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 빠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직지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 빠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 국립중앙도서관

관련사진보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약 2개월간 '구텐베르크의 유럽'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1972년 '세계도서의 해'를 맞이하여 고(故)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직지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1973년에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회에 소개된 이후로 처음 선보이는 자리로 그 의미가 더 뜻깊다. 하지만 또 마음 한편에는 '그곳이 한국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지만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일 것이다. 

직지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배포되었는데 이는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1452년~1455년)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유명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왜 '직지'는 프랑스에 있을까? 


1377년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의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뜻을 담은 이 책은 1886년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1853~1922)가 수집한 수집품 중 하나가 되어 프랑스로 가게 되었고 이후 앙리 베베르(1854~1943)가 구입하여 그가 죽은 이후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 밖의 문화유산은 직지뿐만 아니다. 2011년 장기대여 형식으로 돌아오게 된 '외규장각의궤'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되었으며, 2017년 일본의 소장가의 기증으로 돌아오게 된 '이선제 묘지'는 19세기 때가 아닌 비교적 최근인 1998년 문화재 밀매범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 또한 서산 부석사에서 불법 반출되어 일본의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한국 절도범들에 의해 2012년 국내로 다시 들여와 그 소유권을 놓고 소송 중인 '웃픈' 사건도 현재진행형이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의 수는 20만 점이 넘는다.
▲ 국외소재문화재 현황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의 수는 20만 점이 넘는다.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련사진보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27개국에 22만 9655점의 유물들이 외국으로 반출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나라는 역시 95622점(41.64%)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이다. 그다음으로는 미국, 독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대만, 네덜란드 순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2년 7월 설립하여 국외문화재 중 불법, 부당 반출이 의심되는 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환수나 반환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2022년 8월 기준으로 47건 785점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국립고궁박물관과 함께 2022년 7월부터 9월까지, 10년간의 노력과 의미를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에 담아 개최하였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 왜 돌려받을 수 없을까? 

18세기 말부터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유럽 열강들의 앞 다투어 식민지를 개척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 약탈 혹은 수집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힘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이런 것이다.

1954년의 헤이그협약는 문화재 파괴나 약탈 행위를 막기 위한 조약으로 무력분쟁이 발생했을 때 '모든 민족이 세계의 문화에 기여하고 있으므로 어떤 민족에 속한 문화재인지를 불문하고 문화유산이 전 인류의 문화유산의 손상을 의미하는 것을 확신하며 ...(중략)... 무력충돌시 문화재의 보호에 관한 원칙에 따라 평상시 문화재 보호를 계획하기 위한 국내적, 국제적 조치가 취하여지지 않는 이상 그러한 보호는 효과적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기로 결의하면서 다음의 규정에 합의'하여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법 또한 법이 시행된 1954년 이전에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불소급 원칙'이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과거의 열강들이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을 되돌려 준다는 것은 이전의 행위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보러 그곳으로 여행하는 이유가 많은데 이러한 것을 생각해보면 문화유산의 환수 혹은 반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유산이 더 이상 감추어지지 않고 수장고에서 나와 많은 이들이 그 가치와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자리에 전시된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지만 가장 그 역사와 문화를 알고 누리고 지켜야할 후손들이 사는 곳이 아닌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당당히 서 있을 직지에 생기는 미안함과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직지에 박수를 보내본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 문화재, 박물관, 책에 관한 글을 씁니다. 지난해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이라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태그:#직지, #직지심체요절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프랑스국립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문화, 문화재, 박물관, 미술관, 여행, 책, 삶에 관한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