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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회사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장기근속자 6개월 무급휴가. 내가 첫 번째 신청자가 됐다. 내 생애 가장 긴 휴가를 오직 2가지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과 독서. 첫 번째 소원을 위해 지난 3개월 자전거 타기와 야영훈련을 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37일간의 남미 자전거 원정을 떠난다. 참가자는 24번의 해외 원정 경험이 있는 김광옥 목사(62)와 전업주부 박정희씨(50), 그리고 직장여성인 나(58), 이렇게 셋이다. 3인의 좌충우돌 안데스 자전거 원정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달라스로부터 7시간을 비행해 리마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닿았다.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위를 날았다. 북미에서 중미를 지나 마침내 남미에 당도한 것이다.

아침 7시의 리마 아침 공기. 공항 밖 신선한 공기가 폐부를 채우니 꿈은 아님이 분명하다.

아침 7시, 드디어 리마에서 아침을 맞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있는 나는 리마가 기쁘고, 닥쳐올 시련을 예감한 원정팀의 대장, 김광옥 목사님의 얼굴에는 수심이 피었다. 분해해 포장한 박스속 자전거는 무사한지...
 아침 7시, 드디어 리마에서 아침을 맞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있는 나는 리마가 기쁘고, 닥쳐올 시련을 예감한 원정팀의 대장, 김광옥 목사님의 얼굴에는 수심이 피었다. 분해해 포장한 박스속 자전거는 무사한지...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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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 김선택 선생님과 이틀간 리마에서의 밤을 책임져줄 게스트하우스의 아드님 호세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김선택 선생님은 리마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 분으로 나의 남미자전거여행 계획에 대한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던 분이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와 관계없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남편의 응원과 "외람된 말이 될지 모르겠으나 남자도 위험한 길이다. 안전을 위하여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는 경험자의 조언이 있었다.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무모하다'고 요약될 도전이었다. 자전거를 이동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과 그곳이 안데스의 고원이라는 사실이 특히 그랬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내 인생 가장 긴 6개월간의 직장휴가가 시작되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내 인생 가장 긴 6개월간의 직장휴가가 시작되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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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도사린 걱정이 점점 커져갈 때 김 선생님의 메시지는 나의 불안감을 붙잡아줄 구원이었다.
 
"저는 페루 리마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김선택입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아요. 특히 여행기간이 우기인 탓에 비도 많이 올 것 같구요. 고산지역을 거쳐 가실 것 같으신데, 고도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높아서 준비를 많이 하셔야 하겠습니다.

일단 큰 결정하셨기에 잘 넘기실 걸로 생각하며, 필요하신 현지 정보 등 알려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답해드리겠습니다. 페루에서 어떤 것이든지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주저 마시고 연락 주세요. 볼리비아. 칠레도 지인들이 많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형편을 모르는 여자의 무모한 계획이 얼마나 불안했으면 팔을 걷고 돕겠다는 말씀을 주셨을까. 3개월 넘게 남미원정을 준비하는 중에도 틈틈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람의 모습을 한 이 천사 분을 통해 자신감과 정보를 충전할 수 있었다.

김 선생님과의 공항 대면은 존재조차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의 도반이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감격이었다. 김 선생님은 우리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아침 출근시간, 리마의 거리는 활기로 가득하다.
 아침 출근시간, 리마의 거리는 활기로 가득하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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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기약이 20년을 넘어버렸다
 
3대의 자전거와 야영 장비로 이삿짐 같은 부피가 되어버린 짐을 후세의 9인승 밴에 실었다.

리마 시내는 아침 출근길 차량으로 활기차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거리는 온통 교황님의 환영 사진들로 가득하다.

게스트하우스(리마하숙)의 아주머니는 아침식사를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민 30년째라는 아주머님의 밥상은 한국의 우리 집 아침상보다 한국적이고 더 화려하다. 호세는 이민 후 이곳에서 얻은 아들이란다.

분해해서 포장한 자전거 박스는 우리의 자전거 여행이 시작될 쿠스코까지는 풀지 않기로 했다. 대신 걸어서 리마 도심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1박2일간 공항과 비행기속에만 갖혔던 우리에게 싱그러운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1박2일간 공항과 비행기속에만 갖혔던 우리에게 싱그러운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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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은 바로 Elías Aguirre Park라는 도심공원. 이어지는 블록에는 '메르카도(Mercadoㆍ시장, Mercado Jardín N° 3 )'가 있다. 거리는 여유롭고 평화롭다. 필요한 고산병약을 구입하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틀 뒤에 떠날 TEPSA(탭사) 버스터미널을 답사차 방문했다.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경계가 없고...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경계가 없고...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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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게스트하우스로 김선택 선생님께서 우버택시를 보내주셨다.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고급주택가였다. 푸짐한 식사와 더불어 페루의 삶을 소상하게 들려주셨다.
 
"1997년 4월 12일, 페루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방송국 드라마 제작국에서 일을 했습니다. 조연출 3년 차에 방송국에서 충무로 영화사로 옮겨 영화 기획 일을 하면서 현재 저의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가정을 갖고 경제적 안정을 위해 5년간의 충무로 일을 접고, 아르헨티나에서 대학을 다녔던 집사람의 도움으로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를 대상으로 무역업을 시작했습니다.

업무로 페루와 칠레를 오가면서 낯선 남미의 매력에 빠져버렸습니다. 이주를 결심했지요. 저는 3남 1녀의 장남인데, 부모님의 결사반대가 큰 벽이었습니다. 장남이 집을 비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안 갔으니, 군대에 간 셈 치시고 3년만 참으세요. 3년만 살다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설득했습니다."

3년의 기약이 20년이 넘어버렸단다. 예나 지금이나 아들 이기는 부모는 없나 보다.
 
김선택 사모님께서 차려내신 한식 밥상.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이런 화려한 한식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꿈도 꾸지않았다.
 김선택 사모님께서 차려내신 한식 밥상.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이런 화려한 한식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꿈도 꾸지않았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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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생이 심했습니다. 나무도 옮겨 심으면 다음 해는 잎사귀도 떨어질 정도로 힘들다는데... 그 시절이 지금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김 선생님 부부는 안전을 염려하며 미리 준비하셨던 SIM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한국에서 사신 유심칩과 달리 저희가 전화를 드려도 국내 통화료가 적용됩니다. 제가 수시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라도 가장 먼저 전화를 주세요."

남미자전거원정팀을 초대해 만찬을 준비해주신 리마의 김선택선생님 부부
 남미자전거원정팀을 초대해 만찬을 준비해주신 리마의 김선택선생님 부부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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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에 직접 운전하셔서 우리의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주었다. 차를 돌리기 전 이틀에 한 번은 아무 일이 없어도 안전 확인 통화를 하자는 말씀에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남미, #페루, #리마, #자전거여행, #김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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