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네 문구점을 찾아가던 중에 신기한 풍경을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맞은편 차도에 봉고차 한 대가 서더니 배낭을 멘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내리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뒤이어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이번엔 장바구니용 카트를 든 아주머니가 내립니다. 그리곤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손을 흔드는데 그 손인사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임무를 잘 수행하고 돌아갈게' 하는 말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두툼한 외투에 모자와 장갑을 갖춰 방한 채비를 하고, 오래 걸어도 발을 편하게 감싸줄 운동화에 배낭까지 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흡사 중대한 임무를 앞둔 요원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행선지는 어디일까요?

맞은편 도로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곧 그 임무란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시장 앞으로 줄지어 늘어선 노점들과 끊임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 오늘이 바로 동네 5일장이 서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5일장 초짜지만 기분 좋습니다
 
시장으로 출동하는 어머니들
 시장으로 출동하는 어머니들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시장은 동네 산책을 하다가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가게의 반 정도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시장 입구부터 좌판이 늘어서고, 이날을 기다려온 듯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조용하던 시장가에 상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장 보러 나온 이들의 말소리가 더해지며 미디엄 템포의 신나는 음악처럼 시장에 활기가 되살아났습니다.

시장 입구부터 시작된 노점은 시장 안쪽의 골목을 메우고 시장 건너편 공용 주차장까지 연결되어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품목의 노점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제법 역사가 오래된 5일장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잘 아는 이들은 변함없이 5일장을 찾아오는 듯 보였어요. 시장의 즐거움을 만끽할 채비를 단단히 하고 말입니다. 

5일장을 몇 번 경험해보지 못한 초짜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동네 문구점에 가려던 산책의 목적은 잠시 접어두고 우연히 찾아온 과정을 즐겨보고자 시장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시장 입구,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드니 흥이 납니다. 왜 시장을 가면 기분이 좋을까요? 저는 금세 그 이유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시장에선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였습니다.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여 시장에 싣고 온 '사람', 자신이 팔고자 하는 물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애정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이의 물건을 사고자 하는 또 다른 '사람'이 말입니다.
 
시장 골목의 노점들
 시장 골목의 노점들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물건을 사려면야 마트에 가서도 충분히 살 수가 있지만, 마트에 가면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 보입니다. 대형 선반 위에 줄지어 늘어선 물건들은 장보기의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시장에선 사람 냄새나는 왁자지껄한 흥겨움과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예전보다 산지에서 직접 실어온 물건의 수는 줄어 반 정도는 중간 유통상의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물건들은 상인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해 보였습니다. 물물교환을 하던 시절의 원초적 감각을 되살아나게 했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이 될까요?

곡물 가게를 에워싼 어머니 무리, 싱싱한 해산물같이 허공을 가르는 상인의 호객 소리, 대파 가게에선 파를 난로에 구워 먹는 생소한 레시피도 얻어 듣고, 한과 가게에선 덤으로 얻은 한과를 맛봅니다. 예상치 못한 덤은 시장보기의 큰 기쁨입니다. 마트의 1+1 마케팅은 아마 이런 시장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요.

축제가 오래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5일장에서 만난 녹두전
 5일장에서 만난 녹두전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어딘가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녹두전을 부치는 부침 가게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고 저처럼 냄새를 따라온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길게 줄을 섰습니다. 저도 그 줄에 한번 합류를 해볼까요. 

요리를 하다 보면 전을 부치는 것처럼 번거로운 것도 없습니다. 명절 전 부치기는 노동에 비유되곤 합니다. 재료 손질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기름냄새를 맡으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도 고되기 때문입니다. 사방에 튀는 기름에 뒷정리를 하는 것도 일인 데다, 설거지도 까다롭지요. 그렇지만 기름과 부침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니,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5일장 스케치
 5일장 스케치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신선한 식재료며 수공예품에 시선을 빼앗기고, 향긋한 음식 냄새에 코가 즐겁고, 사람들의 말소리에 생기를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의 끝, 과일가게에서 귤 한봉다리 사는 것을 마지막으로 슬슬 발길을 돌릴 시간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도 5일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만납니다. 노부부와 손주,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이들, 하나같이 오후의 햇살처럼 환한 표정입니다. 소풍 전날의 들뜬 마음같이, 5일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축제의 연장선처럼 보입니다. 

이 축제가 더 오래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지역 경제도 살리고, 농민과 상인, 지역 주민이 상생할 수 있으니 모두가 즐거운 축제겠지요. 광장시장처럼 일상의 이벤트로 가끔 찾아가는 시장도 좋지만,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5일장의 기쁨을 자주 그리고 오래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다음 세대의 다음 세대에게도 오감을 자극하는 시장의 맛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사람 냄새 제대로 맡은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하며,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남은 오후도 맛있게 보내야겠습니다.

태그:#5일장, #시장, #산책, #걷기, #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