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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녀 클럽' 전시에 등장한 창작그룹 모이즈의 양채은씨.
 '불효녀 클럽' 전시에 등장한 창작그룹 모이즈의 양채은씨.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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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는 '우리의 틀을 직접 만든다'를 모토로 결성된 청년 '창작그룹 MOIZ'(아래 모이즈)가 있다. 지난 2018년 결성된 모이즈는 광주의 창작자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활동하되, 꼭 5.18을 비롯한 역사성, 향토성만을 기반으로 하지는 않았다. 광주에서 살면서 느껴온 일상의 불편함과 이상함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지난달 22일,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제5회 허스토리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기획전시 <불효녀 클럽>이 여성가족재단 기획전시실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모이즈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모이즈 구성원들의 일상의 불편함과 이상함에서 시작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답게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꾸만 '불효녀'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불효녀성(Bulhyonality)을 검증해 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효'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기 어렵지만 정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임을 깨달은 모이즈는 <불효녀 클럽>을 결성해 전시와 관련 활동을 통해 고민을 나눠보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불효녀 클럽> 활동과 관련해서 창작그룹 MOIZ의 양채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는 일문일답.

- 이번 '불효녀 클럽' 활동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모이즈의 기획은 대부분 사적인 자리에서 농담으로 시작하는 거 같아요. <앨리스 인 히어 : 광주>라는 공연을 만들 때 야외무대를 꾸며야 해서 집에도 못 가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요. 이때 모이즈 구성원들이 다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아서 트러블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모이즈가 아니라 '불효녀 클럽'같다는 농담을 했는데, 이게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되어서 전시까지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우리 스스로를 불효녀로 임명해 보기로 했어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불효녀들을 모아서 그들이 왜 불효녀인지 스스로 밝히게 하고, 임명장이나 뱃지를 수여해 주자는 기획을 하게 됐어요. 불효녀라는 게 명예로운 일인 것처럼, 클럽을 결성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로 한 거예요.

이 과정에서 불효녀라는 건 타인의 시선에 의해 '나는 혹시 불효녀가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속박하는 상태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여성들을 불효녀로 만드는 속성들을 분석해서 키워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실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것들이었어요. 나를, 나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는 '효녀'라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 키워드로는 어떤 게 나왔나요?

"모이즈가 콘셉처돌이잖아요? '불효녀 콤플렉스', '불효널리티', '불효녀 퀘스처너리' 같은 키워드가 나왔어요. 불효녀 콤플렉스는 스스로를 불효녀로 프레임화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상태예요. 이 마음이 나의 정서나 선택에 영향을 끼쳐요. 불효널리티는 불효녀로서의 속성들을 뜻해요. 불효녀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는 요인들을 실타래 뽑듯 하나하나 살펴본 결과예요. 불효녀 퀘스처너리는 스스로가 불효녀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를 뜻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키워드를 바탕으로 <불효녀 클럽> 전시를 시작하며 '불효녀의 밤' 행사를 열고 최고의 불효녀를 뽑는 '불효듀스 101'을 진행했어요. '불효녀 클럽'이 공적인 기관이나 인정된 협회인듯 공식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거든요."
 
창작그룹 MOIZ가 만든 '불효녀 선언문'
 창작그룹 MOIZ가 만든 '불효녀 선언문'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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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효녀의 밤' 행사는 어땠나요?

"우선 '불효녀 선언'을 낭독하고 행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는 불효녀도 아니더라고요. 저희 회원님들은, 정말 저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대단하셨어요. 개인사가 많이 얽혀 있었지만 다들 유쾌하게 이야기 나눴어요. 기획자의 가정사를 전시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어, 나도 그랬는데'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어요. 그동안 한국사회의 여성들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장녀이든 차녀이든 막내이든 '불효녀' 프레임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던 거 같아요.

가족의 형태나 관계의 생김새는 각자 달라서 유의미한 결괏값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포털사이트에 '내가 불효녀인가요?'라는 질문만 검색해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학술적인 가치는 없을 수 있지만 저희가 감각하는 게 있잖아요? '불효녀의 밤'에 여성분들만 오신 건 아니에요. 남성분들도 오셨는데, 여성들이 불효라고 생각한 일을 단 한 번도 불효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분들이 많으셨어요. '불효'를 이야기하면서 불효'녀'에 좀 더 집중한 건 이 때문이에요."

- '불효녀의 밤' 참석자분들은 주로 어떤 일을 불효라고 느끼셨나요?

"'부모님을 여행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성소수자이다', '나는 나의 성적이 부모님이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닐 때 불효녀라고 느꼈다', '나는 비정규직 근무자일 때 불효녀라고 느꼈다' 등, 되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엄마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할 때 불효녀라고 느낀다'는 답변은 조금 슬펐어요.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은 곳을 여행할 때 엄마는 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효녀 콤플렉스를 느끼는 거예요.

모두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 있었던 거 같아요. 분위기가 무거워 질까 봐 친구들에게도 잘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 유쾌하게 유머로 승화하면서 서로 위로받은 거 같아요. 이걸 만든 당사자인 제가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고 느꼈어요. '불효녀'라는 프레임 때문에 죄책감을 학습했던 과거가 떠올랐거든요."

- 채은님은 스스로를 불효녀라고 느끼셨던 적이 있나요?

"저는 10대 시절에 굉장히 많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좋은 딸, 착한 딸로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과정이 되게 장했지만 좋은 딸이 되기 위해 포기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 우리 집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저희 집이 그렇게 가난한 편은 아니었는데 저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생일 날 케이크를 먹는데 케이크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걸 사가는 등, 되게 사소하지만 포기하게 되고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더 성장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가정에서 정한 '어항'의 크기만큼 살아야 했던 것 같아요. 이 같은 마음의 종지부를 찍은 게 이번 전시였어요. 결과를 내고 나니까 후련하고, 많은 것들을 털어버린 것 같아요."

- <불효녀 클럽> 전시 이후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번 '불효녀 클럽'은 목적을 달성한 거 같아요. 추리고 추린 불효의 이야기들이 내가 죄책감을 가질만한 것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불효녀라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 나 불효녀다'라는 클럽의 목적을 달성한 거예요.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는 낳은 자식을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걸 어려워하는 거 같아요. 이건 '효'라는 사상이 있는 동아시아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되면 '불효녀 클럽' 해외편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번 '불효녀 클럽' 전시에 전시된 임명장.
 이번 '불효녀 클럽' 전시에 전시된 임명장.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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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창작그룹 모이즈, #불효녀 클럽, #2030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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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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