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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끼고 있더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남편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끼고 있더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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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하면 '아나바다' 오프라인 장터를 상상하던 내가, 온라인으로 중고 거래로 처음 구매한 물건은 엄마의 휠체어였다. 볕이 좋던 몇 해 전 봄날, 그날은 제각각 만발하다 지는 꽃들이 너무 아까워 사무쳤다. 엄마도 꽃구경 좋아하는데, 몇 발자국 떼는 것도 어려운 무릎으로는 꽃구경을 시켜드릴 방도가 없기에 그랬다.

앞서 시립 공원에 전화해 물어봤을 때, 약자용 휠체어는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부아가 나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 빵점 복지를 성토했더니, 대뜸 휠체어를 중고로 사자는 것이었다. 중고로? 그때까지는 몰랐는데, 남편은 이미 인터넷 중고 시장에 재미를 들이고 있었다.

의외로 중고 시장에 나와 있는 휠체어가 꽤 많았다. 직접 받아야 하니 멀지 않은 거리와 적당한 가격을 고려해 맞춤한 휠체어를 낙점하고 거래했다. 듣자 하니, 남편은 이미 정비 공구 등을 중고 거래로 구입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끼고 있더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빠져 있었던 거였다.

내게 휠체어를 경제적으로 구입해 준 이후, 남편은 전과 달리 무척 당당해진 모습으로 이것저것을 집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둘 곳이 없어 절대 들이지 말라던 안마 의자를 턱 하니 들이더니, 다리 마사지 기계까지 사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는 그의 직업병인 골근육계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물건임을 감안해 참을 수 있었다.

당당히 들이던 물건과 달리, 어느 날엔 눈치를 살피며 뭔가를 살짝 들이는 정황이 나의 내 눈에 포착되었다. 살짝 들인들, 숨긴들, 창고 하나 변변히 없는 뻔한 집 어디에 감추고 싶은 물건을 짱 박겠는가. 수상하던 차, 어렵지 않은 수색으로 발견해낸 것이 서바이벌 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가 찰 뿐이었다.

코 흘리던 어릴 적, 장난감 총이 사고 싶어 매일 출근하시는 아빠 구두를 부뚜막에 들고 녹여드림으로써 아빠를 감동시켜 돈을 받았고, 그 돈을 모아 마침내 목표한 총을 샀다는 그의 전설이 번뜩 스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왜 아직도 쏘지도 못하는 총이 갖고 싶단 말인가. 게다 장총, 소총 합해 세 자루나 있는 것이 아닌가. 중고 거래로 총을 사다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설이 정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식구들 모두 온라인 중고 거래꾼들이었다

샛눈을 치켜뜨고 담판을 지음으로써 더 이상의 총 구매는 막았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중고 물품 거래는, 딸애가 코로나19 때문에 엑소더스 급으로 귀국하며 대를 잇게 되었다. 하긴, 각양각색 화장품이 구비된 중고 파우치를 사서 기함시킨 게 중학교 때였으니, 딸애는 이미 중고시장의 확고한 고객이었던 셈인데 이 애가 구매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판매자이기도 하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추석이 지나고 달갑지 않게 들어온 선물세트를 어떻게 할까 궁리를 내고 있자, 딸애가 선뜻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인 D마켓에 내놓자고 했다. 인터넷 중고 거래에서 선물세트까지 거래되는 것을 상상도 못 한 나는 딸애에게, "그걸 누가 사냐"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곧이어 실제 거래가 되는 광경을 보고 뻘쭘해졌다. 어머, 이런 걸 사고파네.. 선물세트는 기부처를 찾아 필요한 주인을 찾아가느라 중고 거래를 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중고 시장이 이 정도로 별별 걸 다 취급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되었다.

그러던 한날이었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남편이 원하지도 않던 커피 머신을 가지고 왔다. "또 어디서 얻어왔구먼" 했는데, 본인은 새것이라고, 산 거라고, 그것도 비싼 거라고, 박박 우겼다. 어쨌거나 생기니 써야겠기에 두어 달 쓰게 되었다. 기계로 뽑는 커피는 나름 그만의 맛이 있었다. 문제는 캡슐이었다.

