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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이 시행 이틀째였던 2021년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종각사거리에 안전속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국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이 시행 이틀째였던 2021년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종각사거리에 안전속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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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일부 간선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60km로 높이는 방안과 심야시간대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를 현행 30km/h에서 40∼50km/h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는 지난 5일 "'안전속도 5030'과 어린이보호구역 속도 제한이 도로 환경과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제도의 기본 취지는 살리되 제한속도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운영할 것을 경찰에 제안했다"고 발표했다.

200명 넘게 살린 셈인데... 1년 만에 원상복귀?

도시부 도로의 제한속도를 간선도로는 시속 50km, 이면도로는 시속 30km로 제한하는 '안전속도 5030'은 2016년 4월 공식발표 이후 민·관·학 협의회 출범, 시범운영 등을 거쳐 지난 2021년 4월 17일부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라 전국에서 적용되고 있다. 현행 제한속도를 시속 60km로 늘리면 교통 체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2018년 교통안전공단이 10개 광역시·도의 총 27개 노선을 선정해 속도를 각각 시속 60km, 50km로 설정하고 동일한 구간을 주행한 조사 결과 시속 50km의 통행시간이 시속 60km보다 '평균 4.8%(2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안전공단은 이를 토대로 통행시간 2분이 증가함에 따라 시간가치비용이 4866억 원 증가하지만, 사고비용이 7012억 원 감소해 도시부 최고 속도를 시속 50km로 줄이는 쪽이 경제효과 측면에서도 이롭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1년 8월 경찰청이 '안전속도 5030' 시행 100일을 맞아 조사한 결과, 적용 기간 내 보행 사망자는 2020년 같은 기간보다 16.7% 감소했다. 또한 평균 통행속도 역시 시속 33.1km로 2020년 같은 기간보다 시속 1km밖에 감소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시행 초기의 효과분석 결과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9일 교통안전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900명이다. 지난 2018년 경찰청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발표한 '도시부 교통사고 특성과 예방대책'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는 2015년 교통사고 사망자 중 54.5%가 도시부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이를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대입하면, 2900명 중 도시부에서 사망한 이들은 대략 1581명이다. 이 숫자에 경찰청의 사망자 감소 조사 결과인 16.7%의 감소율을 적용해보면 264명 정도다. 숫자로 비유하자면,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인해 적어도 200명이 넘는 생명을 살린 셈이다.

해외에서는 안전·환경 문제로 시속 30km까지 하향 추세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시기별 제한속도 변화를 볼 수 있는 지도. 현재는 헬싱키 전역을 시속 30km의 제한속도로 규정하고 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시기별 제한속도 변화를 볼 수 있는 지도. 현재는 헬싱키 전역을 시속 30km의 제한속도로 규정하고 있다.
ⓒ 헬싱키 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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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속도 5030'은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7개국 중 31개국이 시행하는 정책이며 OECD와 WHO(세계보건기구)도 제한속도 하향을 수차례 권고했었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1960년대 스웨덴이 도시부 제한속도를 시속 50km로 하향했다. 이후 1977년 영국도 도시부 제한속도를 시속 48km로 하향하기 시작하면서 도심부 제한속도 하향은 전유럽에 확산됐다.

특히 북유럽의 경우 제한속도 하향에 따른 사망률 감소는 획기적이었다. 2019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는 교통사고 보행 사망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도 같은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1명뿐이었다. 두 도시 모두 제한속도를 시속 30km로 하향한 결과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의 2017년 발표한 '도시부 제한속도 감속(5030)에 따른 교통영향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 상 도시부 제한속도 하향에 따른 교통사고 감소 효과는 외국의 경우 약 19%~67%로 높은 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2021년 8월 30일부터 시내 전역의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50km에서 시속 30km로 하향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파리를 환경친화적 도시로 만들겠다면서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파리시는 "통행 속도를 줄이면 사고 건수를 평균 25%가량 줄일 수 있고, 차로 근처의 소음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뿐만이 아니다. 독일 베를린 역시 유럽연합(EU)의 질소산화물 연평균 배출 권고 기준인 40µg/m³를 초과해 유럽연합과 환경단체에 고소당하자 도심의 차량 제한속도를 기존 시속 50km에서 시속 30km로 하향했다. 베를린시는 교통사고가 10% 줄었고 질소산화물 배출량도 최대 29% 줄었다고 설명했다. 벨기에의 브뤼셀 역시 환경오염과 보행자 안전을 이유로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30km로 하향했다.

스쿨존에서도 심야시간 제한속도 상향?... 아직은 "시기상조"
 
지난 10월6일 하병필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이 창원 남양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진행된 교통안전 홍보 활동을 하는 모습.
 지난 10월6일 하병필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이 창원 남양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진행된 교통안전 홍보 활동을 하는 모습.
ⓒ 경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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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는 어린이가 다니지 않는 심야시간대엔 제한속도를 현행 시속 30km에서 시속 40km 혹은 50km로 상향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방침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발언이 있다. 지난 3월 16일 KBS가 내보낸 '스쿨존 제한속도 시간대별 탄력 운용' 방송 내용이다. 이 방송에 출연한 전수연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수는 스쿨존 탄력운용에 대해 "아직까지 인식과 제도가 굳건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된 이후 후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 미국의 경우 어린이 보호구역이 학교로부터 500m로, 한국의 300m보다 구역이 넓고 독일은 시속 10km로 제한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넓고, 학생별로 집에서 학교까지의 등하굣길 중 가장 안전한 통학로를 선정해 학생들이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안전한 통학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영국 역시 미국과 비슷한 학교별 통학계획을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일본도 학생별 통학코스를 지도에 표시해 '통학로 안전지도'를 만들고 학교에서 정한 통학로 이용을 유도한다.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스웨덴은 스쿨존을 넘어선 '홈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 앞이나 등하굣길을 제외한 마을이나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도 홈존으로 규정되면 차량 통행이 완전히 금지된다. 주차장을 마을 외부에 설치할 정도다. 독일의 경우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교통사고는 이유를 불문하고 100% 운전자 과실이라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에 비하면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한국소비자원이 2021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약 두 달간 29개 어린이 보호구역을 조사한 결과, 20개 지점(68.9%)에 교통단속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20개 지점 중 19개 지점에는 속도 인식 기능이 없는 다목적 폐쇄회로(CCTV)만이 설치돼 있었다. 또 29개 어린이 보호구역을 통과하는 차량 480대 중 98대(20.4%)는 제한속도인 시속 30km를 초과해 운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국민 안전만 위협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7월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부정식품 단속과 의약품 규제를 언급하며 정부의 과도한 단속과 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는 이후에도 주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 등 정부가 노동자를 위해 규정한 최소한의 제도들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인수위가 발표한 제한속도 상향 조치는 같은 맥락에서 윤 당선자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를 '비효율'로 규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보행자 안전을 위한 제한속도 하향은 이미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결국 국민의 안전만 위험하게 만든다. 윤 당선자와 인수위가 이 점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6일 점심 일정을 위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을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6일 점심 일정을 위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을 나서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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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전 5030, #스쿨존, #인수위,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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