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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중년 남성 4명이서 글쓰기 모임을 결성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이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줌을 켜고 글벗과 글쓰기를 한다.
▲ 온라인 줌 새벽글쓰기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줌을 켜고 글벗과 글쓰기를 한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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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간다. 아직 잠이 덜 깨 돌덩이라도 얹은 듯 무거운 눈꺼풀을 부여잡고 노트북을 켜고 핸드폰으로 줌에 접속한 후 내 손이 보이도록 각도를 조정한다. 이미 줌 화면 안에는 분주히 자판을 두드리는 여러 손이 보였다.

잠시 멍하니 하얀 화면을 주시하며 멍을 때리다가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이 떠올라 이거다 하며 글에 담기 시작했다. 그때 있었던 일, 그로 인해 촉발된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글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각자 쓴 글 중 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방에서 나왔다. 

간단히 씻고, 옷을 챙겨입고 지하철로 향했다. 마침 구석에 자리 하나가 비어 얼른 앉았다. 핸드폰으로 블로그 앱을 켠 후 새벽에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쓰기의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도착지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자그마한 핸드폰 자판을 열심히 두드린 끝에 종착역에 내리기 전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발행한 후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매일글쓰기 카톡방에 글을 공유하면 마무리되었다. 조금 있으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내가 쓴 글을 읽고 어느새 글벗이 찾아와 댓글을 남긴 것이다. 나의 속상한 감정을 위로해주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하는 감사한 마음에 흐린 날씨처럼 찌뿌둥했던 내 안은 어느새 맑은 햇살로 바뀌었다.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실천한 지 벌써 5년이 다 되었다. 3년 전, 집에서 먼 곳으로 발령난 후부터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해서 출근길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핸드폰으로 글 쓰는 것이 익숙지 않았고, 더구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이제는 글 한 편 정도는 쉽게 작성한다. 아침에 글을 마무리하니 써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고, 퇴근해서는 가정에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히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나만의 비법도 생겼다. 이래저래 고마운 새벽 글쓰기였다.

왜 이렇게까지 글을 써야 할까. 집 걱정, 회사 걱정, 아이들 걱정 등 신경 쓸 일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중년에 별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글쓰기에 몰입하는 내 모습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도 글쓰기에 관심 없던 시절엔 그저 머릿속은 일과 가정밖에 없었다. 특히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중년 남성의 목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다가 어느 순간 '턱'하고 목에 무엇이 걸린 듯 답답했다.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고, 어떤 일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한창 바쁜 시기에 일을 놓을 수 없기에 참고 참으며 하루를 버텼다. 생각과는 다르게 회사에서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고, 계속 늦어지는 퇴근에 아내의 불만은 늘어만 갔다. 사소한 일에도 자주 부딪쳤다. 집안엔 내내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중년의 허무함, 글로서 달랬다
 
중년은 글쓰기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이다.
▲ 중년 남성의 글쓰기 중년은 글쓰기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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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가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머물렀다. 그때 불쑥 어떤 감정 하나가 밑에서 올라왔다. '억울함'이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럴까 하며 인생 자체가 허무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너져가다 우연히 글쓰기 수업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저녁 시간이라 가능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간의 과정이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등록했고 그렇게 첫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회사 보고서 외에는 글이란 써본 적도 없었는데, 가기 전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간단한 문장을 만들고, 짧은 글도 써보았다. 가장 어려운 점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감정 대부분을 누르며 살아왔다. 은연중 남자는 표현하면 안 된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았다. 선생님은 계속 글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였고, 어느 순간 솔직한 마음을 글에 담기 시작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물꼬가 트이니 이렇게까지 나를 드러낸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글에 담았다. 분명 내가 나에 관해서 썼음에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상담받는 것처럼 치유가 되었다.

수업 마지막 날, 미리 글 한 편을 완성해서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했다. 남들처럼 좋은 문장이나 세련된 표현 하나 없는 그저 그런 글임에도 나의 마음이 잘 드러난 진솔한 글이었다는 말에 울컥해서 주책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간 내 안 어딘가에 밀어놓고 감춰둔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솔직하면 약하게 보일까 억지로 강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면 쓰고 살아온 시간이 후회되었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 나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는 쉽지 않다. 그럴만한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글이 있다. 글이 가진 힘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감은 주변에 널려 있었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 아내와 다퉈 속상한 일, 혹은 길 가다 만난 예쁜 꽃에 설렜던 일, 아이들과 주말에 자전거 타며 즐거웠던 일 등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글에 담아 보냈다. 그저 구름처럼 흘러갈 소소한 일상이 자세히 바라보니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기록하며 깨달았다.  

중년은 글쓰기에 좋은 나이이다

글은 그저 글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묵묵히 쓰다 보니 여러 좋은 기회가 생겼고, 책도 3권이나 출간하게 되었다. 직장이나 주변 사람에게 글 쓰는 일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둘 알게 되었고 이제는 모두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처음엔 글을 쓰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까 두렵기도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좋은 반응에 힘이 났다. 그러면서 본인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때는 글 전도사가 되어 옆에서 열심히 써보라고 부채질을 한다.

특히나 자기표현이 서툴고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욱 권하게 된다. 언젠가 쌓여 '펑'하고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전에 글에 담아 덜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나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한 주변 몇몇은 글쓰기 삼매경에 푹 빠져 지낸다. 가끔 카톡으로 쓴 글을 보내며 읽어봐 달라고도 하고, 어떤지도 묻는다. 늘 만나면 승진, 주식, 코인만 말하던 사람과 글쓰기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상황이 재밌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도 대학교 친구들과 만났는데, 나의 글쓰기가 화제였다. 다들 신기해하며 책을 가져와 사인해달라고 하고, 기사도 읽었다며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위해 썼던 글이 어느새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습에 글이 가진 힘을 느꼈다. 다들 중년이라는 힘든 구간을 지나고 있다. 그저 소소한 내 글이 그들 마음에 닿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이다. 작가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경험을 통해 좋은 글이란 결국 타인과의 좋은 관계 맺음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다. 그 문장에 무척 공감했다. 더불어 대부분 사라지는 우리의 경험을 글에 담아 남기는 의미 있는 일의 중요성도. 글이란 결국 내가 사는 삶을 기록하기에 잘 살아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는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족하지만 나 또한 글을 쓰며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중년 남성이 글을 쓰면 좋겠다. 글에 솔직한 나를 담아내어 힘을 얻고, 힘든 하루하루이지만 그 안에서 분명 삶의 보석을 발견할 것이다. 혹여나 글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면 주저 말고 노트와 펜을 꺼내 떠오르는 아무 생각을 글로 써보길 바란다. 하루, 이틀 계속된다면 언젠가 달라진 나를 마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중년, #마흔, #글쓰기, #공허함,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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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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