커피가 추출된 캡슐은 기계 홀더에 모여져 한 번씩 버려주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과정에 마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재활용을 하려면 캡슐을 일일이 까서 커피가루를 버리고 씻어 버려야 하는데, 이게 여간 손 가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 캡슐 자체가 재활용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핸드 드립에 비하면 기계 커피는 정말 편한데, 몸이 편하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커피 마실 때마다, 이 한 잔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어린이의 노동이 스며 있을까 마음이 짠해,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마시게 된다. 게다가 이 미안한 커피를 마시며 지구에 가해를 하는 쓰레기까지 내보낸다는 생각이 들자,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거피 기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핸드 드립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날, 이번에도 딸애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계를 팔자는 것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두어 달밖에 쓰지 않은 물건을 그냥 내 선에서 폐기하는 게 맞는 걸까. 딸애의 주장대로 어차피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일 테니, 새것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쓰던 걸 활용하는 게 환경에 덜 위해 할까. 고민 끝에 팔랑귀를 자처하고 딸애의 주장대로 중고 시장에 내놨다. 어머나! 싸게 내놓긴 했지만 내놓자마자 몇 시간도 안 되어 구매자가 나섰다. 깨끗이 닦여 창고에 처박힐 뻔한 커피 머신은 이렇게 새 주인을 찾아 떠났게 되었다.

딸애가 거래를 성사시키자 이번엔 남편이 자신의 애물단지를 처분할 것을 부탁했다. 남편은 충동구매로 사들였다 후회 중인 다리 마사지 기계를 팔고 싶은 모양이었다. 딸애는 "저거는 아주 싸게 내놓지 않으면 안 팔릴 거 같은데" 하며 가격을 낮추라고 했지만, 남편은 자기가 산 가격이 억울했는지 딸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계가 일주일이 되어도 관심조차 못 받고 있자 그제야 가격을 조금 내렸지만, 딸애와 내 생각엔 그 가격에도 쉬이 임자를 찾기 어려울 듯싶다.

중고 거래, 한 번 웃고 한 번 울었다
 
파는 사람 맘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파는 사람 맘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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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생일이 다가오자, 이번엔 좀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벼르던 딸애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쓰지 않아 가격을 몰랐는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직업상 정비 일을 하다 전화를 쓰다 보면 떨어뜨리기 십상이라 파손이 잦다. 게다가 운전할 때 영업 전화는 또 어찌나 많이 오는지,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같이 타는 날엔, 운전하다 전화 받는 아빠가 어지간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처음엔 새것을 사려 했던 모양인데, 작업장에서 쓰다 쉬 망가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무선이라 분실의 위험이 컸다. 남편도 딸애의 걱정에 동감했는지, 중고 구매에 흔쾌히 동의해 중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게 되었다. 새것 같은 중고를 사려니, 이것도 싸지는 않았다.

맞춤한 물건을 찾아 구매를 완료하고 드디어 기다리던 물건이 왔다. 택배 상자를 열어 본 딸애는 "와! 이 사람 정말 나이스하네" 하는 것이었다. 가지고 나오는 물건을 보니 정말 그랬다. 이어폰과 함께 온 물건들엔 그 사람의 마음이 같이 담겨 왔다. KF94 마스크 2장, 이어폰을 닦을 수 있는 휴대용 소독솜, 제주 딱새우 컵라면, 그리고 이게 가장 귀여웠는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포스트잇 메모가 있었다. 손글씨로 자잘하게 쓴 메시지가 정다웠다.

그런데 훈훈한 물품을 받던 그 날, 좀 이상하다 싶은 택배 상자가 하나 더 있었다. 딸애가 사들인 중고 물품이 또 있었던 모양인데, 포장 박스가 김치 상자였다. 판매자에게 딱 맞는 박스가 없었던 듯한데, 이게 김장철 절임배추 박스가 아니라 배추김치 박스가 아닌가.

환호를 지른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투덜거리며 방에서 나오는 딸애 왈, "아 진짜 환장하겠네. 어쩌자고 원단을 김치 박스에 보내냐고. 왜 김장한 옷감을 보내냐고..." 흠.. 그러게.. 빈 상자가 아쉬웠으면 근처 슈퍼나 편의점이라도 가보지, 어쩌자고 김치 박스에 옷감을, 그것도 탈취하려는 노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박스에 옷감 그대로를 투척했단 말인가.

울근불근하던 딸애는 판매자 전화번호로 메시지를 보내 사정을 얘기하고 환불 조치를 하는 모양이었다. 혼잣말을 연달아 구시렁대는 걸로 봐서 얘기가 잘 안되는 것 같았다. 중고 거래는 복불복인 건가? 뭐 판매자 포장 준수 사항이 균일하게 있는 것은 아니니, 파는 사람 맘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물건을 팔 때는 물건에게 혹은 살 사람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 경우 커피 머신을 누군가에게 판다고 생각하니, 막상 물건이지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도 밖도 잘 싸고, 박스 위에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서 살살 다루어지기를 바라게 되던데. 무사히 보내져 새 주인에게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냄새 잔뜩 밴 김치 박스에 맨 옷감을 무작정 넣어 보내는 건, 쓰던 물건에게도 받을 구매자에게도 좀 아니지 않나?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태그:#온라인 중고 거래,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 #중고 거래, #상거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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