZ세대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라고 한다. 슬기로운 자세라 생각하며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하나뿐인 삶이지 않나. 정신없이 바쁜 삶이기 보단, 챙길 건 챙기는 삶이어야 되지 않나 싶다.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에서의 산책

마음을 더욱 살찌우려면 산책을 하는 것도 좋겠다. 녹색 풍경이나 식물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명 '풀멍'이 새로운 힐링법이라던가. 전체가 하나의 드넓은 숲 같은 장흥은 어디에서든 풀멍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라 어딜 가든 초록빛 녹음과 마주할 수 있다. 차를 달리다 보면 보게 되는, 길가의 그냥 흔한 가로수들만 해도 그 크기와 짙푸름이 남다르다.

특히나 장흥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 들어서면 확연히 공기가 달라진다.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진한 편백나무 향기가 내내 코끝에 은은히 맴돈다. 어느새 마음은 차분해지고, 나무가 주는 피톤치드 덕분인지는 몰라도 왠지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숲 전체가 향기 테라피를 위한 하나의 커다란 공간 같다.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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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 가운데 아름다운 수국
 편백숲 가운데 아름다운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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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하게 물안개가 내려앉은 고요한 바다

이곳에서는 푸른 숲뿐만 아니라 드넓은 바다와도 마주할 수 있다. 수문해수욕장을 천천히 걸으며 바다 산책을 즐겨도 좋겠고, 쭉 뻗은 정남진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해도 좋겠다.
 
수문해수욕장 풍경
 수문해수욕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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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엇보다도 좋았던 곳은 선학동 마을에 있는 어느 한적한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을 때다. 선학동 마을은 장흥이 고향인 고(故) 이청준 작가의 작품인 '선학동 나그네'의 작품 배경이 된 마을이다.

득량만 푸른 바다와 논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물론 봄도 가을도 아닌 여름에 이곳에 간 터라 유채꽃도 메밀꽃도 보지 못했지만, 내내 비가 내렸지만, 덕분에 자욱하게 물안개가 내려앉은 아련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비 오는 날의 선학동 마을, 어느 바닷가
 비 오는 날의 선학동 마을, 어느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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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내려앉은 바다
 물안개 내려앉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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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소설을 읽으며 존경했던 이청준 작가가 살던 곳에 왔단 생각에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소리만 들릴 뿐, 잔잔한 바다는 다른 세상인 듯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이처럼 장흥은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롭다. 산도 숲도 바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가만히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한여름을 즐길 수 있는, 정남진 장흥 물축제

단, 그런 장흥이지만 180도 모습을 바꾸는 때가 일 년 중 딱 한 번 있다. 다가오는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바로 그것. 오는 7월 29일 토요일부터 8월 6일 일요일까지 열리는 정남진 장흥 물축제는 여름 대표 축제 중 하나로 이때만큼은 장흥이 그야말로 흥으로 들썩인다.

아이들만 물장난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곧 남녀노소,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하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한바탕 즐거운 판이 마련될 테니, 장흥의 색다른 매력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맘껏 즐겨보시길. 

힐링 여행을 하기에도, 한여름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아직 이번 여름휴가 장소를 정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이곳을 떠올리셔도 좋겠다. 더욱이 '장흥'이란 곳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에게 숨은 매력이 많은 이곳을 추천 드린다.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곳으로 남기기엔, 장흥은 더없이 아까운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전남장흥, #장흥삼합, #편백숲, #이청준작가, #장흥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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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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