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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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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고백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 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적폐 청산을 이루어 왔으나 '부동산 적폐'의 청산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몰두하고,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대응해왔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들은 대통령의 위 발언을 회의 시작 전 으레 하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고 응원하던 시민의 한 명으로서 이는 놀라운 발언이었다.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대통령의 성격 상 그것은 아주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관련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시인했다. 임기 동안 부동산 시장의 안정만 추구했을 뿐, 그 안정을 뿌리부터 흔드는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차마 건드리지 못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비록 대통령은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고 있지만 그것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이기도 하다. 현행 정치제도 안에서 어느 정부도 '부동산 적폐' 청산을 쉽게 외칠 수 없다. 꼴랑 5년 만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강남 개발서부터 시작된 부동산 투기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고, 그만큼 국민들 모두 부동산과 관련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주위에는 반드시 갑자기 땅을 팔아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또한 아파트를 계속 사고팔아 자산을 늘리려는 사람들이 소위 '천지빼까리'다.

오죽하면 부동산 투기와 투자가 동의어가 되었겠는가.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 사회에서 그 누가 부동산을 통한 일확천금의 꿈을 꿔보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부동산 투기세력이기도 하다.

끊어진 계급 사다리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더 이상 부동산으로 계급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제 부동산은 가진 사람이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힘을 가지고 정보를 독점한 사람들이 부동산을 독식하기 시작했으며, 일반 서민들에게 부동산은 희망고문이 되어버렸다.

최근 여론의 꺼지지 않는 분노는 바로 이와 같은 현상에서 연유한다. 1960, 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우연하게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종종 등장했지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부동산으로 인해 자산의 차이는 계속 심각해져 가고 있으며,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건물주 앞에서는 마냥 작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어찌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순히 LH공사 직원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부동산으로 모순이 깊어지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절망이요, 나의 땀이 공정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도 이와 관련이 깊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사회에서 무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정부는 끊임없이 저출산 고령화 극복을 외치며 정책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출산율은 높아지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부는 이 간단한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다. 임기 내에 부동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며, 결국 그것이 정권유지에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인한 요행을 바라고 있는데 과연 어떤 정부가 감히 그것을 손질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이번이 기회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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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번 LH공사직원들의 부정부패 사건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론의 꺼지지 않는 분노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이 부동산 투기를 통한 자산형성 보다는 제도개혁을 통해 공정한 시스템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언론과 야당들은 4월 재보궐선거와 맞물려 이번 사태를 정쟁의 주요 이슈로, 정권탈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대통령이 말했듯 부동산 적폐 청산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노선의 대변환이요, 패러다임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혁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대통령이 누가 되든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사회는 공정해질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번 재보궐 선거는 오히려 기회이다. 어쨌든 정치인이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 선거 기간에 부동산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하게 마련해야 된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땅보다 땀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기반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선거의 주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여당은 지지율 하락에 당황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정부여당이 감수할 몫이다. 국민의 분노가 어디로 표출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현실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분노의 방향을 잡고 사회를 개혁하는 일이다.

문제는 부동산이다.

태그:#부동산, #문재인, #LH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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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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