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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경찰에게 폭행 당하는 시민
▲ 2012년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경찰에게 폭행 당하는 시민 2012년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경찰에게 폭행 당하는 시민
ⓒ 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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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 소송 철회 결정과 관련한 보수 언론 및 자유한국당 등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12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원(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4부 부장판사 이상윤)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작년 3월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으로 공사가 지연되었다며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116명의 개인과 5개 단체를 상대로 청구한 34억 5천여만 원의 구상권 청구 소송은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

정부 결정이 나온 후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13일 자 사설을 통해 "(정부의 구상권 청구 소송 철회)결정으로 법을 끝까지 집행해야 할 정부가 불법 시위를 사실상 인정해 준 꼴"이라며 "국가관이 없고 불법 시위를 일삼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을 통해 "해군이 삼성물산에 물어준 275억은 방위력 개선 사업비에서 꺼내 쓴 것"이라며 "무기 사는 데 써야 할 돈을 불법 시위 뒤처리에 쓰고 국민 세금으로 물어주게 생겼다"고 썼다.

같은 날 국회에서도 논란은 이어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구상권 포기는 향후 발생할 불법 시위를 정부가 나서서 조장하는 것"이라 주장했고 같은 당 김학용 의원도 "불법행위를 용인하는 선례를 남긴 아주 부적절한 조치"라고 강변했다.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가 법치주의 훼손? 국민 세금 낭비?

과연 그런가? 정부의 이번 결정이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의 주장처럼 강정마을 주민 등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그들이 물어야 할 돈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게 된 부당한 일인가?

주지하다시피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그 시작부터 비민주적인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2007년 6월 국방부가 강정마을 해안가에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할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 직후 강정마을 주민들은 관련한 사안을 총회에 부쳐 90%가 넘는 주민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정부는 사업을 강행했다.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일방성과 비민주성은 지속됐다.

2009년 12월 당시 제주도의회의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공사를 가능케 하기 위해 강정마을 해안가에 설정되어 있던 절대 보전지역 해제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2012년 총리실은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진행된 민군복합항의 주요 요건이었던 '15만 톤 크루즈 선박 입출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를 조작하기도 했다. 공사 과정에서 해군과 시공사 등은 오탁방지막 등 해양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조차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제주도정으로부터 수차례의 공사중단 통지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국책사업에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비폭력적으로 저항했으나 국가권력은 수십만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당시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본격화한 201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1년여의 기간 동안 동원된 육지경찰은 12만8402명에 이른다). 그 결과 700여 명의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연행되었고 550여 명이 기소되고 60여 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에게 부과된 형사벌금만 3억 원이 넘는다.

지난 6월 발족한 경찰개혁위원회는 당시 강정마을에서 경찰의 인권침해 현황 조사에 착수했으며 국가권력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는지를 밝힐 예정이다. 국책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행위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임을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은 국민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

작년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에게 청구된 구상금의 근거는 2012년 삼성물산이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금으로 해군에게 청구한 360억여 원 중 2015년 6월 대한상사중재원이 해군에게 지급하라 판정한 275억 원이다. 해군은 이 중 34억 5천여만 원을 반대시위 탓으로 계산해 강정마을 주민 등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작년 10월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해군이 삼성물산에 공사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긴밀한 협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삼성, 제주기지 반대 맞서 "공개돼선 안 될 긴밀한 협조", <한겨레> 2016년 10월 8일 자 보도)

2012년 5월 삼성물산이 공사지연 손해금을 해군에 청구하자 2013년 8월 해군은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제주지방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이 사안을 소송이 아닌 중재로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 사안은 일반적으로 공개적인 소송절차를 거쳐 그 타당성을 면밀히 따져야 함에도 오히려 돈을 지불해야 하는 해군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대한상사원의 중재를 자청한 것이었다. 중재 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소송이 상대를 공박하며 사안의 진위를 가리는 과정이라면 중재는 합의를 전제로 합의 내용을 정하는 과정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해군이 중재라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소송과 법적 효력은 같되 처리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삼성물산에 돈을 서둘러 주기 위해 안달이 난 모양새다. 해군의 이 이상한 행태와 관련한 답은 중재 요청을 하며 검찰에 보낸 공문의 붙임 문서에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민군복합항 건설 사업의 경우 해군과 시공사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응하여 긴밀히 적극 협조하여 왔음. 지금까지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해군이 협조를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시공사는 이해득실을 떠나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왔으며, 이는 추후 분쟁 발생 시 상호 신뢰하여 이루어진 행위 등을 존중하고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신뢰하여 왔기에 이루어진 측면이 강함"

