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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랑 모레는 비 온대."
"그럼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
"점심시간이라도 오늘은 꼭 가자."


사무실에 콕 박혀 일만 하느라 봄이 오는 줄도 몰랐었다. 비단 회사일 뿐인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안 살림하고 어린이 키우느라 더 몰랐다. 사람들이 SNS나 단톡방에 꽃사진을 하도 올리길래 '봄이구나. 남쪽 지방엔 벌써 피었나 보다' 하고 넘기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 벚꽃들을 바라보니 빠른 꽃들은 벌써 다 떨어지고 있었다. 봄은 참 소식도 없이 왔다가 재빨리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오늘은 꼭 꽃구경 가자. 이러다 올봄도 그냥 지나가겠어."

그리하여 갑자기 벚꽃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원정대는 이른 점심을 간단히 먹고 회사 근처 벚꽃으로 유명한 공원으로 향했다. 
 
2022년 용산가족공원 벚꽃
▲ 흐드러지게핀벚꽃 2022년 용산가족공원 벚꽃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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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상춘객으로 가득한 공원은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려는 시민들로 분주했다. 그 분주함에 나도 한 자락을 더했다. 공원의 연못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피어있는 꽃들도 예쁜데 연못에 비친 꽃들도 아스라하게 예쁘다. 마치 봄을 형상화해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이 꽃을 못 보고 올봄이 지나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아니 못 보았으니 후회도 없으려나? 귀찮아도 오기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꽃길을 산책했다.

"그래 꽃길이 이런 거지. 계절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할 때 그걸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기온마저 갑자기 올라 마치 여름에 벚꽃 보는 기분이 들기까지 할 만큼 더웠다. 겉옷을 하나둘 벗어버리고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빴는지 꽃 보러 올 엄두도 못 내고 있었을까? 벚꽃이 피는 시간은 바싹 길어봐야 일 년에 일주일에서 열흘인데, 며칠 안 남은 그 시간 동안이라도 열심히 보러와야겠다 다짐을 했다.
 
꽃은빨리진다
▲ 떨어진 벚꽃잎들 꽃은빨리진다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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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부지런히 핀 꽃들은 어느새 떨어지고 있다. 비가 오고 나면 더 떨어지겠구나. 아마도 첫 구경이 마지막 구경이 될 공산이 크다. 게으른 나는 겨우 꽃 한번 구경했을 뿐인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돗자리를 펴고 예쁜 나무 밑에 앉아서 봄을 즐기고 있다.

나도 내년에는 꼭 부지런을 떨어서 저렇게 해보고 싶어진다. 김밥에 과일과 간식을 더 해서 도시락을 싸고, 은박돗자리 말고 예쁜 감성 돗자리를 가지고 와야겠다며 머릿속으론 메뉴 구성까지 다 마쳤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어른들의 꽃놀이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용산가족공원벚꽃
▲ 2022년의 벚꽃 용산가족공원벚꽃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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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어른들이 꽃구경 다니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 꽃구경 뿐인가. 가을이면 단풍구경, 겨울에는 온천여행, 진달래가 피었으니 진달래 꽃 보러 간다고 부지런히 다니시는 우리 할머니의 모습은 집순이인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했었다.

엄마의 그릇은 죄다 꽃접시다

밖에서 꽃을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가 준 접시는 죄다 꽃접시다. 겉에는 금칠까지 화려하게 해놓은 바로 그 접시 말이다. 그 이유도 올봄에 깨달았다.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꽃을 보러갈 여유가 없었을 때 엄마는 꽃접시에 음식이라도 담으면서 꽃구경을 했나보다.

"엄마도 우리 세 남매 키우느라 바빠서 꽃 보러 갈 시간이 없었구나. 그래서 집에서라도 보고 싶어서 꽃가라 접시를 그렇게 샀던 것이었군."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다. 어른들이 왜 그러시는지 말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봄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 말이다. 그걸 알게 되니 지나가는 계절을 그저 둘 수가 없어진다. 봄이 내게로 오면 그 봄을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보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유를 가지고 바라본 봄은 참으로 아름답고 찬란하다. 왜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런 걸 잘 누리지 못하고 지냈던 과거가 아쉬울 정도이다. 

적극적으로 꽃을 보러 나와보니 알겠다. 꽃은 해마다 부지런히 피지만,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지런히 남은 봄을 만끽해야겠다. 그리고 다가올 여름도 찬란한 단풍도 멋진 설경도 마음 두근거리며 기다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중복개제됩니다


태그:#봄꽃놀이, #용산가족공원, #꽃놀이,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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