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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가 없는 책은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쓰기 힘든 글은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이다. 난다출판사에서 나온 <읽은 척하면 됩니다>는 억지로 책을 읽어야 하고, 쓰기 싫어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두 사람, 김유리 YES24 MD와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가 쓴 서평집이다.

교사인 내가 늘 속을 썩이는 학생들에게 벌을 주고 싶은데 너무 가혹하여 차마 선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책을 주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것이다. 원치 않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땡볕에 운동장에서 벌을 서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린아이 입맛을 가진 경상도 사람이 홍어회를 먹고 그 후기를 남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두 사람의 고충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나는 독자로서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내가 이 책을 보자마자 주문했고 함께 온 대 여섯 권의 책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읽은 척하면 됩니다> 책표지
 <읽은 척하면 됩니다> 책표지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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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상이 궁금했다. 나처럼 취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그것이 직업인 사람은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하며,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가 궁금했다. 과연 <읽은 척하면 됩니다>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몇 쪽을 넘기지 않아 <작가의 수지>라는 책을 발견했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추천사를 쓰면 얼마? 해설을 쓰면 얼마? 강연하면 얼마? 등등 작가가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과 그 수지타산에 관해 후기에 대한 책이란다.

나는 이런 저급한, 시시콜콜한 책을 좋아한다. 어리석게도 늘 책을 내서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는 내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서평을 쓰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삼으며 내가 쓴 책을 읽고 열댓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서평을 읽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나로서는 새삼 그간 내가 얼마나 큰 만행을 저질렀느냐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읽은 척하면 됩니다>를 읽다 보면 자주 사야 할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읽어주는 일이 '보람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솔직함이 맘에 든다.

'요즘 나오는 경영서마다 마치 바이블처럼 등장하는 애플과 아마존의 사례가 또 등장한다'
'옛날 옛적 이야기가 소개된다' - 33쪽

나도 내가 쓴 책에 대해서 이런 부류의 비판이 섞인 서평을 많이 읽어봐서 아는데 작가로서는 아픈 악평이지만 독자로서는 그저 재미난다. 믿음이 간다. 부탁을 받았다고, 아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주례사 서평을 남발한 나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 내가 눈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한 참을 읽고서야 이 책의 공저자가 부부라는 것을 알았다.

아내인 김유리 YES24 MD의 글은 왼쪽에 남편인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의 글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부부가 공저자인 서평 집은 처음 읽어 본다. 묘한 매력이 있다. 꽤 많은 책을 함께 읽었는데 물론 각자의 서평은 각자의 취향과 잣대로 평가했다. 서평을 해야 할 책과 서평의 내용에 대해서 기획이나 조율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부는 대부분의 책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호평하고 있지만,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문기자인 남편은 <호모 데우스>의 작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감격했을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발 하라리'의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는 팬이지만, 아내는 한마디로 그의 책이 '관심 밖'이다.

공짜로 '준다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해서 받긴 받았는데 1분 만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렸단다. 서평집을 읽다가 육성으로 웃음이 터진 것은 처음 인 것 같다. 같은 여행지에서 각자 다른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 부분도 있는데 내게는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감칠맛이라고는 전혀 없다. 화려한 수식어나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암호에 지나지 않는 현학적인 비평의 글이 없고 그냥 객관적인 평가와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구체적인 평을 그대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에 대한 소감뿐만 아니라 독서 생활의 전반에 관한 경험에서 나온 비결도 선보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시인의 에세이가 나오면 다 챙겨보는 편이다. 거의 실패할 확률이 없다.' - 226쪽
'서점에서 일하면서 좋아하는 분야가 생겼다면, 어린이 분야이다. 문학이나 인문, 예술 정도밖에 안 읽던 사람에게 더 넓은 시야를 압도적으로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분야가 어린이다. - 290쪽

이 책은 읽기에 불편한 책이다. 읽다 보면 사야 할 책을 만나게 되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금방 또 다른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 때문이다.


읽은 척하면 됩니다

김유리.김슬기 지음, 난다(2017)


태그:#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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