즉, 삼성물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과 관련한 해군의 대응에 적극 협조하여 왔으므로 삼성물산 측의 공사지연금 청구에 대해 사실관계 여부를 따지지 않고 바로 지급해야 할 '신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해군에 협조함으로써 일종의 공사를 진행하며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일종의 '보험'을 들어 둔 것이었고 실제 그 보험의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대한 상사중재원의 중재 판정에는 또 다른 내용도 있었다. 2012년 8월 삼성물산이 강정 해안에 가거치 해두었던 케이슨(방파제 기초를 만드는 구조물로 거대한 상자 모양의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된 것) 7기가 당시 불어온 태풍 볼라벤에 의해 파괴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부숴진 케이슨들은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방치돼 있었으며 이후 파쇄·제거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시멘트 오염물질이 바다에 투기돼 심각한 해양오염을 일으켰다) 원래 삼성물산의 공사계획엔 케이슨의 가거치 공정이 없었으나 해군이 삼성물산 측에 요구해 가거치 공정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그 이유와 관련해 중재 판정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피신청인(해군 측)은 반대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상태에서 공정을 만회하고 반대 민원인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서 공기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 공동수급자(삼성물산)에 케이슨 가거치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즉,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사업을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케이슨 가거치'라는 무리한 공사방식을 요구한 것이고 삼성물산은 이에 협조한 것이다. 이들 공모의 결과는 파괴된 케이슨의 처리와 관련한 공기 연장과 91억 원의 공사비 증액으로 귀결되었다.

이 같은 정황에 대해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은 "군과 시공사는 그간 있었던 은밀한 협조를 숨기기 위해 공개 절차가 아닌 공개되지 않은 타협인 중재로 하였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었다. 중재절차는 국가와 기업이 짬짜미한 것으로 그 부담을 국가가 공사 반대 주민과 시민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가 구상권 청구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래도 해군의 강정마을 주민에 대한 구상금 청구가 정당했던 것인가. 국민의 세금을 탕진하는 주범은 도대체 누구인가.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는 해군과 삼성물산의 은밀한 거래 감추기 위한 꼼수

앞서 언급한 부분과 연관된 문제이지만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왔다.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은 말 그대로 시민들의 공적 참여를 막기 위해 국가나 고위 권력자, 대기업 등이 법적인 수단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는 SLAPP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SLAPP은 비판이나 반대를 포기할 때까지 법적 방어 비용을 부담 지우는 방법으로 비판자들을 검열하고 위협하며 침묵을 의도하는 소송이다. 승소는 SLAPP를 제기하는 자가 필요로 하는 목적이 아니다. 원고의 목적은 피고가 공포, 협박, 늘어나는 소송비용 또는 소모전에 대한 굴복으로 비판을 포기할 때 성취된다. SLAPP은 다른 이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도 위협한다. SLAPP은 종종 '법적 위협'으로 행해진다."

강정마을 구상권의 경우는 국가가 국책사업에 반대한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전략적 봉쇄소송을 전개한 경우이지만 노동자들의 쟁의 활동 과정에서 투입된 공권력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경우 등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안이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경찰이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각종 장비가 파손되었다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조합원 등을 상대로 16억 7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이다. 현재 항소심에서 11억 6800만 원의 배상 선고 판결이 나왔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매일 62만 원의 지연이자가 발생하고 있고 수십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임금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 등이 이뤄진 상태다.

그 외 2008년 광우병 집회,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2015년 세월호 집회, 백남기 농민이 숨진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등과 관련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시작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 사안의 소 제기 주체인 경찰도 내부적으로 이 사안들을 어떻게 할지 고심 중이라 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 정권의 적폐 청산 중단 없이 해나가야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옥좼던 거액의 구상권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자행된 국가권력의 비민주성과 공권력의 폭력 문제는 반드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금도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여전히 인권 침해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로 인해 발생하는 군사주의나 반평화적 문제에 대한 주민이나 평화활동가들의 정당한 1인 시위나 피케팅 등을 해군이 경비업체 용역직원 등을 앞세워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이 진정 강정의 사람들과 상생을 원한다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조치부터 취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발생한 많은 비민주적, 비상식적 사안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언급한 대로 이전 정권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언론과 구태한 정치세력들이 나아가려는 사회의 발목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더 힘을 내야 하는 이유다. 지난겨울, 촛불이 외쳤던 함성을 다시 기억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주간 뉴스레터 'watch M' 제120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강정마을 구상권, #제주해군기지, #적폐청산,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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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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